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숲바낭] 이사가 너무 힘들어요

석달 쯤 전부터 이사를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직장과 사는 곳이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당분간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타며 견뎌 왔지만 언젠가부터 몸이 축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홍삼도 비타민도 언제부턴가 안 듣는 것 같고, 차만 타면 그냥 곯아떨어져 숨쉬는 통나무가 되고,


주말에는 자도자도 만성피로가 풀리지 않고, 물먹은 솜처럼 늘어진 채 이 젊은 날을 부유합니다.


이건 아니야, 아니라고. 그래서 이래저래 정들었던 이 동네를 떠나 직장 근처로 옮길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 들어가려 하는 곳은 전세 아파트, 제 깜냥에는 당해낼 수 없는 크기입니다.


신혼부부가 살면 딱 맞겠다 싶은 아담한 집이지만 혼자 살기엔 좀 휑뎅그레하게 보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살던 대로 적당히 자취방 하나 구해서 뚝딱 옮겨버리려 했었죠.


이 때 본가에서 참견을 합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아파트로 구하라는 지엄한 명이 내립니다.


구하라를 구하라고 했으면 참 기뻤을 텐데 이번에는 별로 탐탁치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원룸의 자금도 본가로부터 얼마 정도는 땡겨서 쓴 거라 거역을 못하겠습니다.


심지어 대출자격도 되지 않는 사회의 햇병아리입니다. 연말정산이란 걸 안 해 봤으니


원천징수영수증 따위가 나올 리 없습니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어떻게든 저리로 대출을 내면


제가 월급을 팍팍 쏟아부어 발랑발랑 갚아야 됩니다. 일종의 하우스 푸어가 되는 플랜이라죠.


나는 또 다시 부모에게 빚을 집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손을 벌립니다. 이 댓가는 아마


가끔씩 부모가 이성을 잃으면 온갖 욕설과 힐난으로 내가 갚아야 할 터입니다. 


너는 기껏 공부시켜서 대학 보내서 뒷바라지 시켜서 키워 놨더니 한달에 한 번도 안 내려오느냐.


회사일이 바빴습니다. 회사가 너 밥먹여주냐, 하는데 예 라고 했다간 인간성 드럽다고 소문날듯합니다.


참습니다. 계속됩니다. 옆집에 누구는 환갑잔치 대신에 외국여행 보내줬다더라, 누구는 지가 벌어서


집 사고 며느리감 데려와서 결혼을 했다더라. 넌 뭐 했냐? 하면 시험준비요. 그래서 됐냐, 하면 아니요.


너는 개새끼다. 내 밑으로 낳았지만 개새끼다. 아니고서야 나를 이렇게 괴롭힐 리가 없잖느냐. 


니가 사람새끼면 양심이 있었으면 어디 나가서 확 뒤졌을 거다 그랬으면 나도 지금쯤 편했을테니까....


날선 말에 찢겨내려도 저는 아직 쌓아놓은 게 없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빚지는 게 싫습니다.


한편으로는 내 깜냥에도 안 되는 이런 걸 질러서 나중에 어떻게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일말의 불안도 잠깐 듭니다. 많은 고민을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 고민을 털어놓았던


많은 사회 선배들은 부모 말씀대로 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을 합니다. 고민 끝에 일단 지릅니다.


지르는 것도 쉽지 않지요. 회사 점심시간에 미친놈처럼 튀어나와서 집 알아보고 들어가고


아니면 눈칫밥먹으며 칼퇴근해서 알아봅니다. 자취방 알아보는 데는 도가 텄는데 


아파트는 지금까지 손대본 적 없는 물건이라 도통 머릿속 개념 코드가 안 맞습니다. 


한번은 꼭 맘에 드는 물건을 봤는데 융자가 8천. 전세 때려부으면 그걸로 감액등기를 하겠대네요.


또 한 번은 좋은 물건 나왔대서 점심시간에 택시 잡아타고 뛰어가는데 그 새 계약되어 버렸다 하고.


신경이 닳아 없어지고 정말 지쳐서 모두 놓아버리고 싶을 즈음에서 지금 이사갈 곳이 나타났습니다. 


시세보다 1천만원 비싸서 망설여집니다. 하지만 역세권이고 주변에 마트 같은 것도 있습니다. 


등기부도 깨끗한 편이고 직장까지도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여기로 하자 싶어서


급하게 1천만원을 마련해다 계약합니다. 어쩌다보니 직장 선배가 입회인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지금 사는 집주인에게 다시 한 번 전화를 겁니다. 11월초에 이사가게 됐습니다.


