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누가 당선되어도 희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투표를 할 따름이지요.

1. 시스템을 개발하고 유지보수하는 업종에 있다 보니 시스템을 개선하고 보다 나은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실감하게 됩니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세워 고생한 결과라도 클라이언트가 바라 볼 때에는 겨우 이 정도를 수정하기 위해서 그런 비용을 지불했는가라는 불만을 가지기 쉽고 이를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중요하고 거대한 시스템일수록 작은 개선을 만들어 내는 것에는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소요됩니다. 그렇다고 그런 개선의 노력이나 현상유지에 대한 대책이 없이 버그가 있는 현재의 시스템을 방기한다면 결국엔 누적되는 에러는 결국 상상 이상의 비용으로 되돌아 오게 마련입니다.

 

2. 선거는 현재의 시스템의 문제를 진단하고 개선하기 위한 의사결정 프로세스이지만 사실 조금은 성가시고 합리적인 결과를 보증해 주는 프로세스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주어지는 한 표이기에 굉장히 깊은 고민으로 무엇이 최선인가 선택한 한 표도 아무 생각 없이 심지 뽑듯 낭비하는 한 표도 편견에 가득한 불합리에 의거한 한 표도 모두 동등한 한 표로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때문에 모든 보통 사람에게 투표의 권한을 주는 이 시스템의 구축과정은 지난한 것이었건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동등한 엔드유저의 입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선거라는 프로세스는 때로는 낭비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양태를 띄기도 합니다.

 

 3. 선거 때 마다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말은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놈은 최악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뽑는다라는 선택은 흔하게 경험하게 됩니다. 하지만 악이라는 가치 판단의 말이 들어가는 순간 그 선택은 합리가 아닌 감정에 의해 결정 나게 됩니다. 기실 제도가 아닌 사람을 뽑는 것이 선거이기에 어떤 정책이 자신에게 더 유리한 것인가를 생각하기에 앞서 사람에 대한 호불호에 의거하여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어떤 선거의 결과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고 절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요.

 

4. 정책선거가 인물선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긴 하지만 전 여전히 무엇을 하겠다라는 공약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 고민과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 행동의 간극은 아무리 진중한 사전 검토가 있다고 하더라도 도입과정에 있어서 난항이 있기 마련이고 그러기에 추진해야 하는 정책과 도입하기 쉬운 정책의 선택을 선 결정하여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만만치 않습니다. 선거는 수많은 욕망의 최대공약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최대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공약을 선정하기 때문에 실현가능성 보다 실현당위성을 더 앞서 말하곤 합니다.

 

5. 하지만 선거를 통해서 자신의 욕망 혹은 이상을 관철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입니다. 결국 개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상이 아닌 제도이고 여전히 제도의 도입과 운영에는 각 사회구성원 모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의사결정단계에서 그 제도의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개인은 배제되기 쉽고 결국엔 힘을 가진 로비단체에 의해서 제도는 유지되고 변경됩니다. 이런 첨예한 이익의 조율의 과정에서 개인은 소외된 채 당위와 결과에 대해서만 각 개인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기에 여론은 개인의 의견이 집합이지만 여론이 제 자신의 의견이 되지는 않을 때도 많습니다.

 

6. 저에게 있어 선거란 승리와 패배로 결정되어지는 트로피가 아니라 현 사회의 모습에 대한 산출물입니다. 그러기에 누가 당선되는가에 관심보다 왜 그 사람이 당선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현상에 대한 적합한 분석이 더 흥미롭게 여겨지곤 합니다. 내일 선거 결과에 따라서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토로하겠지만 누가 당선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회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져 갈 뿐 입니다. 여전히 변하는 사회 보다 변하는 자신의 모습이 더 크게 느껴질 따름이고요. 기실 몇 년의 임기란 잘못된 사회적 선택을 되돌리기엔 생각 보다 길기만 한 시간은 아니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잘못된 방향과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가에 대한 꾸준한 사회적 공감이 선거 때뿐만 아니라 보통의 일상에서도 끊임 없이 제기되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때문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 보다 선택하는 가능성을 포기한 채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는 사회의 현 상태를 방기하는 태도입니다.

 

7.전 로또를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다가오는 행운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결과란(이것도 확률의 문제일지 모르지만) 결국엔 더 많은 노력의 투여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의 선택이 제 자신에게 있어서 혹은 제가 속한 집단에 있어서 긍정적인 결과가 될지 부정적인 결과가 될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 선거로 통해 사회가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는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고요. 이것은 제가 선거라는 행위를 통해 지불해야 할 비용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다만 선거를 포기한다면 그 사회는 제가 원하는 것과 다른 모습으로 나빠질 확률이 좀 더 높아지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 미루어 둘 수 없는 채 결국에 그 비용은 더 크게 저에게 다가올 테지요. 물론 저의 작은 비용을 들인 한 표가 더 큰 희망의 결과로 다가오는 것을 바라기도 합니다. 승리하는 것보다 긍정과 희망을 믿는 길을 계속 가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선거하러 길은 약도만 잘 확인하면 쉽습니다.

    • 5. 저는 전 대통령 때 세상이 조금은 변한다고 느꼈습니다. 여전했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고민하고 노력한다는게 느껴졌죠. 상징성도 있고요.
      선거에 절망하고 싶지는 않은데 독재자의 딸이 그 후광으로 대통령이 된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3~6번 내용에 대해서 박상훈의 '정치의 발견'이라는 책이 비슷한 논의를 하고 있더라구요.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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