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거부의 논란에 대한, 역사적으로 본 아나키스트들의 전략적 선택,
- 사실 전에 올렸던 글보다 이 글을 먼저 쓰려고 했었는데, 흥분해서 그만 순서를 바꾸었죠, 다 때려치고 탈퇴하여, 유유자적(?)한 삶을 다시 즐길까도 생각해봤으나, m모님과의 재미있는 대화가 제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네, 뭐 어차피 멸종할 사람으로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삶이란 그저 그렇게 계속 이어져 나가는 것, 우리는 어차피 2012에 다 멸종할 예정(...),
- 정리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몇 가지, 이 글은 좌파적 입장의 글이긴 하지만, '좌파 일반'의 정서를 대변하는 글은 아닙니다, 좌파중에서도 투표에 대한 입장(넓게 보아 대의제에 대한 입장)은 천차만별로 나뉘어지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좌파 중에서도 조금 덜 왼쪽에 있는 분들은 거부감이나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겝니다, 또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 또한, 같은 좌파라 할지라도 입장에 따라 조금(또는 많이) 해석이 달라지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틀렸다고 논쟁을 벌이기 보다는, 양해하고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물론 사실에 있어서 잘못된 부분의 지적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해서는 위키백과나 다른 여러가지 문서들을 참조하시는 걸로 충분하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더 깊이 들어가봐야 또 다른 글과 논쟁을 필요로 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 것만큼, 아나키스트들의 기본 입장(들)에 대해서는 패스하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 다루어야 할 주제에 비추어,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중 한 가지 원칙만 설명하고 넘어가자면, 바로 '직접행동의 원리'입니다, 앞서 유나바머 선언문에 대해 소개할 때도 언급했지만, 개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하는 정치적, 철학적 입장을 선택하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원리 중 하나이죠, 바로 자신의 삷을 자신이 선택하는 것,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거나, 내맡기지 않는 것, 모든 사회제도, 윤리, 검열, 도덕, 고정관념들로부터의 해방, 자신의 판단으로서, 자율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이 원리에 내포된 사상입니다,
- 바로 이런 근본 토대 하에서, '대의민주주의(제)'에 대한 거부와 비판이 뒤따라 나오게 됩니다, 바쿠닌은 '대의제도는 민중을 위한 보증이 되기는 커녕 정반대로 민중을 통치하기 위한 일종의 귀족정치의 존속을 창출하고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대의제란 아나키스트에게 '귀족정치', '엘리트주의'와 동의어가 됩니다, 현대 정치의 일반적 특성을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메이저 정치계에 저학력자, 저소득자, 소수자가 진입하는 것이 쉽습니까? 혹은 그들의 목소리가 잘 대변되고 있습니까? 드물게 그러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이 메이저 정치계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은 어떤 메이저 정치인보다 더 빠르게 '주류화'되거나, 끝까지 거기에 섞이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하는 경우거나, 둘 중 하나가 되기 십상입니다(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고졸' 출신 대통령의 말로를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대의제에 대한 비판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최근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저항운동의 목소리들 중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되짚기 시작하는 흐름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낸시 프레이저는 '대의' 개념에 대한 재구성(대의의 틀 자체를 구성하는 과정을 민주화시키는 것)을 주장합니다, 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대한 글에서,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을 분석하고, '정치 자체의 원리'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결론을, '여러 정체들 중 하나의 정체가 아니라, 모든 정체의 아나키적 원리'라고 말합니다(랑시에르는 민주주의에 있어 추첨제를 떠올리는 주장도 많이 했죠), 원래 '급진 좌파' 중 하나였던 알랭 바디우 또한 유명한 투표 거부자 답게, 68년 이후 투표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 언젠가 삭제한 어떤 글에서도,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물었던 적이 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현행의 투표/선거 제도가 공정하고, 정의롭고, 민의를 잘 대표하는 제도인지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물론 이런 입장에 찬성하면서도, 대의제를 지지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 믿습니다, 투표 거부 의사를 밝히신 많은 분들 중에도, 이러한 제도 하에서 '뽑을 사람이 없음' 자체에 대해서만 회의하는 분들도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회의하신다면, 도대체 왜 대의제 하에서는 '뽑을 사람이 없는', 엿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지에 대한 근본적 고민 또한 필요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위에 언급한 대로, '대의제' 자체의 문제점 때문에 그렇습니다, 설령 '대의제'가 옳은 제도라 할지라도 적어도 현재의 '대의제'가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다들 인정하시리라 믿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온건한 투표 거부자들은 선거법의 개정에 필사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요),