날짜는 10일로 할지 5일로 할지 아직 애매하구요. 그 때까지 돈을 마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했는데 이게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난장판의 시작일 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원래 이 곳 자취방 전세계약은 5월초에 끝나고 자동연장이 된 상황입니다. 때를 같이하여


제가 취업이 되었고, 당분간 통근을 하다가 안되겠다 싶어 8월에 집주인에게 이사 얘기를 꺼냈죠.


그 때 부동산에 방을 내놓았었습니다. 주말에 집 보러 오는 사람들도 간간이 있었고,


제가 집에 없을 때가 많다 보니 집주인이 멋대로 방문을 열어서 보여주는 경우도 많았대죠.


그러다 9월초에 일이 바빠지면서 당분간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집주인에게 전화했었고,


10월 초에는 집을 계약하면서, 위에 써 놓은 대로 11월초에 이사가겠다고 얘길 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 동안 미친듯이 바빴습니다. 새벽별 보고 나가서 한밤의 달 보며 들어오길 몇 달...


그 동안 저는 왼쪽 눈의 핏줄이 터져 시력을 반쯤 잃었고 백내장 검사를 해 보자는데 


그 이후로 여건이 여러 모로 안 되어 병원도 아직 못 가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 상황에서 이사.


그런데 오늘, 아니 어제 이사 준비를 하며 이삿짐센터 예약까지 하고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해서


10월초에 얘기한 집 전세금 어떻게 되어 가느냐고 확인을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합니다.


근거는 9월초에 했던 '당분간 더 있어야겠다' 란 얘기랍니다. 그래서 계속 눌러있는 줄 알았대나.


하지만 저는 9월 24일 오전 11시 25분에 전화로 분명 11월초에 이사 나간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왕이면 통화녹음을 해 뒀으면 좋았을 걸... 거두절미하고 지금 당장 4500만원을 구할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전 이제 1천만원 아파트 계약금 날려먹게 생겼습니다. 큰일이 났네요. 


불찰은 불찰입니다. 계약되었을 때부터 계속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해서 들들 볶았어야 하는데...


할 수 없이 집에 전화를 해서 보고를 하고, 저는 한 번 더 개새끼가 되었고, 지금은 어떻게든


할 방법이 없나 싶어 추가 대출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 사회 초년병한테 선뜻 


그 거금을 대출해 줄까요. 또 다시 부모와 머리를 맞대야 할지도 모릅니다. 죽기보다 싫습니다만.


원래부터 아파트는 내키지 않았는데 대체 어쩌다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전세 계약을 4건이나 했는데 이렇게 잡음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라 당황스럽습니다.


차라리 모든 걸 확 놓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아득바득 살아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파트를 원한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이 모든 걸 떠안아야 하는지 살짝 억울하기도 합니다.


먹기 싫은 고급 음식을 억지로 꾸역꾸역 우겨넣어지고 그걸 못 삼켜서 버둥대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포기할 순 없을 겁니다. 사실 무너지고 싶습니다. 모든 걸 놓고. 하지만 그러지 못합니다.


지금 이사갈 집 계약금 1천만원. 1천만원이 무슨 어린애 풀빵값도 아니고.


1백만원 모으기도 단박엔 어렵는데 5일만에 1천만원이라.... 나 참. 허허허허. 이 무슨.


그리고 일단 일을 맡은 이상 도의적 책임이라는 게 있으니 계약은 완수를 해야겠지요.


집안'일'을 맡은 거다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버틸 수 있게 되어집니다.


자취방은 2년 계약이 지났으니, 어떻게든 집주인의 꼼수를 돌파해야겠고. 


사실 세입자가 기간만료 후 나간다 하면 1개월 전에 통보만 하면 되는 건데, 


전 3개월 전에 이미 통보했고. 대항력은 갖춰진 것 같고. 


왜냐면 부동산에 집 내놓은 기록이 있을 테니까.... 


일단은 집주인더러 4500을 어떻게든 맞춰 달라고 해 보고, 


정말 죽기보다 싫은 일이지만 정 안 되면 본가에 도움을 요청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본가도 화수분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출요건은 저보단 낫겠죠. 


비록 그것이 원금 이자 꼬박꼬박 내야 하고 거기에 부가세로 온갖 언어 칼날을 쥐어박혀도


눈 딱 감고 나는 어차피 영혼을 팔아서 더 다칠 마음도 없다 싶으면 견뎌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수틀리면 1천만원 떼일 생각하고 확 임차권을 걸어서 등기부를 더럽혀버릴 참입니다.


