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연애이야기
듀게 열등감 전문가 산체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제가 나름의 권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자랑이라고 하고 있는거 자체가 한심스럽습니다 .
일단 열등감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해 보도록 합시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보면 "다른 사람에 비하여 자기는 뒤떨어졌다거나 자기에게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만성적인 감정 또는 의식."이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 스스로가 남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게 열등감이죠. 열등감의 반대말은 자신감일 겁니다. 그렇다면 자신감이란, 스스로가 남들보다 잘났다는, 잘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못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죠.
많은 사람들은 이 열등감 혹은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둘 다 가질 수도 있죠. 외모에 있어서는 열등감에 시달리지만, 학벌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식으로요. 하지만 우리가 이 열등감에 대해서 고찰하고자 할 때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이게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겁니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 부여되는 특징이 아니라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 하면, 열등감을 지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져야 할 그럴 듯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서 열등감에 시달리는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근자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풀어서 얘기하면 근거없는 자신감이죠. "쟤는 진짜 볼 거 없는데 뭘 믿고 지 외모에 저렇게 자신감이 넘치나 몰라"라고 말할 때처럼, 어떤 사람이 어떤 분야에 대해 꼭 남들보다 나아야 자신감을 가지는건 아닙니다. 객관적인 기준에서 봤을 때 그 누구보다 못한데도 본인은 자신감에 충만할 수 있어요. 반대로 진짜 어딜봐도 말짱한데 열등감에 시달릴 수도 있는 거에요. 예전, 아니 최근까지도 그런 뉴스를 본 거 같아요. 국내 유명 사립대에 다니고 있는데 서울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 왜 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죠. 저도 이해 못하겠어요. 하지만, 분명 그 사람 입장에서는 비록 그게 남들한테 납득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학벌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었을 겁니다. 가끔보면, "너는 그런 열등감에 시달릴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꾸 왜 그러는거니"같이 충고나 위로를 해주시는 분들을 볼 수 있는데, 그 위로를 받는 사람이 그걸 몰라서 그러고 있는게 아닙니다.
그럼 사람들은 도대체 왜 열등감에 시달리게 되는 걸까요. 저는 비겁한 놈이라 이게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후천적 환경에 의해 충분히 변동될 여지가 있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타고나는게 있잖아요. 키라든가, 지능이라든가, 성격이라든가, 한 개인을 구성하는 수많은 특징들이, 그 개인의 노력이나 자라난 환경과는 관계없이 어느 정도는 결정된 상태로 주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열등감의 경우에 있어서도, 특히 만성적인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게 타고난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잘되면 자신감을 얻게 되고, 자신이 하는 일이 잘 안풀리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일이 안풀려도 자신감에 충만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남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하여튼 그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자신감에 차 있을 수 있는거잖아요. 반면 딱히 안되는 일은 없지면 열등감에 시달릴 수도 있죠. 그렇다면 이 경우는 그런 성격을 타고 났다고 보는게 맞지 않을까요? 물론 살아온 환경이 어땠느냐에 따라서 열등감을 잘 느끼는 사람의 경우에도, 별 다른 열등감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살아온 환경 자체도 열등감에 빠지기 쉬운 것이었다면?
어떤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어떤 성취를 이루게 될 때, 이 열등감이나 자신감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다 안된다고 했지만 스스로는 자신감에 차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례도 많이 찾을 수 있는 반면, 열등감에 빠져 만족하지 못하고 한 분야에 더 매진 한 것이 오히려 그 분야에 엄청난 업적을 이루게 된 요인이 된 사례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연애에 있어서 만큼은, 열등감과 자신감은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자신감 있어도 연애 못하는 경우 많죠. 하지만 내가 연애를 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 가득차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연애에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확신합니다. 열등감에 가득 찬 채로 미친 듯이 노력해서 불멸의 문학 작품을 남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열등감에 가득 찬 채로 미친 듯이 노력해봤자 연애에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리 진상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더러 "니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지" 같은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 말이 씨가 되어 그 사람이 열등감에 빠지게 되는 날엔 진짜 안될 것이 분명하거든요.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입니다. 자신감있다고 다 되는건 아니죠. 하지만 열등감에 차 있으면 절대로 안됩니다.