- 어쨌든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 이러한 대의제에 대한 거부는 19세기 이전까지는 그다지 큰 골치거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19세기 중반의 대규모 노동자 혁명의 결과로 각국에서 보통선거권이 확산되기 이전까지는 '투표'란 한 줌의 사람들만이 선거권을 가지는,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이었죠, 프랑스혁명 시기부터, 사람들은 '재산'에 따라, 혹은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투표하는 '제한선거권'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정부에 반대하는 자들에겐 '선거권'과 '시민권'의 박탈이 동시에 행해졌습니다(빅토르 위고는 그래서 나폴레옹 3세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망명지에서 반평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보통선거권'이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꼬이기 시작했죠, 투쟁의 결과이든, 지배층의 '혁명 막기' 정책의 결과이든, 이제 성인남성(...여전히 여성은 제외되어 있었습니다)에겐 '자유로운' 투표의 권리가 보장되기 시작했습니다(프랑스1848, 미국-독일1870, 이탈리아1912, 영국1918, 일본1925)
- 그러므로서, 좌파 세력에게도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좌파 세력은 '분열'(네, 진보는 분열로 말합니다...)되기 시작합니다, 그 세세한 흐름까지 제 능력으로 여기서 다 되짚을 수는 없겠지만, 가장 큰 주요한 사건은 역시 '사민당'의 창당과, '사민주의'의 대두가 있겠지요, 한편에 '혁명'과 '봉기'로 노동자 세상을 만들겠다는 세력이 있었다면, 베른슈타인이 주창한 '수정주의', 맑스가 주장한 자본주의 소멸론은 근거가 없으며, 사회주의로의 길은 그러한 방법으로 이룰 수 없고, 노동자정당이 의회에서 다수정당을 차지하는 순간, 사회주의는 자동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주장하는 세력이 한 축으로 자리잡습니다, 지금은 그다지 매력적인 주제가 아니지만, 한 때 이러한 '수정주의 논쟁'은 좌파들에게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어쨌든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좌파들은 이 두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했으며, 그 선택이 현재의 저항운동의 영토를 결정했습니다, 그 선택지중 어느 것을 선택했어야 하는가, 그것은 지금도 누구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베른슈타인이 구상했던대로, 노동자 정당의 승리가 '사회주의'의 승리를 가져온다는 테제는 현재 시점에서 100% 옳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민주의 정당과 정치는 그 이후, 꾸준히 성장해 다수당과, 집권당을 경험했지만, 또한 꾸준히 '중도화' 되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정책에 있어서는 보수 정당 뺨치는 헛발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민당의 '전쟁국채발행법' 통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레닌이 이 소식을 듣고 보수 세력의 '선동'이라고 헛소리 말라고 일축한 이야기는 유명하죠;), 또한 최근 유럽 좌파 정당들이 어떤 삽질을 하고 있는지는 국제뉴스를 보시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 어쨌든 이렇게 사민당(영국 노동당도 포함한다면)은 공식적으로 급진적 좌파 세력과 결별(1959년의 독일 사민당의 '국민 정당' 선언)하고, 그로 인해 원래 한 형제였던 좌파 운동 세력과 연대를 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서로 다른 언어로 떠들다가 파토가 나버리는 상황이 반복되게 됩니다(...), 원외와 원내의 입장 차는 이처럼 커져만 갔고, 원외의 좌파 세력들에게도 선택의 압력은 커져만 갔죠, 집 나간 형이 자꾸 우리집 땅을 팔자고 하는데, 당최 그게 옳은 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형이 보낸 심부름꾼들이 자꾸 내 땅문서 내놓으라고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기서 또 하나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일단은 노동자 정당에 힘을 몰아주자, 그래서 우리가 탄압받는 것부터 멈추게 하자-가 첫 번째 길, 사회주의 세상을 만드는 데 선거나 투표같은 부르주아적 길은 필요 없지만, 일단 전략적인 투표의 길이 필요할 때는 연대하자-는 것이 두 번째 길, 닥치고 무장봉기와 혁명! 수정주의자들 꺼지셈!-이 세번째 길이었습니다,
