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글] 이상하게 불성실합니다

지난 학기 '이렇게익명님은 정말 성실한 사람이예요!"라는 탄복을 받아본 적도 있지만....
기복이 심합니다.

일단 지금 학교도 9년째 다니고 있어요;;;;;;

이번이 드디어 마지막 학기.

중간에 휴학도 많이 하고 자퇴도 했다가 돌아오고...

군대 다녀온 건 아니예요. 여자거든요.


완전 백수나 폐인처럼 지낸 적은 없고
계속 알바하고 다른 일도 하곤 하는데
어중간하게 노는 타입?

성적도 왔다갔다 -
지난 일곱 학기 중에
네 번이 4.0이상 (4.3 만점)
두 번이 2.0대, 한번이 무려 1점대...

성적 좋은 학기랑 엉망인 학기가 딱 교대로 있어요.

그렇다고 성적 나쁜 학기에
큰 불행한 일이나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정신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는 편이라 생각하고

예민하거나 우울하거나 하는 것 없고

긍정적이고 살아있는 것을 즐기고...그런데 왜 제 삶의 결과는 극단적일까요..

 


할 때는  신나서 잘 다니는 편인데,
어떤 학기에는 수업도 안 들어가고 과제도 안 하고
인생의 규율이 없어요. 그렇다고 술마시고 인터넷 게임하고 노는 것도 아닌데...혹은 아니어서,
어설프게 불성실해서, 내가 지금 잘못 하고 있다는 감이 안 옵니다..   

 

어제도, 전날 밤 열시까지 카페에서 공부하고 두어시간 인터넷하고 새벽 다섯시까지 방에서 책 읽다가
정오 넘어 일어나서
바로 도서관 가서 전공도서랑 소설 조금 읽고 영어공부하고
서점  가서 전공도서 사서 동아리방 와서 또 읽고

학생답게 학업에 충실한 24시간을 보냈습니다.

 

단, 그 시간 동안 수업 안 들어가고 과제도 안 하고... -_- ;;;;;;;;;;;;;

 

 

......마지막 학기 2.0점대로 찍고 졸업하려나 봅니다.

지금까지 출석한 날보다 안 들어간 날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충실히 보낸 하루 같아서
머리로는 잘못했다는 것을 아는데, 마음으로 죄책감이 안들어요 (이게 바로 문제)


 

저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요?
뭐가 문제일까요? 상담이라도 받을까요.
어쩌다 하루 이러면 괜찮겠지만, 이런 식으로 몇년을 살고 있으니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덧/

부모님 돈으로 등록금 댄 적은 두 번 뿐이었고

나머지는 학자금 대출 + 장학금 + 제가 번 돈으로 다녔습니다.

생활비도 제가 번 돈 아껴가며 살고 있고

지금 혼자 사는 작은 방에도 부모님 지원은 없습니다. 애초 보증금도 없어서...

 

제 때 졸업하는 학생들보다 부모님 돈을 더 쓰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렇게 변명조로 덧붙이는 것 자체가 떳떳하지 못함의 반증이겠지요?


 

 

 

 

    • 저도 익명님이나 쑤우님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가 약간 더 불성실한거 같기는 하지만요.
      이 따위로 살고 있는데 걱정이 별로 안되는게 걱정...이죠. 뭔가 닥치면 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 중이에요. 상담은 아직 좀 이른 거 같고 무슨 일이든 목표를 한 번 잡아보시는건 어떨까요?
    • 전 이 얘기가 하나도 낯설지 않아요. 전 학교 때 이런 케이스 흔하게 봤어요. 장학금과 학사경고가 공존하고 고점과 저점을 주기적으로 찍는 싸인그래프 라이프 스타일들; 보면 특별히 정신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삘받는 스타일이랄까. 열심히 사는 것도 바닥을 치며 사는 것도 오래 가질 못하고 왔다갔다 하고. 보통 '철이 안 든다'고들 회자되고요.

      아마 기본적으로는 그렇게 살아도 되는 어떤 전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경제적 원조가 있거나, 그런 게 없이도 마음 편히 살 수 있거나요. 다들 돈 벌려니 직장 들어가야 되고, 직장 들어가려니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학점 만들어서 졸업해야 되고, 싫어도 아침에 눈 뜨고 출근하고 그러면서 살잖아요? 그런 거에 큰 욕심이 없으면 뭐 주위 사람들도 설득할 말이 없고 본인한테도 동력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또 하나는... 본인이 신나서 해야 뭘 할 수 있다는 거? 사람 사는 게 자기 좋은 일만 골라서 할 수도 없지만, 심지어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걸 하려고 해도 처음에 배우는 단계에서는 굉장히 서툴고 뜻대로 안돼서 속터지는 시기를 오랫동안 거치게 되잖아요. 근데 그 진입단계를 못 견뎌요. 옆에서 볼 때는 적어도 몇년차 될 때까진 일단 좀 견뎌야 될 거 같은데, '당장 기쁨을 얻지 못하는' 단계에서 싫증내고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안 나온다고 바로 '나랑 안 맞는다'는 식의 결론으로 점프한다든지.