그리고 계속 버티면 경매에라도 넘겨버려야겠는데.. 설마 거기까지 가진 않겠죠.


실은, 이런 사정을 어딘가에 좀 주절주절 풀어놓고 싶었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내가 불찰이라, 어리해서 이모양으로 일이 꼬여버렸다는 걸 알기에 그냥 답답만 합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고 나는 너무나 바보같으며 세상 살기 진짜 힘든데


남들도 다 그렇게들 사는 것 같으니 이제 더 이상 딱히 자기연민은 하고 싶지 않고.


근데 이런 얘기는 좀 풀어놓고 싶더군요. 해결이 잘 됐으면 좋겠는데. 뭐 그렇습니다.

    • 정말 힘드시겠어요. 이삿짐 싸는것 정리하는것이 힘들다는 줄 알고 위로해드리러 들어왔더니 제가 모르는 단어들이 잔뜩이군요. 이사 잘 마무리하시고 눈은 병원 꼬옥 가보셔요.
    • 내용은 괴롭지만 글을 재밌게 쓰셔서 술술 읽히네요. 많이 힘드시겠지만 이왕 버텨내고 있는거 조금만 더 버티셔요. 찬란한 보금자리가 기다릴거예요. 병원 얼른 가보세요.
    •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네요. 다른 것보다, 글쓰신 분이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겪으시는 고통에 순간 마음이 아프네요. 바쁘고 정신없어도 안과는 다시 꼭 가보세요. 그리고 이사 관련해서 지금이라도 순조롭게 일이 풀리기를!
    • 아, 이런..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그 마음이 얼마나 힘드실지 상상도 안가네요..힘내세요. 다친 마음이 여기서나마 위로를 받고 어떻게든 일이 수월하게 풀려나가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리고 윗분들께서 답글 다셨듯 안과에 꼭 가보세요. 스트레스로 시력에 문제 올 수 있어요.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가셔서 치료받으시길.
    • 일을 매우 깔끔하게 해결하실 분이라는 느낌이 글을 읽어 내려오며 왔습니다. 아마 이사 문제도 잘 해결될 겁니다. 저같이 비겁한 사람은 쉽게 부모님께 손 벌리고 모든 문제를 이 엄청난 사회 탓으로 돌려버렸을텐데..

      나이를 모르겠지만 저보다 훨씬 더 어른 같으세요. 그런만큼 이 문제 잘 해결될 수 있을거예요. 스트레스 받는 상황, 큰 문젤 풀어가야 하고 움직일 사람이 나밖에 없을 때에는 황당무계한 자기 암시가 중요하더라구요.



      힘 내세요. 병원 꼭 가시구요.
    • 제목보고 상상했던 글과 다르네요. 너무 힘든 상황에 놓이셨어요. 아직 어리신 분이라 경험부족에서 온 시행착오를 겪으신 것 같습니다.
      집을 구할 때 일원칙은 내 방이 빠진 다음에 나갈 방을 보러 다니는 것인데.... ㅠㅠ
      저도 이 원칙을 어겼다가 님과 같이 고통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월세 집이었기 때문에 보증금은 천만원이고 방을 못뺄 경우
      월세만 계속 나가는 것이라 리스크가 전세보다는 적은 편이었지만요.
      결국은 형편이 안 좋아 나갈 수 밖에 없다는 거짓말을 하면서 집주인과 대면했고 운좋게 집주인이 좋은 사람이라서 해결되었는데
      이 경우는 전세라서 더 애매하네요. 11월 초면 이사날이 코앞인데 본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으로 잘 해결되었길 바랍니다.
      그래도 본가가 아예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본가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행운이니 일단 도움 받으세요.
      그리고 이사 나간 후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복덕방에 웃돈을 주면서 방이 하루라도 빨리 빠지게 하세요.
      전세가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금방 나가지 않을까요? 인터넷에도 올리구요.
      결국은 나갈테니 길어야 몇 달 버티는 셈이라고 하고 그 동안 본가에 이자를 드리면 어떻게든 해결 될 것입니다.

      힘내시고~ 앞으로 걸어야할 인생의 산에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세요.
    • 저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깐 시력이 떨어졌던 지인이 있었는데..몸부터 챙기시면서 해결하세요. 여기저기 사람들하고 얽힌 문제는 혼자 속끓인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니까요..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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