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진중권에 대한 단상

진중권이라는 이름 석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때문이었습니다.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조갑제씨의 연재물 '나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패러디한 제목이었죠)  사들고 왔는데 책날개에 적혀 있는 저자 소개도 아주 걸작이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었죠.

 

1963년 세포분열로 태어난 빨간 바이러스 진중권은 86년 서울대 미학과를 마치고 군 적화사업의 일환으로 입대해 병영에서 노태우 후보 낙선을 위한 선동사업을 벌이다 귀환한 뒤, 92년 소련의 '구조기호론적 미학'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고, <미학강의>, <맑스레닌주의 미학원론>을 번역하고, 좌익현대화를 위해 컴퓨터 미학입문서 <예술 기호 정보>를 번역하고, 청소년을 위한 대중교양서 <미학 오딧세이>를 집필, 전교조 세포활동을 측면지원하고, <춤추는 죽음>으로 '죽음의 굿판'을 일으키는 등 좌익문화단체('노문연')의 간부로 이 사회에 '문화사회주의자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다가, 무너진 동구사회주의를 재건하라는 지하당의 명으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 유학온 이후, 베를린 한국 영사관 앞에서 열린 97년 노동자 총파업 지지시위에 참가하고, 혁명기지 강화를 위해 공화국 북반부에 군량미를 보내고, 교회 주일학교에 침투, 유아들 사이에 적색소조활동을 펴는 등, 일생을 세계적화의 외길로 걸어 왔다. 왜, 꼬와?

 

세상에 자신의 소개를 멀쩡한 책에 이렇게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책 내용도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포복절도할만하였죠. 물론 기성세대들은 진씨의 그런 글쓰기를 상당히 못 마땅하게 생각했죠. 하지만 유시민씨 같은 경우는(당시엔 정치 입문을 안 하고 책 저술과 100분토론 진행을 하고 있었죠) 이 책을 세기말의 걸작이라고 평하였습니다. 유시민씨 역시 그 무렵에 박정희에 대한 비판서를 쓸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진중권씨의 책이 먼저 나온 것을 보고 이 주제 관련해서 이보다 더 잘 쓸수는 없겠다고 생각되어 포기를 하였다고 합니다.

 

진중권씨의 이름 석자가 잊혀질 무렵 그는 온라인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게 97 대선 무렵이었을거에요. 조선일보 사이트에 조선일보 독자마당이라는 게시판이 있었는데 거기다 거의 매일 칼럼을 쓰면서 게시판을 완전히 누볐죠. 그한테 달라붙는 수 많은 조선일보 독자들을 홀홀단신으로 상대하면서요. 그 모습은 아마 이른바 황빠, 심빠 그리고 나꼼수빠를 상대하는 것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게 되실거에요. 그의 키보드 워리어적인 기질은 거기서부터 엿보였습니다. 스스로를 밤의 조선일보 편집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그 후 진중권씨의 책이 나올 때 마다 기억하고 사서 읽기는 하였지만 그의 존재는 거의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가 저의 일이 상당히 바쁘기도 하고 늦은 학업을 다시 시작했던 시기였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그의 이름이 세간에 떠오른 건 제 기억에 황우석 박사 사건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진중권씨는 SBS전망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연일 황우석 박사를 비판하고 PD수첩을 지원하는 칼럼을 이 방송에서 쏟아 냈어요. 이 때부터 진중권씨의 발언 하나 하나는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게시판에서 티격 태격하는 모습은 지금과 전혀 다름이 없었고요. 그 뒤 2007년에 이른바 디워 사태가 있어고 2008년 촛불집회 때 진중권씨는 컬러TV를 진행하면서 일약 아이돌로 부상합니다. 이때부턴 진중권씨가 블로그로 한 마디 한 것은 바로 그 다음날 기사화되어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던 것이 있습니다. 진중권씨는 진보진영의 편이라는 착각말입니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가카는 오로지 가카 편인 것 처럼 진중권씨는 처음부터 누구의 편도 아니었어요. 항상 홀홀단신으로 비논리와 비이성을 대상으로 싸워왔지요. 민노당의 NL계열과도, 그리고 한때 절친했던 김규항씨와도 치열하게 싸운 사람이 그입니다. 진씨처럼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은 사람도 찾기가 힘들거에요. 그러니까 요 며칠 새에 불고 있는 나꼼수 논란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수 많은 트위터러들과 원색적으로 싸우는 그를 보니까 조독마에서 단신으로 싸우던 그가 생각나는군요. 

