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여부에 대한 고민의 답.

큰 득표차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어 다행입니다. 덕분에 글쓰기버튼을 누를 수 있었어요.

 

어제 글 올리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부족한 제 고민이 진보진영 지지자들의 투표거부선언으로 받아들여질까봐 오만한 염려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야권단일화가 시대의 요구가 되고 투표요구가 가장 거센 상황에, 투표 여부에 대한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용납될까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댓글이 달리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글을 열었는데, 제 고민을 존중해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몸둘 바를 몰랐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큰 위로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선거때마다 진보진영 사람들은 참 많이 싸워야합니다. 거리에서부터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까지요. 후보가 있을 때면 그 후보를 찍어야하는 상황때문에 후보가 없으면 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것에서부터. 좌파가 되면서 한 순간도 선거할 때마다 편한 적이 없었어요. 어떤 선택을 해도 다른 마음으로 늘 괴롭더군요. 

 

어제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퇴근했습니다. 부러 퇴근길에 걸어갔어요. 투표소까지 갈 시간을 조금 벌자는 생각에서요. 원체 걸음이 느리고 두리번 거리면서 걷는 유형이지만 어제는 더 느려지고 더 두리번 거리게 되더군요. 괜히 가게 간판을 읽어보고 읽을 간판이 없을 땐 자동차 번호판이라도 읽어보고 전봇대에 붙어있는 전단지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이유를 찾고 싶었거든요.

 

어제 글 말미에 적었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가 투표하러 갈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한 걸음 한 걸음이 얼마나 무겁던지요. 그 무거움에 대한 책임을 제가 온전히 질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저를 계속 괴롭혔습니다. 어제 아침, 누굴 찍을지 알려달라는 부모님께 나경원이 박원순보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더 못할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게 참 어려웠던 기억까지...

 

유치한 짓도 서슴치 않았어요. 4층인 투표소에 일부러 계단을 올라가면서, 찍겠다, 찍지 않겠다로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2층에 도달하는 순간 후회했지만요-_-;

 

집에 들어오는 순간, 다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투표결과가 어떻게 될지...

 

컴퓨터를 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홍세화 선생님의 진보신당 대표 출마선언문을 읽었어요.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홍세화 선생님을 말씀을.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푹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신념은 '내가 옳다고 믿은 가치관에 대해서 항상 의심하는 사람이 되자'입니다. 늘 의심하고 고민하고 싸우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어려웠던 선거를 내내 되뇌면서 살아갈 생각입니다. 이게 제 투표여부에 대한 고민의 답이 되리라 봅니다. 어떤 상처를 입더라도, 상처에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진보신당 당원이 되겠다고 다짐하면서요.

 

홍세화 선생님 말씀처럼 홍세화 선생님을 딛고

"비정규직 없는 평등국가, 핵과 자연 수탈이 없는 생태국가, 전쟁 없는 평화국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연대국가를 만들기 위해...금지된 것을 욕망하고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불온함 속에 세상을 바꾸는"

실천을 해야겠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 저도 지난 두번의 대선에서 고민이 컸던 터라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갔답니다. 이번 홍세화씨 글 감동적으로 읽었네요. 다시 시작하는 마음 좋아요, 힘내십쇼.
    • 결말이 하이킥처럼 끝나는군요! 왠지 커즈유어마걸~이 들리는 듯...은 농담이고요.
      항상 투표 이상의 실천을 하시니 난데없이낙타를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절대 비난할 수 없을 겁니다.
      비록 이번 투표에 대한 생각은 저와 달랐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부끄럽구요. 감사합니다.
    • 생각이 같은 부분도 다른 부분도 있지만, 언제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듀게에서도 디피에서도.
      그런 글을 올리는 일이 '용기'까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면 더 좋겠네요.
      더 좋은건 그런 고민이 필요없는 상황이겠지만요.
    • 낙타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낙타님의 선거고민을 보고 자신을 많이 돌아보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은 한걸음 한걸음이 될테지만 힘내세요. 저도 힘낼께요!
    • 저두 요즘 심란했는데, 님의 글을 보니 좀 힘을 얻네요. 다시 시작하는 거죠 뭐ㅎㅎ 우리 같이 힘내요~
    • 고민하고 실천하는 분들이 계셔서 세상이 조금씩 바뀌는 것이겠지요, 기운내시고 좋은 하루 되셔요. :)
    • 많이 힘드셨을 거 압니다. 어젯 밤에 낙타님 글 읽으면서 울면서 잠들고 오늘 아침엔 또 홍세화 선생님 글 읽으면서 또 울었네요.
      더 단단하고, 굳건히,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함께 싸워요.
    • 항상 존경하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먼 길이지 않습니까. 너무 많은 짐을 홀로 무겁게 지려하지 마시고, 조금만 더 내려 놓으시면 더 좋을 듯 싶어요. 지치지 말고 계속 나아가야죠.
    • 모두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동보다 말이 많은 부족한 제가 아닌, 활동하는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전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저는 아무 말할 자격도 없지만, 힘 내요 낙타를님.
      좋은 날이 소리소문 없이 오리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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