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뽑아본 홍콩영화 베스트 10

내친 김에 제 맘대로 홍콩영화 10선을 뽑아봅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도 밝혔지만 전 홍콩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반추되는 홍콩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 소개되는 홍콩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작품도 있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취향에 따라 맘대로 선정된 작품이므로 전문가적 관점에서 선정된 베스트와는 간극이 있을 거에요.

 

1. 가을날의 동화(秋天的童話)

감독 : 장완정     출연 : 종초홍, 주윤발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삼판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살고, 그나마도 노름으로 대부분 날려 버리는 건달입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그에게 찾아온 먼 친척 제니퍼가 그의 삶에 변화를 주는데... 연약해 보이는 그녀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시작된 감정이 점차 사랑으로 변해 가는 과정이 섬세한 터치로 묘사되었어요. 팍팍한 삶 속에 갑자기 찾아온 가슴 시린 사랑을 수채화처럼 아련하게 그린 수작으로 프랑스 유학파 감독 장완정이 뉴욕 올 로케이션으로 홍콩 영화 사상 찾아 보기 힘든 서정적인 분위기의 작품을 완성했어요. 

 

2. 팔냥금(八兩金)

감독 : 장완정     출연 : 장애가, 홍금보

 

 

미국으로 이민갔다 향수에 못 이겨 오래간 만에 귀향을 한 남자가 며칠 동안 고향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린 멜러 드라마로 역시 장완정 감독이 연출한 작품입니다. 어린 시절 소꿉 친구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랐고 재미교포와 결혼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는데.. 오래간만에 찾아왔지만 옛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도록 변한 고향을 모습을 보는 씁쓸함과 어린시절 소꿉친구에 대한 아련한 사랑의 감정을 역시 장완정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표현했어요. 홍금보가 이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였던가 새삼 놀랐을 정도로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최고조로 빛을 발한답니다.

 

 

3. 몽콕하문(旺角下問)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만옥, 유덕화

 

80년대 후반 서대문 로터리에 있던 낡은 극장에서 '열혈남아'라는 촌스로운 제목으로 상영하다 간판을 내렸던 저주받은 걸작이죠. 개인적으로 국내 개봉제목인 '열혈남아'를 끔찍할 정도로 싫어하지만 국내에서는 지금까지도 몽콕하문은 그냥 '열혈남아'로 통합니다. 왕가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텝 프린팅 기법이 영화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장만옥과 유덕화의 전화 박스 속에서의 키스 씬과 라스트 씬에서 흐르던 왕걸의 忘了我 忘了你(나도 잊고 너도 잊자)의 허무적인 분위기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겨줬어요.

 

4. 아비정전(阿飛正傳)

감독 : 왕가위     출연 :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홍콩 영화 역사에서 남녀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남을 장국영의 맘보 댄스 장면만으로도 충분한 볼 가치가 있는 작품. 전작 몽콕하문이 스피디하고 감각적이었다면 본작은 느린 템포의 사색적이고 명상적이었어요. 따라서 전작의 감각적인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분노하며 환불 소동까지 일으켰던 문제작이죠. 원래 이 작품은 속편까지 함께 기획되었으나 흥행 참패로 인하여 속편 제작은 취소가 되었고 속편에 출연하기로 했던 양조위는 본작의 마지막 한 씬에서만 등장을 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어요. 배우 장국영의 우수에 젖은 모습에 오래동안 가슴이 먹먹해졌던 필름이랍니다.

 

5. 미라클(奇蹟)

감독 : 성룡        출연 : 성룡, 매염방, 글로리아 입

 

성룡의 열혈팬이라면 이 작품이 베스트 10에 꼽힌 사실을 절대로 동의할 수 없을 거에요. 하지만 저는 성룡의 팬도 아니고 오히려 성룡의 다른 작품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만큼 이 작품은 성룡의 다른 영화와 분명한 차별점을 갖고 있으며 그 차별점이 이 작품의 호오를 가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기본 줄거리는 프랭크 카플라 감독의 61년 작 '포켓 속에 가득한 행복'을 따르고 있어요. 시골에서 무작정 홍콩으로 상경한 순박한 청년이 우연히 폭력조직의 후계자로 지목이 되는데 이 젊은 보스는 폭력조직의 본연의 임무(갈취, 협박 등)에는 영 관심이 없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데만 열심입니다. 급기야 외동딸을 영국으로 유학 보낸 가난한 꽃장수 아주머니를 귀부인으로 변신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단행하는데.. 비현실적인 판타지라 폄하할 수도 있지만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이 세상에 이정도 해피엔딩이 가끔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6. 인지구(咽脂拘)