      그럭저럭 알바해서 등록금 일부와 생활비를 벌 수도 있죠. 근데 그건 '논 건 아니다' 정도의 의미지, 사실 보이지 않는 '청춘'이라는 밑돈을 희생한 결과잖아요. 남들도 논 거 아니듯이... 아파서 병원비 써야되는 시점까지 가서야 아 내가 그 땐 젊었구나를 깨닫는 전개, 진짜 많이 봤습니다. 지금 당장이야 욕심을 줄이고 가늘게 살자, 이런 게 가능할지 모르지만, 한국사회가 그런 청춘들의 노후를 보장할 만한 인프라를 갖춘 사회는 아니죠.

      아 갑자기 제 친구들 생각나서;;; 말이 길어졌네요;;; 하여튼 '이렇게 살아도 되는 시간'을 너무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 다 쓰지 마세요. 뭔가 잘못된 거 같으면, 그 잘못된 '뭔가'가 뭔지 생각해보고 하나씩 고쳐보세요...
    • 실은... 서른 한참 넘었는데도 그러면서 살고 있습니다(...) 뭐 다 똑같이 살 필요는 없잖아요=ㅂ=
    • 뒤를 쫓는 게 없어서 그러신 듯. 윗 분 말씀대로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 여유가 없어지면 그것도 힘들어져요. 근데 그게 꼭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글쓰신 분이 불성실하다고 표현하셨는데, 그건 그냥 사회가 권하는 기준에 못미친다는 느낌 때문에 그러신 게 아닐까 싶은 게, 실제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9년동안이나 그렇게 살진 못하죠. 그리고 실제로도 모든 사람이 '성실'해야하는 건 아니니까요. 뭐 어때요. 한번뿐인 인생, 할 수 있는만큼은 게으름 부려도 괜찮지 않나요. :-)
    • 제 이야긴가 싶다는게 이런거였군요. 저와 다른 점은 감정적으로 안정되어있다는 부분이구요.



      저도 이렇게 저점과 고점을 찍으며 살고 있지만 맘이 편하진 않아요. 정해진 규칙을 디 채우지 않으며 산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무지 받는 편이라서.. 그래도 쉽게 (스트레스 받기 싫어 고쳐보려 하지만) 고쳐지질 않네요.



      저의 경우엔 이유가 명확합니다. 첫째로 단기적인 목표는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가 확실히 서지 않아 동인이 자꾸 사라지기 때문이죠. 학점을 잘 받고 학교에 충실한 것은 좋은데 그 이후는? 단기만 생각하면 무식하리만치 성실하다가도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할 때 급전직하하게 됩니다. 양파님의 말처럼 지루하거나 한 것도 아니에요. 단순 공부라고 하더라도 매우 즐길 수 있는데 지속이 안 될뿐이죠.. 왜 안되는 건지는 너무 많이 되내어서 피곤할 지경입니다.



      두번째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정서적 안정감에 매우 민감하다는 거에요. 한 줌 쥐어질 관 정도 밖에 없어서 무지 영향 많이 받습니다. 사실 돈이고 명예고 사회적 성공이고 필요없이 안정적인 정서를 유지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 양파님 말씀처럼 무엇이던 공짜는 없죠. 무언가 지불했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있는 거구요. 그 결과에 대해 본인이 온전히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던 그건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 불성실하다는건 자신이 자신에게 부과한 과업. 혹은 자신이 남과 어떤 계약관계로 맺은 과업을 미완수할때 이야기고... 이렇게 익명님은 아직 남에게 이렇다할 과업을 달성하라고 심각하게 압박을 받으시거나 자기 자신이 압박을 주시는 경우는 아니라서 불성실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네요.
    • 저도 엄청난 기분파인데 특징이, 자기 능력을 과신한다는 겁니다. 좀 바짝 하면 결과가 좋다는 걸 경험했거든요. 나중에 적당히 마음잡고 하면 뭐든 되겠지 싶은 마음?
      대신에 정말 좋아하는 걸 찾으면 거기에 올인을 합니다. 익명님도 푹 빠질 대상과 목표가 생기면 될 것 같은데요. ^^
    • 저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전 어느 한 곳에 풍덩 뛰어들지 못해서 그렇더라구요.. 언제나 내년 이맘때에 뭘 하고 있을지 짐작도 못하겠고..
      삶을 걸어볼 만한 꿈을 못찾아서 그런가보다 그러고 있어요 -_-; 불만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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