자 여기 어떤 불쌍한 사람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가정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제 이야기 입니다. 저는 열등감을 느끼기 쉽도록 타고난 것 같습니다. 연애사 뿐 아니라 외모든 공부든 뭐든 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남들보다 못났는지는 모르겠는데(아마 실제로도 그렇겠죠) 저는 제가 남들보다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주제가 연애이니, 연애사에 관련해서 제 열등감이 어떻게 성장하고 완성되었는지 초점을 맞춰보죠. 처음부터 제가 연애사와 관련해 열등감에 빠져있던건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는 멋모르는 꼬맹이였죠. 천둥벌거숭이처럼 돌아다니다가 스무살이 되기 이전에, 제 열등감이 미처 꽃을 피우기 이전에 연애에 성공해 보기도 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 때는 제가 연애에 대해 열등감이 없어서 그게 되었던거 같습니다. 나름 오랜 기간 연애를 하고 남들 다 겪는 실연의 아픔도 겪어보고 군대에 다녀왔을 때 저는 꿈 많은 복학생이었습니다. 비록 내가 엄청 잘난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연애에 성공할 줄 알았죠.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습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됐죠. 그게 어느새 1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과정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열등감은 저를 정복해 버렸죠. 아마 제가 처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 볼 때 연애에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열등감이 아닐 겁니다. 그 때는 아마 그런게 없었을거에요. 하지만 제가 이제와서 연애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열등감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열등감을 보여주려고 용을 쓰지 않아도, 열등감이라는 놈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원빈을 뒤에서 보이는 후광처럼, 열등감은 제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를 감싸고 있습니다. 이게 남들에게 보이는 한, 제가 연애하는건 히어로즈가 코리안 시리즈 우승하는 것 만큼이나 요원한 일입니다.
저는 열등감에 가득 차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 또한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김진태씨 만화에 보면 교도소에서 갓 나온 죄수들이 여자를 보고, '여자 여자 여자' 라는 구호를 외치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게 픽션이 아닙니다. 진짜 그 말을 입밖으로 냈다가는 경찰 아저씨들께 민폐를 끼쳐드릴 수도 있기에, 차마 뱉지는 못하고 조용히 눈과 고개만 돌아갑니다. 아주 재빨라요. 일단 여자다 싶으면 돌아갑니다. 예쁘고 아니고는 그 다음 문제고요. 하여튼 이렇게 불쌍한 짓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열등감에 시달리면서 여자를 만나기는 어려우니, 열등감을 버리거나 최소한 여자 만날 때는 안그런 척을 해라" 으아아아 정말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좋은 조언입니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정말 어려워요. 아예 성격이 안그렇다면 모르겠지만, 가뜩이나 왠만하면 열등감을 달고 사는 처지라 열등감을 없애버리기 어렵습니다. "아니 너는 그럴 필요가 없다니까." 따위의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위에서 살펴봤던 것처럼, 열등감에 빠지는 사람이 어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유 때문에 그렇게 되는건 아니에요. 아니 열등감을 가질만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이유가 있는 사람이 자신감에 충만한 경우도 많아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걸 어쩌라고요. 두 번째 방안으로, 실제로는 열등감에 빠져있지만 필요한 상황에서 만큼은 아닌 척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정상인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는 거죠. 좋아하는 캐릭터 코스프레는 그게 좋으니까 열심히 하게 되지만, 정상인 코스프레는 딱히 그게 좋아서 하는게 아니거든요. 그렇게 자연스럽지도 않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답답합니다. 그나마 잘하는 자학개그도 못치니까 상대방을 즐겁게 하지도 못해요. 멀뚱멀뚱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내가 아닌 것 같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등감이 워낙 만성이 되다보니 열등감이 없는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열등감은 아마 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특징일 겁니다.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연애할 수 없다. 하지만 연애해야 한다. 따라서 열등감을 극복해야 한다" 라는 논증은 몇 가지 기술적인 보정을 거치면 modus tollens 규칙에 의해 타당한 것으로 판정이 됩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열등감을 극복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해서, 더 이상 내가 나이지 않으면서 까지 연애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여자랑 문자도 주고 받고, 맛있는거 나눠먹고 싶지만, 아니 그래도 될 것 같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하려 노력하면서 고생하고, 그게 되지 않아 또다른 자괴에 빠져서 허우적대기 보다는 차라리 연애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사는게 덜 힘들거라고 판단했습니다. 최고로 행복해지는 길이 어렵다면, 최악으로 불행해지는 길은 피해야 되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아직 여전히 행복하진 않습니다. 쓸쓸하고 외롭고 우울하죠. 하지만 예전보다 조금은 편해진 것 같습니다.
글쎄 이건 조언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것 같습니다만... 분명 제 길이 최선은 아닙니다. 차선도 아닙니다. 가능하다면 열등감의 사슬을 끊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서 원하는 인연을 쟁취하는게 최선일 겁니다. 분명 그럴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해서 너무 힘들고 안타깝고 짜증나고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으로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 된다면, 이 길도 나쁘진 않다고 말씀드릴 수는 있습니다. 절대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놈도 있다"는 소개라고 보시면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