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물전쟁을 바라보는 걍태공의 시각
새벽부터 쓰고 있는 이 아침 망글은 24601님의 어제 제가 올렸던 뻘글(빗물도 못 먹는 볼리비아 사람들 얘기가 ISD의 악용 사례라고 해서 찾아봤습니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page=2&document_srl=3107454)에 대해서 24601님이 정성스레 달아주신 답글(볼리비아의 '물 전쟁'과 ISD에 관해 http://djuna.cine21.com/xe/?mid=board&page=2&document_srl=3110681)에 대한 화답 되겠습니다. 연애하고 낚시하는데 써야할 귀중한 시간을 이런 망글 쓰는데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긴 합니다만, 어짜피 연애는 못하고 있는거 정성들여 쓰신 글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요. 지금까지처럼 대충 쓰고 넘어가지 않고, 가급적 이번 글을 통해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좀 쓸데없는 서론이 긴데 참고 읽어주시면, 본론을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 참, 짐작하셨나 모르겠지만, 좀 건방져 보이는 제목은 존경하는 가카를 닮아가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유체이탈화법이죠.
1. 걍태공은 음모이론이나 유사과학을 꽤 좋아합니다. 음모이론이나 유사과학을 믿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음모이론/유사과학 글들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거든요. 한편으론 조금만 생각해봐도 거짓임을 뻔히 알 수 있는 것들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도 제게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들은 왜 믿을까? 제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권위를 부정하면서 동시에 권위에 맹종한다"는데 있었습니다. 자신이 부정하는 권위에 반하는 것이라면, 그 진실성을 무조건 추종하는거죠. 다른 이에 대한 불신을 토대로, 신자가 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꽤 힘듭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자신에 대한 음모라고 부정해버리는 것이 가능하니까요. 믿음의 자가발전이라고나 할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음모론자/유사과학자들이 내세우는 증거는 빈약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수많은 근거 자료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죠. 하지만 이들이 내놓는 자료를 검토해보면, 서로서로 인용하고 똑같은 얘기를 서로 반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근거자료라고 내놓는 것을 읽는게 사실은 시간낭비인 경우가 많다는 얘기죠. 시간과 잉여력이 남아돌던 백수시절 어느날 음모이론 한가지에 관련된 레퍼런스된 자료들을 쭉 검토해서 거슬러 올라가보니, 그 시작점이 패로디 잡지인 Weekly World News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위클리 월드 뉴스의 팬으로서 진실만을 보도하는 위클리 월드 뉴스를 의심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믿습니다).
2. 세상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이 존경스러운 가카를 제외하고, 제가 또 존경하는 분은 리차드 파인만 박사입니다. 일단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모든 걸 의심하고, 확인하기 전엔 믿지 않다보니 피곤해진 인생을 구원하신 분이죠. 물리학계의 박명수 거성인 파인만 박사는 아무리 복잡한 이론을 들이밀어도, 별다른 계산과 노력없이도 이론의 문제점을 파악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자서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파인만 박사는 그 비결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수학적 논증 과정을 들으면 그냥 논증의 내용을 따라 머리속에 그림을 그리고, 논증에 문제가 있을 때는 그 그림이 일그러진다고 하더군요. 처음 읽었을 때는 말도 안되는 소리 같았지만, 시시때때로 연습을 하다보니 그 방식을 저도 어느정도는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더군요. 수학이야 능력이 안되니 할 수 없지만, 어떤 주장을 들을때 디테일이 틀리거나 엉뚱한 결론을 내거나, 생략을 하면 머리속의 그림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림이 안그려지는 주장은 디테일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디다.
