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마음이 먹먹한 시기가 있었어요.

 

저는 그 시기를 참 어찌 보낼지 막막해서, 매일매일 그나마 좋아하는 책을 읽으러

 

서점에 나갔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기도 하고 사당동 반디앤루니스에 가기도 하고

 

책 읽다가 질리면 광화문을 걷기도 했는데 산책이 아니라 방황이었던 것 같아요.

 

그나마 걸으면 몸이 좀 지쳐서 밤에 잘 수 있게 되거든요.

 

어렸을 때 살던 동네가 보고 싶어서 광화문에서 3시간쯤 걸어서 친구들이랑 팽이치고 놀고 가끔 이글루도 만들던

 

한적한 빌라촌이 큰 아파트로 변한 것을 보고 오기도 하고 그랬던 때에요.

 

무진기행을 그때 읽었습니다.

 

제가 문학적 감수성이 그다지 많지는 않아요, 설명하는 글은 잘 읽지만 감상을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때 무진기행을 읽고 느낀 그 감정은 시간이 다소 지난 지금도 마음에 많이 남아요.

 

작가님이 그려놓으신 무진 이라는 공간과 그 곳에 사는 여자, 그리고 나는 그 여자를 알고 이해하나 나처럼 여기죠.

 

하지만 그 여자를 그 상황에서 건져내오지는 못합니다.

 

뭔가 쓰려고 하나 결국 찢던가 그래요.

 

저는 그 마지막 부분이 왜 그렇게 마음에 절절하던지,  소설속 내가 뭔가를 이 여자에게 남기더라도

 

그녀에게 결국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라는 식으로 읽었어요.(그런 느낌으로 기억해요).

 

그 짧은 글을 읽고 참 가슴이 먹먹했어요.

 

안개로 덮여있는 무진에 남아 방황할 그녀의 입장에 이입을 한 건지, 무진에서 떠나면서 여전히 무진에 있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나의 입장에 이입을 한 건지 잘 모르겠지만, 여운이 꽤나 오래가서 지금도 가끔 그 먹먹함이 생각나요.

 

 

* 오늘은 우울해서 김어준의 강연을 봤고, being 님의 글을 재독하다가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저 사람들도 동류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라는 취지의 글을 읽고 갑자기 무진기행이 생각이 났네요. 글 쓴 작가님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냥 일기가 되었군요 ㅎㅎ; 좋은 밤 되세요.

 

 

 

 

    • 아 무진기행 .. 몇번을 읽어봐도 먹먹해지는 그 기분 참 좋습니다. 서울 1964 겨울이나 서울 달빛0장 역시 참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밖에 안듭니다. 김승옥선생은 시나리오를 써오시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으셨는데 어느날 계시를 받아 종교에 귀의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방면으로 여러 활동 중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고딩 때 시험기간에 독서실에 가서 숨죽여 읽었던 기억이 나요. 잠깐동안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인상적이였어요. 김승옥씨의 글은 정말정말 감각적이죠. 읽고 있으면 마치 제가 무진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그런 기분.
    • 신성일 윤정희 주연 안개
    • '생명연습'을 읽고 우리나라에 이런 천재작가가 있었다니...라고 놀랐었죠. 정말 천재적이라고 느겼어요. 생명연습
    • 과다출혈/ 나이가 차면 평온해지는 걸까요? :)
      안희/ 예. 무진으로 빨려들어갈 것 같은 기분;; 저도 그날 하루종일 헉 하고 있었지요 :) 저는 고등학생 때에는 저렇게 큰 충격을 받지는 못했을 꺼 같아요. 창피하지만 이건 뭥미; 라고 읽었을지도 ;
    • 김승옥님, 돌아오세요 ㅜㅜ
    • 대필작가M/ 무진기행이 제가 배우던 문학책에 실려있었어요. 그런데 앞부분만 문학책에 실려있어서 인터넷에서 원문을 찾아 프린트로 뽑아서 보게 되었드랬죠. 소설에서 주인공이 수음을 하는 부분이 있었을 거에요 아마. 저는 응??? 이게 뭐지???해서 부모님께 그게 뭐냐고 여쭤봤고 부모님이 어쩔 줄 몰라하시던 게 떠올라요. 더 웃긴건, 교과서에서는 수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안 싣고 '비밀스러운 행위'로 대체했다는 거. 그럴거면 뒷부분을 싣든가-_-...
    • 김승옥소설은 한글1세대가 가지는 자부심 자체입니다 한 백년이 지나도 매끄럽고 세련된 느낌은 계속 갈꺼에요



      그런데 워낙 작품수가 적어서 아쉽더라구요 안좋은일이 많아 스스로 절필하다시피했고 교수가 되고 다시 쓰겠다고 한 후 뇌질환을 얻으셨죠 하필 기억하고 구성하는 부분이 망가졌다고 합니다

      학생때는 열광했고 지금은 좀 다르게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결론은 아깝고 아쉬운 작가죠ㅣ
    • 음 이 글을 보니 무진기행 다시 읽어야겠군요. 너무 어렸을 때 읽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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