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어제의 일기
늦은 밤, 지하철 역까지 가는 마을버스를 탔어요.
지친 채로 축 늘어져있는데 히잡을 쓴 한 여성이 그 마을 버스에 올라오는거에요.
그리고 뒤늦게 그녀의 손을 간신히 잡고 버스에 오르는 꼬마 소녀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작은 소녀는 무지개색 후드 가디건과 검은 색 치마를 입고 있었어요.
후드 모자로 갈색 머리를 반쯤 가린 그녀는 버스의 지지대를 잡고 이리저리 두리번 거렸어요.
제 생각엔 조금 답답했을거 같아요. 사람은 많고 그 꼬마는 너무 작았으니까.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거라곤 사람들의 허리춤 뿐이었겠죠.
그 꼬마가 너무 귀여워서, 예뻐서, 저는 몰래 몰래 그녀를 훔쳐봤어요. 가끔은 여기보라고 눈치를 주기도 했죠.
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예쁜 여성분들을 볼 기회가 많은데 저 혼자 어색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자꾸 눈길이 가고 힐끔거리고 싶은데 모르는 사람한테 그러는건 실례니까, 사실은 신경이 쓰이는데 안그런 것처럼 딴청만 부리는거죠.
하지만 어린애들은 그런 점에서 좀 나아요. 어린 친구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불편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거든요. 계속 쳐다보면, 그 친구들도 쳐다보는 사람을 같이 빤히 바라봐요.
하여튼 제가 눈길을 주는걸 알았는지 그 소녀도 저를 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딴청을 부리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더니 글쎄,
그 소녀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저를 보며 화알짝 미소 짓는게 아니겠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생명체가, 다름 아닌 저를 보며 그렇게 해맑게 미소짓는게 너무 오랜만이라 저는 갑자기 긴장을 하고 말았어요. 눈길을 피해버린거죠.
다시 힐끔 그녀를 보았더니 그녀는 그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엄마를 바라봤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몸 둘 바를 모를 상황이었지만 이미 저는 그녀에게 눈길을 땔 수 없었어요. 그녀의 푸른 눈동자, 그리고 짙게 드리운 쌍꺼풀은 그 눈 속에 담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만큼 행복해 보였어요.
홀드 마이 핸드
라고 엄마가 말하는 걸 봐서 아마 그녀와 엄마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었어요.
저처럼 그녀의 귀여움에 마음을 빼앗긴 어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아기가 너무 귀엽다며 사소한 신변잡기식 질문을 던지기도 했는데 그 소녀는 그걸 못알아들은거 같았고요.
이윽고 지하철역에 다다랐을 때 쯤,
갑자기 그 소녀는 끼야아아악 이라는 소리를 지르며 번갈아 혹은 동시에 발을 구르기 시작했어요.
무슨 일인가 싶어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소리지르더군요.
대디, 대디!!
문이 열리자 그 곳에는 아주 선한 인상의 한 아저씨가 조금은 멋쩍은 표정으로 서 계셨습니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그 아저씨에게 달려간 소녀를 번쩍 안아올렸죠.
그 소녀는 얼마 만에 아빠를 만난걸까요? 몇 달? 몇 주? 몇 일? 몇 시간?
글쎄 얼마만에 만났던지 간에 그 소녀에게는 아빠를 만나는게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를 만큼 반갑고 신나는 일이었겠죠.
너무 뿌듯하고 흐뭇한 풍경이어서 지하철을 타러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은, 약간은, 서글퍼졌어요.
나도 누군가를 보며 반가움에 발을 구를 수 있을지, 혹은 나를 보며 반가워 발을 굴러줄 누군가가 있을지,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내내 해맑은 두 눈 가득 미소를 띄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