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해보면.. 자본권력을 견제하기는... 쉬우면서도 어려워요..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이나 가장 직접적으로 맞서 투쟁하는 수단은 뭐 현장에 가서 띠 두르고 투쟁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1인 시위를 하건, 집단이 되건, 점거를 하건. 하지만 이게 겁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요즘이야 옛날처럼 그러다 잡혀서 어디 으슥한 데 끌려가 죽어라 고문당하는 수준까진 걱정 안해도 되지만, 여러 모로 있을 불이익이 걱정되는 거죠. 특히 소심한 사람 입장에서는 시위 한 번 나갔다가 경찰에서 소환장 받는 것만으로 너무나 무서운 일입니다.
그 외에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은... 투표지요? 사실 어찌보면 투표로 특정 정치세력을 견제하는 건 쉽다면 쉬워요. 당장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큰 선거때매 하루 휴일까지 주니 시간 내기도 쉽고요. 물론 이 투표의 결과 장기적으로 내 주머니에서 나갈 돈의 액수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만, 거기까지 계산하기는 쉽지 않고, 일단 투표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돈 드는 일이 아니니까요.
근데 자본은 견제하기가 정말 어렵네요. 단순하게 보면 쉬워요. 안사면 됩니다. 자본권력에게 자기가 만든 물건이 안팔리는 것보다 무서운 건 없죠. 그런데 그게 현실에선 쉽지 않아요.
일단 구조부터가 그래요. 지금까지도 진행중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때문에 한 때 트위터에서 한진을 압박하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흠... 근데 한진그룹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 하면 대한항공인데, 이거 불매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죠. 특정 노선은 대한항공 아니면 길이 없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그래서 실생활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한진 제품인 택배에서 한진을 거부해버리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게 금방 사그라들었어요. 반대 의견이 나왔거든요. 한진 택배는 대리점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한진택배를 거부해버리면 한진의 조씨 일가가 압박을 느끼기 전에 각 대리점 사장들이 먼저 쓰러져버린다고요. 이런 구조라면 직접적인 견제대상에게 타격을 입히기는 정말 어렵죠.
그리고 잔돈에도 민감한, 없는 삶을 살다보면... 꼭 그런 구조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본권력에게 타격을 입힐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삼성그룹의 온갖 문제점은 널리 알려져있지만, 삼성 제품을 불매하는 건 삶에 많은 불편과 손해를 가져다주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실제 상황은 아니고 그냥 가정) 삼성카드에서 다른 카드에 비해 연회비도 면제되고 각종 할인혜택도 많은 카드를 만든다면? 주식거래하는 사람에게 삼성증권에서 수수료를 싸게 해준다면? 숙박비는 비슷한데 호텔신라에 가면 다른 호텔에 비해 엄청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난 삼성 껀 안산다"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못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불매운동은 가장 흔한 형태의 견제이고 그거 한다고 누가 잡아갈 위험도 없습니다만 당장 내 눈앞에서 1~2만원의 돈 손해가 나는 걸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죠. 한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현실에 그거 비난하기도 어렵고. 요즘 시절이 그런지라 누가 잡혀가고 어떻게 됐고 하는 뉴스를 계속 보게되는데, 그럴 때마다 스스로 너무 비겁하게 살고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직접 가서 띠두르고 연대하기는 커녕 불매라는 소심한 복수 하나 제대로 못하다니.
p.s. 사실 이럴 때 스스로를 위로하는 핑계가 있긴 해요. 불매운동을 비웃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삼성 불매한다고 LG 사면, LG는 뭐 좀 낫나? 애플은 더 낫나? 돈 버는 놈들은 다 나쁜 짓 해. 다 불매하면 아무 것도 못 사." 그래도 그 중에 너무너무 나쁜 넘을 견제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