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들..

[인 타임]
앤드류 니콜의 신작 [인 타임]의 세상은 미래 세계이기보다는 평행우주에 가깝습니다. 젊은 모습으로 천년만년 살 수 있을 정도로 생명공학이 상당히 발전한 것 같은데, 정작 다른 기술들은 20세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합니다. 이런 설정을 여러 허점들에 불구 어느 정도 선에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정작 영화는 이런 설정으로 금세 기대할 수 있는 너무나 익숙한 유형의 이야기를 합니다. 적어도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은 영화만큼이나 매끈하게 보기 좋고 영화는 지루하진 않지만, 제 고등학교 시절의 멋진 영화들 중 하나였던 니콜의 전작 [가타카]에 비하면 실망스럽습니다. (**1/2)

[트리 오브 라이프]
몇몇 부분들은 잘 먹힌다고 볼 수는 없지만 테렌스 맬릭의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는 다른 분들 말씀대로 극장에서 마주치기 힘든 종류의 영화입니다. 더글러스 트럼불의 특수효과까지 동원하면서 스케일 크게 바라다보면서 동시에 1950년대 미국 미드랜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가까이서 휙휙 훑어보려는 영화는 근사한 시각적 성찬입니다. 영화를 얘기할 때마다 어김없이 언급되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위대함까지 다다르지는 않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입니다. 물론 영화를 설명하라고 하면 저는 금세 쪼그라들겠지만요. (***1/2)

[더 트립]
작년에 마이클 윈터보텀이 [킬러 인사이드 미]와 함께 내놓은 [더 트립]은 전자와 정반대인 작품입니다. 이미 윈터보텀의 [수탉과 황소 이야기]에서 멋진 코미디 연기를 했던 스티븐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다시 한 번 뭉친 본 영화는 6부작 TV 미니시리즈를 장편영화 분량으로 압축한 것이지요. 영화 내용은 별 것 없지만(어쩌다가 같이 여행하게 된 쿠건과 드라이븐이 가디언 지를 위해 쿠건이 쓸 기사 대상들인 영국 지방 레스토랑들을 일주일 간 이리 저리 돌아보는 것입니다) 쿠건과 드라이븐이 차 안에서나 레스토랑 안에서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재미있고, 특히 마이클 케인 성대묘사 갖고 서로 야려대는 건 강추입니다. (***)

[헬프]
[헬프]는 원작 소설만큼이나 안전한 기성품 드라마입니다. 민권 운동으로 들썩이던 1960년대 미국 남부 지방을 배경으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선전대로 웃음과 감동으로 버무려서 전달하려고 하지요. 하고자 한 걸 잘 했긴 했지만, 현지 개봉 시 나온 평들대로 본 영화가 그 험한 시대를 너무 좀 온화하게 그린다는 생각이 좀 들지 않을 수 없긴 합니다. 잘 만들었지만 편파적이서 말 많았던 [미시시피 버닝]만 봐도 그 당시 미시시피 분위기는 그리 밝지는 않았고, 본 영화에 대한 여러 지적들이 나올 때쯤에 현실은 그 시대를 살았던 흑인들에게 더 많이 힘들었다는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실력 있는 배우들 덕분에 이야기는 2시간 이상 되는 상영 시간 동안 금방 지나갑니다. 흑인 가정부들과 가까워지는 엠마 스톤과 제시카 차스테인도 보기 좋지만, 두 흑인 가정부 에이블린과 미니를 맡은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옥타비아 스펜서의 연기는 영화 약점들을 많이 보완하지요. (***)

[배드 티처]
중학교 교사 엘리자베스는 제목 그대로 빵점 선생입니다. 교육 따윈 관심 없고 오직 돈 많은 남자 낚는 거나 관심 있는 그녀는 최근 결혼할 뻔한 남자에게 파혼당해서 다시 원래 직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이번엔 가슴 수술 때문에 돈 먹을 기회가 있는 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마침 새로 들어온 수학 교사 스캇이 결혼 타깃으로 적당하니 그를 공략하려고 하지만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 경쟁자가 있으니 일이 좀 곤란하게 되지요. 영화는 제목만큼이나 못되게 하려고 작정하는 듯하지만, 정작 시시한 코미디들이나 시도 하고 있고 설정만큼이나 못되지 않았습니다. 카메론 디아즈야 노력은 하지만 영화가 그녀가 [나쁜 산타]의 빌리 밥 쏜튼만큼이나 막가지 못하게 하지요(물론 디아즈도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보다시피 망가지라면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니 우린 그저 좋은 코미디 배우들이 낭비되는 아쉬운 광경을 봅니다. (**)