3.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몇 번 반복해서 얘기했지만, FTA를 하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는 저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요 며칠 인터넷을 뒤덮는 반대론자 들의 주장 중에서 몇가지 앞뒤가 안 맞는 주장들이 있다고 느꼈고, 볼리비아의 물전쟁 얘기가 그림이 안 그려지는 대표적인 케이스였습니다. 24601님이 링크해주신 프레시안과 한겨레21, 그리고 언급하시지는 않았지만 경향신문에 난 기사를 읽어보면 내용이 사실상 거의 똑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참고했거나 아니면 같은 소스를 인용해서 글을 썼다는 얘기죠. 그런데 이글은 한쪽의 주장만 내세우는 것 같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글로 보였습니다. 이것만 보면 벡텔만이 나쁜 놈 같지만, 설명되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이 여러가지 생겨났습니다. 아래는 몇가지 예입니다.
3.1. 볼리비아 정부는 왜 1억 3천만불의 융자를 받아야 했나?
3.2. 월드뱅크는 왜 볼리비아 전체의 상하수도 시설이 아니라, 코치밤바라는 도시 하나만 콕 찝어서 민영화를 하라고 주문했는가?
3.3. 사람들이 빗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일까? 일단 말도 안되는 얘기로 느껴지는 것은 차치하고, 설혹 그런 법이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강제할 수도 없는 법이 아닌가? 비올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빗물을 받아먹나 안 받아먹나 확인할 방법이라도 있나?
3.4. 볼리비아 민중은 그래서 벡텔을 쫓아낸 후에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가? 살림살이가 좋아졌는가?
4. 24601님이 인용하고 믿고 계신 내용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소스에서 시작된 얘기를 이 언론들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재생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실체에 접근하려면 좀 더 깊게, 그리고 다른 관점의 이야기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중간 생략을 통해 그림을 왜곡하는 수법을 쓰는 것은 조중동만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몇가지 검색중에 발견한 위키피디아가 제 의문을 대부분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첫 뻘글은 그 결과로, 볼리비아 정부가 가카의 화신이어서 생긴 일이라는게 더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을 쓴거구요. 자세한 내용은 이미 한 얘기니까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제 주장을 명확히 하고 싶은데, 이겁니다. "볼리비아 물전쟁은 ISD의 부당성을 증명하는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ISD의 부당성에 대한 사례를 찾으려면 다른 것을 예로 들어야 옳다."
6. 볼리비아 물전쟁만 놓고 보았을 때는, 거꾸로 왜 미국에서 ISD같은 제도를 만들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벡텔이 아름다운 재단도 아니고, 수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인데 볼리비아 민중의 *압박*을 핑게로 정부가 마음대로 계약을 위반할 수 있다면 저라도 볼리비아에 직접 투자는 하지 않겠습니다.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공공의 이익을 핑게로 제가 투자한 재산을 압류할 수 있다면 어떻게 무엇을 믿고 투자를 하겠습니까? 24601님이라면 볼리비아 민중을 위해 기꺼이 전 재산을 헌납하시겠습니까? 아니 잠깐, 볼리비아의 경우는 그 헌납한 재산을 볼리비아의 가카께서 꿀꺽하실테니 볼리비아 민중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겠군요.
