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가래소리..
전철 타고 오는데 어느 60대쯤 되는 분이 손안에 호두를 넣고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나더라구요.
할아버지는 저 중학교때 부터 돌아가실때 까지 틈만 나면 가래나무 열매를 구해서 손에 넣고 돌리셨습니다. 식사하실때 주무실때 용변 보실때 이럴때 빼곤 하루 종일 가래를 손에 넣고 돌리셨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껍니다.
얼마나 열심이셨냐 하면 한 1년여 하시다 보면 그 가래가 옻칠을 한 것 처럼 윤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할아버지는 틈이 나시면 그 가래에 끼인 손때를 파내셨습니다.
걸으실때도 그러시다 보니 학교 친구들 중에 자주 놀러온 친구들은 늘 하는 말이 'weisserose네 가면 걔네 할아버지 가래 소리 되게 많이 듣는다' 라는 소리는 단골이었죠.
사실 할아버지를 저는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장손이 태어나서 세상 뭐든지 다 해줄 정도로 저를 무척 아끼셨지만 크면서 할아버지랑 이야기 해서 좋게 웃으며 이야기가 끝난 적이 거의 없죠. 늘 할아버지나 나 둘 중 하나가
분통을 터뜨리는 게 가장 흔한 결말이었죠. 본래 젊은 시절 부터 산전 수전 다 겪으시다 보니 정치력이 좀 되시고 말도 잘 하시고 거기다 스스로를 지키다 보니 성격도 보통은 넘으신 분이었으니 손자가 찌질댄다 싶으면
가차없이 퍼부어 대셨습니다. 그걸 또 그냥 넘길 나도 아니고 한 번은 듣다 성질 나서 '더 이상 할 이야기 없다'고 나가버리니까 며칠 후 바로 저한테 복수전을 날리셨던 분이 할아버지 셨습니다.
어릴때 그런게 되게 싫었죠. '왜 우리 할아버지는 다른 집 할아버지 처럼 쉽게 넘어가는게 없나' 싶었는데... 그게 참 싫었는데 이것도 유전인지 가끔 돌이켜 보면 그 모습을 내가 물려받는 것도 있습니다..
어릴때 교회 다니던 친구들 한테 내 모습이 그런 예였죠. 나는 굉장히 유순했다고 생각하는데 어릴적 친구들이 이야기 하다 보면 '너나 니 동생이나 성질들 보통이었냐'는 메시지를 전달 받으니까요.
할아버지를 한 마디로 압축 하라면 '우리집 박정희'라고 압축합니다. 어쨋건 가족들 먹고 살게 만들고 중산층 진입의 첫 테이프를 끊으셨으니 그리고 자신의 뜻대로 자손들이 움직여 주길 원했으니 그걸 위해 강력한 제재
력을 행사하셨으니 틀린 말은 아니죠. 거기다가 강력한 독재정권에 대한 지지까지 지금도 내 안에 남아있는 극우적 요소가 거기서 유래했죠.
반대로 정치적 감각이 있으셨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아무데서나 화를 안내시고 오히려 때론 적절하게 유머로 받아치시기도 하셨죠. 물론 화가 나시면 아무도 못말렸답니다. 그 만큼 유머러스 하셔서 한 마디로 나이 어린
손자들도 빵빵 터뜨리셨죠. 할아버지 때문에 시력이 망가지는 위기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군대 제대하고 대학 다닐땐데 할아버지께서 빗물받이에 끼워놓고 보관하던 사다리를 꺼내라 하셔서 그거 꺼내다 녹이 눈에 끼어
들어갔죠. 나는 허둥대고 할아버지는 눈을 비벼서 꺼내라 하시고 다행히 어머니와 할머니가 장보고 오셔서 바로 안과로 데려가서 녹을 제거 해서 문제를 모면했는데... 그때 안했으면 눈 실명 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지 9년째 입니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날 무슨 기력이 있으셨는지 갑자기 집을 왔다 갔다 하시고 저녁에 과식하시고 나서 기력을 잃으셔서 5개월 가량 병원 신세 지시다 돌아가셨죠.
처음엔 대수롭지 않았습니다. 저러시다 3개월 지나면 일어나는게 거의 당연한 공식이라서 그랬죠.
그러다 돌아가시는 전날 꿈을 꿨습니다. 꿈에 어느방에 가니까 방안에 할아버지 50대때 부터 지금 까지 사진이 다 붙어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아버지가 보시더니 갑자기 할아버지 젊으셨을때 사진을 뜯으시고 '이거 영정
사진으로 쓸꺼니까 스캔 뜨고 포토샵 해서 잘 준비해놔라'라시는 군요. 그리고 그날 점심 먹다 갑자기 꿈이 생각나 어머니 한테 말씀 드리니까 어머니도 할아버지 드리려고 평소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을 담는데 그
릇이 밑이 줄줄 새더란 이야기 하더라구요. 결국 그날 저녁 삼겹살 집에서 소주 먹다 위독하시단 이야기 듣고 병원에서 밤 샜습니다.
할머니는 다행히도 돌아가실때 온 가족이 임종을 지켰죠. 할아버지도 그러려고 부모님 고모부 다 모였는데 밤 12시가 되도록 계속 숨을 쉬셔서 일단 집에서 쉬고 오라는 이야기 듣고 흩어집니다. 그때가 새벽 4시 경이었
구요. 저는 눈 잠깐 감았다 뜬거 같은데 전화가 왔더라구요. 운명하셨다고...
그때가 아침 8시.. 동생이랑 부지런히 씻고 옷 차려입고 갔습니다. 좀 아쉽죠.. 아무리 싫고 싫었어도 그만큼 할아버지가 나한테 이거 저거 챙겨주신 기억나는데 그렇게 가신거 보니 참 아쉬웠습니다...
물론 장례 치르고 한 말이 '워낙에 깔끔하신 분이라 추한거 안보여드리려고 그런거 같다'고 이야기 하곤 하죠..
11월은 바쁘군요.. 아버지 생신에 며칠 뒤면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또 며칠 후면 할머니 돌아가신 날까지...
이야기 들어보면 할아버지가 아버지 한테 무척 무섭고 가혹 할 정도로 엄하셨다던데... 그런게 싫었습니다. 그래서 저나 동생이나 저한텐 조카요 동생한텐 아들한테는 가능하면 사탕을 주는 편이죠.
그냥 돌아가신 날이 다가오니 상념이 많이 생기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