- 물론 아나키스트들은 상기한 입장들 모두에 비판적 입장이었으면서도, 굳이 분류하자면 세번째 길과 연대하고 있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의 모든 혁명에서 아나키스트들의 이름을 찾아보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아나키스트들은 직접행동의 원칙 아래, 좌파 세력들과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적어도 숫자상으로, 좌파 세력은 수정주의자와 혁명 세력들이 반반 정도 되었으므로, 그렇게 큰 갈등 또한 없었습니다, 일례로 프루동은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 위해 보통선거권을 이용하는 것을 바라보며,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게 됩니다(이때 프루동이 사용한 전략이 바로 '무효표 만들기'입니다), 어차피 이 때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루이 보나파르트가 어떤 의미에서 선거를 이용하고 있는지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투표 거부'라는 연대가 비교적 쉬웠습니다(...그러나 현실은 '투표'로 황제직에 선출, 나폴레옹 3세의 등장), 이러한 현실에 반대해,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스페인 등지에서 아나키스트들과 생디칼리스트들은 꾸준히 세력이 증가하고 있었으며, 공장 점거와 파업, 테러, 요인 암살등으로 이미 유럽의 지배층에게는 암적 존재로 낙인 찍힌 상황이었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아나키스트들에게, 심대한 도전이 된 시험대는 20세기 초중반의 유럽이었습니다,
- 20세기 초의 유럽 상황은 지금의 한국 상황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늘어만 가는 진보세력들의 다양한 요구와 충돌,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그 갈등을 풀어나갈 의지와 능력이 없는 정부, 거기에 겹쳐진 경제 위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계를 뒤흔든 하나의 정치 세력이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때였으니, 바로 '파시즘'의 출현이었습니다, 사실 우파 세력에게도 파시즘은 트러블이었으나, 좌파 세력에게는 자신들의 근간까지 뒤흔드는, 재앙 수준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많은 좌파 이론가들이 예견한대로, 자본주의의 위기는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뿌리 없는 세력인 파시즘을 선택했지요, 2차대전을 전후해, 많은 명망 있는 좌파 이론가들이 그렇게도 파시즘 연구에 집착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어쨌든 파시즘의 대두는 좌우를 막론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가지고 그들에게 대항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 글에서 이 부분이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이 파시스트들이 집권하는 과정은 바로 '(대의)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교묘하게 '악용'함으로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전략은 제가 늘어놓지 않아도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대중의 좌절에 대한 부추김과 교묘한 선동, 좌우 엘리트들에 대한 증오감에의 부채질, 장미빛 미래에 대한 (거짓과 사기로 점철된) 약속... 등등, 어쨌든 양식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현존하는 파시즘의 위협에 대해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겠다는 의견을 같이 합니다(어디서 많이 본 상황입니다, 파시즘을 빼고 한나라당을 대입해 읽어보세요),
- 다수의 좌파가 그들에 대항해 선택한 전략은 바로 '인민전선'이었습니다(이 전략에 대한 복잡한 이론적, 역사적 배경은 간단하게 생략하겠습니다, 이 전략이 스탈린의 사회파시즘론과 대항하는 전략이었다는 것, 독일에서의 나치즘의 승리로 사회파시즘론이 패배하고, 코민테른은 인민전선론을 선택했다는 정도만 알아두시면 좋겠지요), 아마 더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좌우합작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요는 그것입니다, 투표로 좌우를 막론한 대연합 세력이 내각을 구성하고, 현재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 홉스봄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단결한 노동자세력(통일전선)이 민주주의자들 및 자유주의자들과의 보다 넓은 선거적, 정치적 연합(인민전선)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인민전선의 실험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투표와 선거에 부정적이었던 정치 세력들이 내각에 참여하거나, 대규모로 투표에 참여했습니다, 볼셰비키의 공산당, 아나키스트들, 비의회적 사회주의자들... 이 실험에서 드러난 이 전략적 선택의 중요한 부정적 요인은 몇 가지가 있습니다, 몇 가지 나열하자면, 1. 집결한 좌우 세력들은 서로간의 갈등만 증폭됐을 뿐, 공동의 적인 파시즘을 막는데 전혀 효과적인 전술을 펼치지 못했습니다(오히려 그들의 승리를 돕거나 방조한 면도 있습니다), 2. 선출된 '인민전선' 정부는 도대체 '인민'의 정부가 맞기나 한건지, 어리둥절하거나 두루뭉술한 정책으로 혼란을 자초했습니다, 3. 내각에 참여한 소수 좌파들이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물론 이것은 공산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의 잘못이 맞습니다),
-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인민전선이라고 부르는 대규모 실험은 두 국가의 예를 주로 듭니다, 바로 프랑스와 스페인, '응? 프랑스에도 파시즘의 위협이 있었나요?' 