7. 볼리비아 물전쟁에 대한 얘기에서 제가 주목해야할 핵심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것은 "그래서 볼리비아 민중들은 벡텔을 쫓아낸 후에 행복해졌는가?"입니다. 현실은 "Happily ever after"로 끝날 수 있는 동화가 아닌데, "벡텔을 추방했으니 승~ 리~"라는건 지나치게 나이브한 것 아닐까요? 벡텔이 악의축이었고, 볼리비아 물전쟁의 원흉이라면 벡텔을 쫓아내고 수도를 다시 국유화한 이후에 물사정이 좋아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위키피디아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결국 코카밤바의 국영수도기업 SEMAPA는 지역유지들이 운영하게 되고, 물값은 2000년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05년 후반에도, 코카밤바의 60만 주민 중 절반은 여전히 수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수도 공급이 된다 하더라도 간헐적인 공급(일부는 하루에 세시간에 불과)을 받고 있다. 시위의 주도자였던 오스카 올리베라는 "우리는 새로운 대안을 마련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SEMAPA 관리자들은 그들이 여전히 부패와 비효율에 허덕이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의 부족이라고 말한다 (SEMAPA는 물가격을 인상할 수도 없고, 어떤 해외 회사도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SEMAPA의 관리 책임자 루이스 카마고는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80년전에 만들어진 물탱크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중력을 이용해 운송하는 29년된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수도정화 시스템을 계속해서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코카밤바 규모의 도시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작은 이 시스템들과 지하수의 고갈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려면 3억불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SEMAPA의 일년 예산은 약 오백만불에 불과하다. 뉴요커지의 보도에 따르면 "수도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자가 우물이 없는 주민들은 열배나 많은 돈을 주고 물을 사야"하며, 새로운 자본의 투여 없이 개선될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지역주민은 물트럭 운영업자들이 "오염된 물을 파서 판매할 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물을 낭비"한다고 불평하였다. 작가 프레데릭 세거펠트에 따르면 "가난한 코카밤바의 주민들은 여전히 부자와 수도를 가진 사람들에 비해 열배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있으며 따라서 부유한 지역민들에게 간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물공급은 하루에 네 시간만 이루어지고, 수도의 혜택을 받는 가구의 수도 전혀 증가하지 않고 있다." 물전쟁에 참여했었으며, 주민들에 의해 SEMAPA의 국장으로 선출된 프란쯔 타퀴치리는 "서비스에 만족하는 시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공급이 아무도 24시간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시위 당시 활동가였던 커차밤바의 또다른 주민은 현 상황에 대한 그녀의 의견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물전쟁 이후, 우리는 무엇을 얻었나? 우리는 여전히 배고프고 가난하다."
7. 다시 얘기하지만, 제 글은 경향/프레시안/한겨레 등에서 주장하는 볼리비아 물전쟁의 진행과정에 불명확하거나 왜곡이 있는 듯해서, 좀더 명확한 그림을 찾아 본 것이고 그 결과 나온것입니다. 위키피디아에 왜곡된 정보가 있을 수도 있겟죠. 그렇다고 경향/프레시안/한겨레의 기사가 실체를 명확하게 밝히는 글이라고 이야기하실 수는 없다고 봅니다. 위키피디아의 글이 최소한 훨씬 많은 내용의 조사와 다양한 관점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원글에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직접 읽어보실 것을 권하구요.
8. ISD 얘기는 제가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겠고, 모르는 사항에 대해서 아는 것처럼 얘기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볼리비아 물전쟁과 마찬가지로 SSM의 예라든가, 악용의 사례등이 과장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제가 품고 있는 *합리적인 의심* 혹은 *걍태공의 뻘생각*입니다.
9. 볼리비아 정부가 중재기구에서 탈퇴했다는 얘기는 제가 접하지 못했던 글입니다. 링크해주신 곳을 잘 읽었구요. foog.com이라는 사이트가 번역 소스로 사용한 글도 읽어보았습니다. 그 글을 보고 든 질문은 의문은 볼리비아 물전쟁과 마찬가지입니다. 중재기구에서 탈퇴한 후에 그 결과는 무엇인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이건 좀 검색을 해봤는데, 별다른 소득은 없었습니다. 그냥 볼리비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되었구요. 그러니 언젠가 여행이나 가볼까 싶네요.
10. 처음에 유사과학 얘기를 한 것은, 24601님 및 비슷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유사과학 추종자와 같은 종류라는 의미는 아니므로 혹시라도 오해없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내 주장과 같은 주장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무비판적으로 다른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고, 이런 상황을 접했을 때 제가 취하는 행동이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전장에 나가는 동료들이 불발탄을 장전하고 나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도 덩달아 불발탄을 들고 나가는 것보다 동료에게 불발탄 대신 제대로 된 탄약을 사용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불발탄이면 어떠냐 총알은 총알이라고 주장하는 동료는 뺨을 때려서 정신차리라고 말해주고 싶고요.
이만 줄입니다. 일은 안하고 이게 무슨 월급 도둑질인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