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총리는 힘이 센가요 아닌가요? - 두 개의 정보가 충돌할 때의 해결은?

한홍구 교수의 책 중에 <지금 이 순간의 역사>가 있습니다. 아마도 한겨레문화센터 등에서 특강한 것을 엮어낸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중에 김영삼 시대를 다루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헌법을 만들 때 내각제로 가려고 했었다. 근데 이승만이 억지를 써서 대통령제로 급선회한거라, 내각제를 생각하고 만들었던 헌법 조문들 때문에 총리의 힘이 강하다. 제대로 행사하는 총리는 없지만. 딱 한 번, 김영삼 때의 이회창 총리가 그랬었다. 안보장관회의(정확히는 기억 안나네요)가 법에 총리 권한으로 되어있으니 자기한테 보고하라고 했더니 임명 넉 달만에 김영삼이 화들짝 놀라 짤라버렸다."

 

근데 한겨레에 실린 서울 법대 안경환 교수의 칼럼은 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에게 근 20개의 조문을, 총리에게는 달랑 1개의 조문을 할애한다. 실제 권한도 1/20도 안된다. 헌법에는 국무위원들은 총리의 제청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어있지만, 그 제청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경우가 없으니 사문화된 조항이다. 총리는 대통령 대신 욕을 먹는 방탄조끼일 뿐이며, 권한이라고는 그저 수틀릴 때 사표를 낼 권한 뿐이다."

 

그래서 총리는 힘이 센 걸까요, 아닐까요? ㅡㅡ;

 

스스로 생각하고 공부할 능력이 떨어지면, 저보다 많이 공부한 사람들이 해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 정보원이 왜곡되거나 편향되면 저까지 망가지겠죠. 이렇게 두 개의 정보원이 충돌하면 좀 혼란스럽습니다. 이럴 때 둘 중의 하나를 골라잡을 정도의 공부라도 해야하는데 제대로 골라잡을 능력은 있는지도 자신이 없네요.

 

아, 이 경우는 전 안경환 교수쪽을 믿습니다. 아무래도 전공도 그렇고, 뉴스에서 총리의 모습을 본 때라고는 주체적으로 뭘 결정할 때는 거의 없고 대부분 행정부 회의에 (아마도 대통령 대신) 앉아있을 때 뿐이었거든요. 꽤 멀쩡한 학자 대우를 받던 정운찬이 세종시 방어용 방탄조끼로 고용되었다가 효용이 다하자 기타 보직으로 재활용되는 신세가 된 것도 생생하게 보았고요. 물론 법적으로는 강한데 실제로 안쓸(못쓸) 뿐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헌법 조문을 실제로 보면 총리가 과연 힘이 세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거든요. 하위법까지 찾아보진 못했지만요.

    • 두 말 다 무척 재밌게 썼네요.
      화들짝 놀라 짤라버리니 헌법 있으나마나
      수틀릴 때 사표 내던질 권한이나 제대로 있나 모르겠네요.
    • 가끔영화 / 제 흐릿한 기억에 따라 대강 쓴거라 세부 표현은 두 교수의 표현이 아닐 수 있습니다. ㅡㅡ;;
    • 헌정사까지 나와야 이해가 되는 것이 국무총리의 지위 인데요. 헌법조문상 보더라도 총리의 권한이 결코 약한 것만은 아닙니다.
      헌법 제87조의 대통령의 국무위원 인사도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조문상으로 보면 제청안하면 임명을 못합니다.
      또한 헌법 제82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여야 하며, 이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이 부서한다, 군사에 관한 것도 또한 같다"라고 되어 있어 국법상 행위를 대통령이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지 못합니다. 특히 이 제도는 미국등 대통령제 국가에는 없는 제도 입니다.
      이것을 부서제도 라고 하는데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이 부서를 거부할 권한을 행사해서 거부했음에도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했다면 헌법이 정해놓은 형식적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로서 무효가 된다는 게 일반적인 다수설적 견해입니다.

      그렇지만 절차적이고 민주적인 정당성을 통해서 주권자인 국민으로 부터 직접 위임받은 대통령의 권한을 직접 위임받지 않은 총리가 제약을 가한다는 것은 대통령제의 근간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이런 조항이 있음에도 자제를 하고 헌법 제86조 대통령의 보좌기관 으로서의 역할만을 하고 있을 뿐이죠.

      참여정부당시 보수신문들이 대통령의 힘을 깎아내릴려고 총리더러 이 부서제도를 사용하라고 악다구니 쳐 벌리던 일이 있었죠.
    • "법적인" 권한은 막강하지만 "사실상" 바지저고리 라고 이해하시면 대충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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