[트레스패스]
보석상인 카일과 사라의 집에 갑자기 복면을 한 일당들이 쳐들어오고 그들은 카일의 금고 안에 든 돈 혹은 물건을 요구합니다. 흔한 설정이어도 [패닉 룸]에서 보다시피 아이디어와 노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영화가 재미있게 돌아갈 수 있지만, 조엘 슈마커의 [트레스패스]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관점을 이리저리 옮기는 통에 긴장도가 떨어지는 것도 그런데 캐릭터들은 일관성이 없고 이야기도 나쁩니다. 어쩌다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니콜 키드만이 이런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들은 노력은 합니다. (*1/2)

[곰돌이 푸]
짧게 평하자면, 60분짜리 특별 TV 방영분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작비가 더 많이 들어간 작품답게 캐릭터들은 말 그대로 좀 더 자유롭게 동화책 안을 돌아다니지만 그들은 우리가 기억하는 그 봉제인형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그건 좋은 일입니다. 일러스트레이션도 원작에 충실해서 거기서 나오는 그 친근한 분위기는 제 어린 시절 기억을 건드리곤 했습니다. 작품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엔드 크레딧 시퀀스도 보기 좋습니다. 가볍고, 여유롭고, 부담 없고, 그리고 사랑스럽습니다. (***)

[나넬 모차르트]
[나넬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누나 나넬도 동생만큼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음악가 재능이 있었을거란 점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별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그 시절엔 그런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고 본인도 그걸 잘 알고 있습니다. 동생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를 위한 피아노/하프시코드 반주에만 만족해야 하고, 좀만 있으면 그 시절 여성들이 대개 그러듯이 결혼해서 아이들 키우는 인생을 택해야 합니다. 결국엔 나넬은 부모님 뜻에 순응하고 나중에 가선 동생의 작품들을 관리하는 데 많이 노력했지요. 작년에 개봉된 [돈 지오반니]에 비하면 본 영화는 장점들이 많습니다.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으니 영화는 굳이 힘주지 않고 느긋하게 이야기를 굴려가면서 캐릭터들 간에 작은 좋은 순간들을 차례차례 내놓습니다. 아, 그리고 이미 예상하셨겠지만 본 영화에선 모차르트의 음악은 나오지 않으니 괜한 기대하지 마세요. (***)
P.S. 나넬이 곤궁한 말년을 보냈다고 얘기하는 에필로그 자막과 달리 나넬은 남작부인으로써 편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약간의 오해가 있어서 잘못 전해진 이야기이지요.

[아틀라스: 제1부]
얼마 전에 에인 랜드의 그 덩치 큰 소설 [아틀라스]를 읽어 봤습니다. 뻑뻑하지만 그럭저럭 잘 읽혀지는 책이고 캐릭터들을 통해 자신의 신념인 객관주의를 설파하는 랜드의 열정도 좀 느껴지긴 했지만 MB가 딱 좋아할 만한 소리나 해대고 있느니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하더군요(하긴 곰곰히 생각해 보니 MB는 랜드의 소설들을 너무 많이 읽은 사람인양 행동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간에, 3부로 이루어진 소설의 1부를 각색한 본 영화는 정말 형편없습니다. 저예산이란 점은 용서해줄 만하지만, 평면적 캐릭터들은 더욱 더 생기를 잃어 출연 배우들은 걸어 다니는 마네킹들 같고, 이야기는 원작 줄거리를 형식적으로 따라다니라 바빠서 별다른 흥미를 자극하지 않다가 맥 빠지게 막을 내립니다. 2부도 만들 거라고 하지만 비평에서나 흥행에서나 쫄딱 망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1/2)

[비기너스]
다시 시작하는 게 결코 늦지 않다고 하는데, 올리버의 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범적 사례를 보여줍니다. 아내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들에게 자신이 게이임을 고백하고 즉시 활발하게 자신의 인생의 새 장을 시작하지요. 영화는 몇 년 후 아버지의 죽음으로 침울한 올리버가 자신에게 우연히 다가온 애나와 가까워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올리버와 아버지 간의 이야기 그리고 올리버의 어린 시절을 얘기합니다. 새로울 건 없는 이야기이지만, 감독 마이크 밀스는 자신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있는 각본에 소소하고 별난 유머들을 넣었고 캐릭터들 묘사도 정감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