하고, 물으실지 모르지만, 프랑스에서도 극우 세력의 또라이짓은 유명합니다; '악시옹 프랑세즈'의 세력 증가가 만만찮았고, 거기에 찬동하는 보수 세력의 숫자도 무시할 만한 것이 못되었죠, 히틀러가 집권하자 이들의 준동 또한 점차 폭력적으로 변해 갑니다, 1934년 2월 6일의 우익/파쇼 단체의 의회 공격 사건이 있자, 2월 12일 노동총동맹(CGT)이 시위를 조직하고 사회당도 이에 동참합니다, 공산당계의 통일노동총동맹(CGTU) 또한 시위를 조직하고, 이들은 판파시스트 구호를 공통적으로 채택했습니다, 그 후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의 증가, 소련과 프랑스의 수교의 통합 분위기는 36년 4월의 총선거에서 인민전선파의 압승으로 나타납니다, 사회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레옹 블룸이 총리로 취임하죠,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는 마치 축제 분위기와 같았죠, 우리가 2002 승리에서 얼마간 마치 축제 분위기를 이어간 것처럼, 새 세상이 올 것만 같은 열망으로 각종 사회적 요구가 속출했습니다, 한국의 민노당이 2002 승리 이후, 총선에서 10석을 차지하는 비약적 승리를 거둔 것처럼, 프랑스 공산당의 당원 숫자도 3만명에서 11만 7천명으로 급증합니다(사회당 97->147석, 공산당 10->72석), 그러나... 1에서 살펴본 것처럼 블룸 정부는 내각에서 공산당 인사를 배제했습니다(물론 이는 스탈린의 암묵적 동조도 한몫했습니다만), 선거전에서의 연합 과정에서 갈등도 표출됐습니다(어쩜 이리 현상황과 똑같은지!), 급진당은 반파시즘 구호에 집착하고, 사회개혁에는 미온적이었습니다, 사회당은 구조적 사회개혁을 주장했고, 공산당은 의외로 중도적 입장을 지켰지요, 총선 직전에야 3당은 연합에 합의했는데, 반파시즘 의제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합의가 된 것이 없었습니다, 갈등의 불씨가 남아있는 상태였지요, 더 큰 문제는 2에서 살펴보듯이, 블룸의 사회당 정권이 보수적 입장으로 선회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총선 승리 이후, 프랑스 노동자들은 '단체협상인정', '직장위원선출인정', '최저임금보장', '잔업거부', '작업속도완화', '40시간노동', '유급휴가' 등등의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를 내걸고 파업을 벌입니다, 이 파업의 와중에서 노동자들과 인민의 힘을 발견했던 것이 바로 시몬느 베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죠? 노동자들과 좌파들이 전략적으로 선출한 정부가 이상한 발언들을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나로서는 질서와 무정부 상태 사이에서 이미 선택을 했다. 나는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질서를 유지할 것이다." : 내무장관 로제 살랭그로
"파업을 시작했으면 끝낼 줄도 알아야 한다" : 공산당 서기장 모리스 토레즈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 공산당 일간지 '뤼마니떼'
그 뿐입니까? 이 때 선출된 의회가 여전히 전쟁 전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비시 정부에 너무나도 무력하게 권력을 넘겨줍니다, 바로 옆 동네 스페인에서 인민전선 정부를 부정하고, 프랑코의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블룸 정부는 다른 서구 연합국과 같이 '비개입'합니다(이건 말이 비개입과 불간섭이지, 자국의 어떤 민간지원 통로도 막아버린, 사실상의 공격입니다), 이후의 좌파들이 뼈저리게 느꼈던, 또 반복해야 했던 배반감의 시초입니다, 물론 저는 그래서 현재의 급진 좌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연합은 좌파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우파에게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이 '전략적 선택'은 우리에게 여러 생각해 볼 거리와 교훈을 남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희망 또한 남겨주었지요, 선출된 권력이 자신의 지지자가 누구인지, 또한 자신들이 지켜야 할 것이 진정 무엇인지만 잊지 않는다면,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실수 또한 할 수 있지만, 큰 그림은 여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인민전선의 경험이 우리에게 소중한 무엇인가를 남겨주었다는 것은 부정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근시안적 목표(파시즘이나 한나라당 반대같은)에 그치지 않고, 더 거시적이고 넓은 목표(사회개혁이나 불평등해소같은)에서 합의를 이뤄나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추상적 악에 대한 반대는 결국 모든 논의를 뒤섞고, 여러 목소리를 억압합니다, 좌파들이 전적으로 잘했다고 할 수 없는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3에서 보듯이, 인민전선이 실패한 것은, 좌파 내부의 삽질 또한 컸다는 것을 어떤 사람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스페인의 인민전선 사례가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이 지점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아나키스트들의 인민전선 참여는 이미 상식이 되어 있었습니다(프랑스의 경우에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스페인은 달랐습니다), 투표 뿐 아니라 정치운동 자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나키스트들의 기본 모토입니다만, 놀랍게도 스페인에서는 내각에까지 참여했습니다(물론 각 지방에서의 파시스트들과의 싸움, 무장 투쟁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랜드 앤 프리덤', '카탈로니아 찬가'등을 보시면 이 때의 분위기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좌파의 본질인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한 투쟁도 비록 삐걱거렸지만, 이곳에서 제대로 진면목이 드러났지요, 앞서 얘기한 민간지원 통로가 막혀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의 좌파들은 밀입국과 불법활동을 통해 스페인의 인민전선을 지원했습니다(내전이 끝난 뒤, 이들 자원자-전쟁포로들은 본국이 거부하여 귀환도 하지 못했습니다), 스페인의 경우에도 앞서 얘기한 1-3의 문제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어쩌면 프랑스보다 더 심각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세력보다 급진적인 아나키스트들이 이곳에서는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갈등은 복잡한 국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왕정을 몰아내고 등장한 공화정과 새 헌법은 토지개혁에 대한 안을 둘러싸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이미 지방에서는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토지의 무상분배가 실현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전쟁이 지속되면서,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들은 굉장히 큰 딜레마와 자기모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내전으로 인해 피를 흘려야 한다는 것,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 반목을 거듭하는 좌파들과의 공격에서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것,
