별로 쓸모없는 뭔가를 위해 굉장히 노력했던 기억
못한다고 해도 인생 사는데 전혀 지장 없을 일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보신 기억 있으신지요?
제 경우에는 휘파람 불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휘파람으로 선율을 연주(?)하는 거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본 <킬 빌> 초반부에 대런 한나가 우마 서먼을 처리하러 가면서
간호사 코스프레를 하고 휘파람을 불며 병원복도를 유유히 걷는 모습에 반해버린 게 시작이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휘파람을 불고 싶다!"라는 단순한 욕망이었지만 당시 저는 아예 소리도 못 내는 사람이었어요.
능력치에 맞지 않는 목표를 정한 탓에 온식구가 한달여를 온전치 못한 휘파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소리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입술이 땡기고 머리가 띵할 정도로 열심히 하니까 나름 노력한 보람이 있어서
겨울방학이 끝날 때쯤엔 휘파람 소리를 낼 수 있었고, 3월달 쯤엔 어째저째 <킬 빌>의 그 곡도 불 수 있게 됐습니다.
저의 노력을 지켜봐왔던 친구는 "야, 니 수학(다른 과목보다 늘 평균 2등급 낮게 나옴)도 할 수 있겠다"라고 했으나 그건 안 되더군요.-_-
게다가 고3 때는 휘파람을 잘 부는 친구(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이런 재주가 있는 줄은 몰랐죠)랑 한 반이 돼서
이 곡 저 곡 같이 연습을 하기도 하고(주로 내가 가르침을 전수 받는 입장),
야자 마치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둘이서 합주를 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꽤나 능숙하게 휘파람을 부는 편이라서 웬만한 곡조는 대부분 따라 불 수 있습니다.
1~2년 전쯤에는 샤넬이었던가 무슨 화장품인지 향수 광고에서 뭔가 줄리언 무어를 닮은 느낌의 모델이
휘파람을 부는 걸 보고 따라해보라는 동생(소리만 낼 수 있음) 앞에서 성공하고선 지나치게 뿌듯해하고... 뭐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전 약간 선득한 느낌이 있는 밤에 휘파람 소리가 잘 나는 것 같아요.
특히 내일 비가 오려나? 싶을 정도로 습기가 좀 있는, 차갑고 촉촉하고 상쾌한 밤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