감독 : 관금붕     출연 : 장국영, 매염방

 

1930년대 홍콩,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나누던 부자집 도련님과 유곽의 기생 여화가 내세에서 만날 기약을 하고 음독자살을 합니다. 저승에서 도련님은 언제나 오시나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여화가 다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80년대 홍콩 밤거리를 배회하는데.. 매염방이 여지껏 본 적 없는 가장 매혹적인 유령으로, 장국영은 심약하고 다소 비겁한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중국 반환을 눈 앞에 둔 홍콩인의 불안한 감정이 극명하게 반영된 허무주의적 내러티브와 영상이 치명적인 매력으로 다가 왔던 필름으로 기억되요. 공교롭게도 이 작품의 두 주연배우가 모두 고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먹먹하게 다가온답니다.

 

7. 중경삼림(重慶森林)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금성무, 왕정문

 

중경삼림은 두개의 에피소드가 연결된 작품입니다. 두 에피소드의 남자 주인공은 모두 실연한 경찰이고 이들은 각자 독특하게 실연의 아픔을 잊게하는 해법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실연의 아픔을 잊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죠. 아비정전, 동사서독 등 무거운 주제로 한 작품의 잇단 흥행 실패로 침체되어 있던 왕가위 감독이 들고 나왔던 패스트 푸드 같았던 산뜻한 소품. 개인적으로는 너무 너무 이 영화가 맘에 들어서 개봉 당시 세 차례나 극장에 가서 감상을 했답니다. 물론 DVD가 출시되었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쇼핑 카트에 이 작품을 밀어 넣었어요.  이 영화에 등장한 세계에서 제일 길다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관광명소가 되었고 극장 개봉 당시 난데 없이 Mamas and Papas의 올드 팝 'California Dreaming'이 국내에서 히트를 하기도 했죠.

 

8. 상하이 블루스(上海之夜)

감독 : 서극        출연 : 장애가, 엽천문, 종진도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 홍콩 느와르 무비의 주역 서극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 중일전쟁 당시 공습을 피해 슈초우 다리 밑에서 만났던 청춘 남녀가 등화관제의 칠흑과 같은 어둠 속에서도 서로에 호감을 느끼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이들은 재화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 두사람은 여전히 상대를 그리워 하고 있고 심지어 한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지만 서로를 인지하지 못합니다. 애틋하고 가슴 아픈 멜로로 이어질 것 같은 스토리 라인이지만 이 작품의 성격은 로맨틱 코메디입니다. 거기다 경극의 요소를 가미해서 뮤지컬의 분위기까지 추가했어요. 엽천문이 부른 晩風은 이 영화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상하이 블루스하면 晩風이, 晩風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상하이 블루스가 기억난답니다. 

 

9. 첨밀밀(甛蜜蜜)

감독 : 진가신     출연 : 장만옥, 여명

 

10억이 넘는 중화권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대만 출신 가수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이 이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 나는 등려군이라는 걸출한 가수를 알게 되었고, 심지어 가수 주현미씨가 자주 TV무대에서 불렀던 야래향이란 노래의 오리지널도 등려군이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이 영화를 연출한 진가신 감독은 본토에서 홍콩으로 넘어온 두 남녀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러브 라인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될 무렵 삽입된 귀여운 반전도 잊을 수 없는 여운을 남겨줬던 작품. 

 

10. 음식남녀(飮食男女)

감독 : 이안        출연 : 오천련, 양귀미, 왕유문

 

이 작품이 홍콩영화라는 건 이견이 있을 수 있어요. 대만과 합작이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홍콩영화로 분류하겠어요. 미국으로 건너가 거장이 된 이안 감독이 홍콩에서 마지막으로 찍었던 이 영화에서는 전편을 걸쳐 온갖 산해진미가 펼쳐지지만 정작 작품의 주제는 점차 미각을 잃어가는 호텔 주방장과 그의 세 딸간의 갈등 그리고 그 회복에 있어요. 이안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정 표현이 맛깔나지만 듣도 보도 못했던 중국 요리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 볼 수 있는 재미도 만만치 않답니다. 