 

그런데 진중권씨 팬들도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그도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말이에요. 워낙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다 보니까 팩트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할 때도 꽤 많이 있어요. 황우석 박사 사태 때도 이른바 황빠들의 광기를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하면서 이 이론을 정립한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를 레온 파이닝거로 이야기했고 인지부조화도 약간 틀리게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경제 분야에 약해서 그 분야 이야기를 할 땐 오류가 많다고 해요. 그러한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중권씨는 훗날 굉장히 탁월한 논객으로 기억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럴만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어요. 캐릭터도 대단히 특이하고요.

    • [네 무덤을 침을 뱉으마]는 정말 걸작이죠. 초기에 미학 관련 특강하실 때는 수줍수줍한 모습이라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오프라인의 그런 모습과 저서의 과격함이 결합되어 치명적 매력으로 다가오더라구요ㅋㅋㅋㅋ 진교수님은 그 변함없는 자세가 좋아요. 비이성과 비논리에 매번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은 희귀하잖아요. 그 변함없음이 너무 좋습니다.
    • 조선일보에서도 싸우고 서프에서도 싸우고 이런 사람 정말 찾기 힘들겁니다 도장깨기 전문가인듯...
    • 무간돌/

      아 참 서프라이즈도 있었군요.
    • 저도 고딩 때 "네 무덤을~" 계기로 진중권에게 입문(?)
      같은 스탠스임에도 그의 말하는 스타일이 한번씩 심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 그 실력으로 전여오크나 송영선 좀 어떻게 박살을 좀 내어주었으면
    • 제가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읽었던 때엔 "논객" 하면 진중권 교수보단 강준만 교수였는데 이 분은 요즘 뭐하시나 모르겠어요.
    • 공식 진중권빠인 한윤형이 쓴 "안티 조선 운동사"에 당시 진중권의 행적이 잘 요약 정리되어있죠.
      사실 황, 심으로 인해 확 떴지만 그 이전에 이미 여러 곳에서 여러 일을 벌이고 있었는데, 결론은 뭐 자기가 몰랐으니 어디서 듣보잡이 튀어나왔던 거고
      이젠 진중권은 안끼어드는 곳이 없다, 말하는 싸가지가 없다, 말 싸가지 없게 하는게 다 생계형이다, 인기 얻으려고 저런다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리고 진중권하면 월장 사건도 빼놓으시면 안되는데 없네요. 이건 작아보여서 그런가. 그래도 대한민국 마초들이 이거 알면 진중권 싫어할 이유하나 늘 텐데...흠
    • loving_rabbit/

      요즘도 왕성하게 저작활동을 하고 계시죠. 이분만큼 다작도 드물거에요.
    • 김전일/

      그 사람들은 논평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
    • 아메닉/ 외국에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강교수 파급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그런가 얘기를 거의 못들어요.

      아 그리고 저는 진교수가 부인이랑 같이 쓴 "성의 미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wonderyears/

      아! 월장사건.. 그게 2000년대 초반쯤 있었죠. 그것도 빼 놓았네요.
    • 진중권이 가장 싫어하는 토론상대가 신지호래요.
    • 월장사건이 '키워'로서 첫 전적 아니었던가요? 제가 그때는 인터넷을 못하던 시절이라 정확히 잘 모르겠네요.

