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광화문커피
통돌이 로스팅을 하는 영업장은 많치 않습니다. 많아야 500g 내외를 볶을 수 있는 통돌이로 장사를 한다는 건 상당한 꾸준함과 인내를 요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돌이를 고수하는 로스터들이 있는 걸 보면 그걸로만 표현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요.
광화문 커피는 효자동 통인시장옆에 있습니다. 경복궁역 번화가에서는 좀 거리가 있는 이 골목까지 카페들이 치고 들어오고 있군요. 광화문 커피 옆에는 친근한 동네빵집 효자동 베이커리가 있고, 맞은편 샛골목으로 들어가면 할머니 한 분이 운영하는 정겨운 칼국수집도 있습니다. 광화문 커피의 소박한 간판은 그 동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습니다.
정면에서 봤을땐, 로스팅실이 있어서 내부가 좁아보이지만, 안쪽으로 앉을곳이 더 있어요. 테라스에도 테이블이 있으니 애연가들도 방문해볼 만합니다. 테라스 안에 자전거를 주차해두고 들어갑니다.
메뉴. 사진이 흔들려서 안타깝지만, 질박함이 전해지나요.
일본핸드드립가게의 특징이라면, 하우스블렌드를 꼽을 수 있겠죠. 로스터가 장인정신을 가지고 임하는 작지만 내실있는 카페들이 우리나라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로스터는 연구에 연구를 거쳐 자기네 매장을 대표할 수 있는 특징있는 블렌드를 내놓죠. 어느 로스터리샵을 가나 그곳에서 자신있게 추천하는 블렌드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 메뉴판을 처음 받았을 때, 이곳에서 왠지 제대로 된 블렌드를 맛볼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어요. 로스팅실이 카페 전면에 당당히 노출돼 있다는 점도 기대를 상승시켰습니다. 광화문 브렌드를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봅니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기물들과 곳곳에 눈에 띄는 커피용품들.
멀리 보이는 말코닉 케냐 그라인더. 훌륭한 바리스타는 가장먼저 좋은 그라인더에 투자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만큼 커피를 잘 분쇄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특히 드립커피에서는 사람의 힘을 벗어나 컨트롤 할 수 있는 게 그라인딩 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나 기계가 모든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기계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더 좋은 커피맛을 위해 신경을 쓴다는 증거이므로 눈여겨 봅니다.
꾸밈없이 솔직한 맛을 가진 커피. 거친 맛을 가진 생두들이, 좋은 로스터를 만나 잘 길들여진 맛을 냅니다.
타공식 통돌이 로스터의 모습. 로스팅에는 화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로스팅 하시는 모습을 구경해 보았습니다. 광화문 커피에서는 화력보강을 위해 고안한 장치 위에서 소량의 원두를 5-6분 사이의 짧은시간에 뽑아냅니다. 순식간에 1차 팝핑, 2차 팝핑이 오더군요.
약간은 불맛이 느껴지고, 거친느낌이 나는건 저 타공식 샘플로스터 탓으로 짐작해 봅니다. 원두가 불에 직접 닿기 때문에 특징적이고 매력적인 맛을 냅니다.통돌이 로스팅은 워낙에 변수가 많고, 그 변수를 컨트롤하기 힘들죠. 그렇기 때문에 통돌이 로스팅은 볶는 사람의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생두의 변화에 귀를 기울이고, 시선을 집중하고, 풍겨나오는 향기에 후각을 총 동원해야 한다. 15년간 통돌이 로스팅을 해오셨다는 사장님의 노하우가 부럽네요.
얼개미며, 초시계 그리고 탐침까지. 저역시 통돌이 로스팅을 하기 때문에 뭐하나 허투루 보이지가 않는군요.
내부는 조용하고 차분하다기보다, 로스터리샵 특유의 활기찬 느낌입니다. 오전시간에는 상대적으로 한가한 풍경이고요.
배경음악 대신 라디오를 틀어놓습니다. 클래식 채널을 작은 볼륨으로 흘러나옵니다.
이 곳의 장점은 리필 인심히 후하다는 점. 이미 콜롬비아 리필을 한잔 더 마셨지만 에스프레소 블렌딩도 궁금해서 주문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리필로 뽑아주시는군요; 드립블렌딩만큼의 인상은 아니지만 만족스러웠습니다. 카푸치노 한잔 더 마실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이미 혈관속에 카페인이 날뛰고 있었기에 결국 이게 마지막 잔이 됐죠. 소량씩밖에 볶을 수 없는 통돌이를 쓰기 때문에 매일매일 볶아도 이틀 이상 지난 원두가 남아날 때가 없다고 하셨는데 거긴 리필인심 탓도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