    • 어떤 영화 좋아하시는지 알겠네요 참 요즘 저런 영화들이 홍콩에 없죠 흑
      밑에도 썼지만 서극의 도마단이나 유덕화 정수문의 니딩유도 추천합니다 ^^
    • 도마단은 저도 봤어요. 하지만 상하이 블루스만큼 좋아하지는 않아요. 니딩유는 한번 봐야겠네요.
    • 올려주신 것 중에서 중경삼림과 첨밀밀을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그런데 저는 2000년 이후의 최근작들이 더 맘에 들더라고요.
      두기봉의 흑사회 시리즈나 엑시던트처럼 심장이 옥죄어오는 신 홍콩느와르도 좋고, 애정물로는 단신남녀나 크로싱 헤네시가 괜찮았어요.
    • 흑사회나 엑시던트는 취향에 안 맞을 것 같고요 단신남녀나 크로싱 헤네시는 봐야겠네요. 추천 고맙습니다.
    • 아 매염방 ㅠㅠ 마치 가족같은 배우가 죽은것 같아요.
      • 매염방.. 홍콩영화계에선 큰언니 같은 통큰 연기자였다고하죠 노래도 잘 부르고..
    • 아..첨밀밀.. 미키마우스 문신 따위에 펑펑 울게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도 그 장면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요. 저는 올레 티비로 열혈남아를 봤는데..그게 옛날 버전이랑 다른 거라데요? 제가 본 건 음악도 다르고(미국 영화 음악인데..탑건인가 뭐던가..하여간 유명한 영화음악을 중국 사람이 부른 것) 마지막 장면도 다르고요. 그런데 옛날 버전은 비디오 말곤 구할 수도 없대요.
      • Take my breath away일거에요 아마도. 그 곡이 삽입된게 대만판 편집이라죠?
    • 전에 여기 질문글 올렸다가 누가 가르쳐 주셨는데 <연지구>로 읽고 쓰는 게 맞다고 하더군요.요즘 잘 쓰이지도 않는 말이지만 `입술연지`로 기억하시면 쉬울 듯.

      우연히 저도 며칠 전에 매염방 생각이 나서 동방삼협이나 선학신침 같은 영화들을 찾아 봤는데 <연지구>는 차마 못 보겠더군요.전 장국영 팬도 아니고 당연히 남녀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한 명도 아니고 두 주인공이 다 고인이 된 영화까진 감당 못 하겠더라구요.
      • 아 연지구군요. 개봉 당시엔 제목이 인지구였어요
    • 아 정말 본 영화 몇 개 없네요. 그래도 첨밀밀은 꽤 여러 번 봤어요. 대본 보면서 중국어 공부도 했었어요.
      그런데 반전이 뭐더라...?
      +그렇게 쓰고보니 위에서 언급된 그게 반전이군요.
      • 제 기억으로 그 반전은 엔딩 크레딧 다 끝나고 나서 나올거에요. 극중에서 장만옥이 여명에게 굉장히 일찍 홍콩으로 건너온 선배 행세를 하잖아요. 사실은 여명이 타고온 열차, 그것도 바로 여명 뒷좌석에서 같이 왔답니다. 장만옥이 깜박 조는 바람에 늦게 내려서 역에선 두 사람이 마주치진 않았지만요. 그 장면 생각하면서 영화를 다시 보면 더 재미있어요
    • 2번 8번 빼고 다봤어요. 가을날의 동화는 하도 주변에서 평이 좋아서(비록 중딩때지만 ㅋㅋ) 기대가 너무 큰 나머지 큰 감동은 없었지만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 영화들은 최소 두번이상 본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이네요. 장국영빠인 저로서는 장국영 영화는 수십번을 봐서 뭐더이상 말이 필요없고 연지구는 마지막 장면 첨보고는 괜히 혼자 장국영한테 아니 장국영이 연기한 캐릭터한테 실망하고 막 그랬었네요. 그땐 어렸으니까^^
      • 그렇죠 장국영 팬이라면 누구도 그 마지막 장면을 보면 실망을 하죠 저도그랬으니까요
    • 글을 읽어 내려오면서 [망불료]나 [엑시던트]도 좋아하실 것 같다고 멋대로 생각했는데 덧글을 보니^^;;
      • 망불료는 보고는 싶었는데 못 본 영화고요 엑시던트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별로 취향이 아니네요
    • 아실랑아실랑/ 태원에서 나온 열혈남아 dvd 에서 북경어 트랙 선택하면 왕걸 노래 나오는 버전으로 보실수있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장면등은 국내개봉판과 다르지만요.
    • 거론하신 영화 다 좋아하고요, 전 서극의 칼 도 좋아합니다. 70년대 히트작이었던 외팔이 시리즈의 재해석이었죠.
    • 참! 그리고 루안살성이란 영화도 좋아해요. 에스에프적인 느낌이 나는 영화였죠.
    • 아 그 장면 인제 기억나요. 'ㅅ'
    • 으흐 저의 베스트 1도 [가을날의 동화]입니다. 목록을 보니 저랑도 취향이 비슷하신듯 ㅋㅋㅋ
      듀게에서 홍콩영화 게시물을 보는 것은 언제나 반가운 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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