      저는 진중권을 '미학 오딧세이'로 처음 알게 됐죠. 당시 옛 운동권들이 이러저러한 청소년용 교양서를 내놨고 이게 출판시장에서 꽤나 먹혔었죠. 이진경의 '철학과 굴뚝청소부', 유시민의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 '거꾸로 읽는 세계사' 같은 부류요. 물론 운동권 대학생들이 더 많이 읽었지만. 그래서 제게 진중권은 거의 항상 이진경과 쌍으로 연결돼 떠오르네요.
    • 24601/

      조독마가 월장사건보다 먼저일거에요. 이회창씨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을 치를 무렵이었거든요. 근데 그땐 인터넷을 소수만 쓰던 때라 파급력이 그다지 크진 않았을거에요.
    • 월장사건 때 현장에서 보고 있었는데 역시 진중권.
    • 안티조선 우리모두도 빼놓으시면 안되죠. 변희재의 진중권에 대한 비뚤어진 애증이 시작된 곳.

      wonderyears/ 네. 육군벙장 진벙장이 홀홀단신으로 대한민국 마초 예비역들을 순식간에 소집해제 시켜버린 사건이었죠. 원래부터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데엔 일가견이 있었어요.
    • 와구미/ 진중권 공식 스톡허 변희재 아악~ 귀요미~
    • 김전일/ 이미 백분토론에서 송영선은 박살낸 적 있습니다. 토론 끝나고 뒤풀이 자리에서 진중권 멱살을 잡았다는 뒷얘기도 돌았죠.
    • 진중권이 키워로서 가장 위험했던 때는 누구 이름을 잘못쓴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자신의 "자살세"운운한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였죠. 아마 그때 노빠들에게 쌓인게 많을겁니다.
    • 철과와인/찾아보니 백분토론이 아니고 KBS '100인 토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요.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한 논의였고요.

      송영선은 당시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방연구원 (미국으로 치면 매파 성향)의 소장 자격으로 출연했네요. 어쩌다보니 다시보기 하고 있습니다.;
    • maxi/ 나중에 사과까지 했었죠. 이번의 너덜리즘에 대해서도 사과가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경솔한 발언이었다고 봅니다.
    • 둘이 완전히 딴 소리 하던거는 기억이 나네요. 주제는 같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서로 완전히 다른 통계를 들고나와 이야기를 하니 토론 자체가 안 되던거...
    • 가오가오/

      세상에.. 진중권씨가 사과를 다 할때도 있었군요
    • 죄송한데 월장 사건이 뭔가요??;
    • 아 좀 알아봤는데..그 때 이게 크게 논란이 되었나 봅니다. ㅎㅎ;
    • http://ko.wikipedia.org/wiki/진중권
    • amenic / 극우에 대한 분노가 지나친 나머지 선을 넘었다, 깊이 반성한다... 뭐 그런 식으로 사과했어요. 아마 이게 진보신당 게시판에서 그런 문제제기가 나와서 글을 썼던 기억이. (맞나?)
    • 진 교수는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린 ‘변명의 여지가 없지요’라는 글에서 “그것(자살세 발언 등)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라며 “변명의 여지가 없고, 아프게 반성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2004년 한 인터뷰에서 “정몽헌 현대아산회장의 자살에 대해 ‘사회적 타살’이라는 의견이 많았고…”라는 질문에 “자살할 짓 앞으로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웃음) 그걸 민주열사인 양 정권의 책임인 양 얘기를 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고, 앞으로 ‘자살세’를 걷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시체 치우는 것 짜증 나잖아요”라고 답했다.
    • amenic /황우석 심형래때 그 문제에 대해 계속 진중권 공격당했죠.(지긋지긋한 그 기사캡쳐 빨간줄 ;;)

      진중권이 이야기한건 한나라당 이하 보수언론들이 그 자살로 인해 본인들 논리를 강화하고 다시 그것을 상대편에게 재공격하는 비열함이 보여 예를 든다는것이 그런 표현이 되었다고 했어요.
      노통 서거후에 눈물이 흐른다는데서 이중적이네 뭐네 빈정대는 인간들한테 이유와 위와 같지만 표현이 지나쳤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 잘 읽었습니다. 좋은 정리인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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