-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스페인 인민전선의 승리 직후, 아나키스트들은 충분히 자신의 세력을 결집시켜 혁명을 굳힐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온건파는 조직과 정부 관료 내에서 힘을 얻지 못하고 고립되어 있었고, 과격파는 이들의 활동을 무시하며 지방에서의 혁명 사업에만 열중했습니다, 이것이 차라리 투표와 내각에 안 참여한것만 못한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정부 내에서는 우파 공화주의자들에게 밀리고, 적대시 당했으며, 지방에서는 스탈린주의자들의 견제로 인해 흔들렸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친 자신감과 자만 때문이었죠, 아직도 아나키스트들이 동료 좌파들로부터, 혹은 우파로부터 '순혈주의자'나, '이상주의자', '고집불통'으로 치부당하는 것도 다 이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혁명은 결코 독점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개혁이나 변화의 열망도 독점될 수 없습니다, 좌파는 우파도 또한 그것을 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때로는 좌파가 그것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도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위에 열거한 사례로부터 배워야만 할 때, 제가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아나키스트(혹은 좌파)는 자신의 원칙이 장기적으로 지켜져 나갈 것을 믿고, 그렇게 할 의지와 행동력이 있다면 연합하는 것을 두려워 하거나 배척해서는 안됩니다, 방법론적 원칙은 좋지만, 그것이 도그마가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서 우리는 선거와 투표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습니다, 누가 적이고 친구일지 가려내는 것보다, 누가 뜻을 같이 할 만한 사람인지, 끝까지 같이 갈 수 있을 사람인지 판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각 세력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는 것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뜻을 같이하기로 일단 마음 먹었으면, 뒤통수를 맞기 전에 쳐야 한다는 부시스런 생각은 버리고, 상대가 왜 지금 저런 발언과 행동을 하는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일단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서로간에 택해야 할 선택지도 늘어나겠지요, 우파는 상대가 왜 투표에서 기권하는지, 자신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지 알아야 하고, 좌파는 우파가 가진 세계관을 알아야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영리하게 하나씩 얻어내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합의하고, 손을 잡아야 합니다, '지옥 같은 세계'를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천국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합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 믿는 세계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어떤 억압과 압제에서도 해방되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입니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우파들 대부분의 협력과 동의가 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해 설득하고, 구걸하고, 호소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우파들 또한 자신들이 만드는 세계가 정말 더 나은 세계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위해 설득하고, 구걸하고, 호소해야 합니다, 폭력을 동원하고, 협박하고, 사기치고, 비아냥거리거나 조소하지 않고 말입니다,
- 제가 생각하는 전략적 선택은, 그런 것입니다, 상대방을 쓸어버리거나 흡수해버리는 방법은, 결코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그냥 무식하고 멍청한 배제의 방법일 뿐입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대통합'의 정치는, 전자보다는 후자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역사는 왜 반복되어야 하는지, 그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인민전선의 실패는 위에 열거했듯이, 어떤 한 세력이 잘못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다들 잘못한 겁니다, 너도 나도 잘못했다는, '내탓이오'의 정치를 실현한다면, 선역을 독점하려는 세력이 사라진다면, 최소한 우리 사회는 조금은 살 만한 세상이 되겠지요, 그것이, 그냥 이 글의 작은 결론입니다,
덧) 뭔가 더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그냥 또 잡담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