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행길] 41. 우울증과 '자아'에 대하여.

1.


 

우울증의 발병원인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의학적 뇌과학적 이론들뿐 아니라 심리학계 이론도 다 가설인 상태죠. 그 다양한 가설 속 '우울증 발병 원인' 중 크게 공감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상실, 특히 수치심을 동반한 상실이다.

 

이때 '상실'이란, 자아 일부분의 상실이라 합니다. 보통 나-자아라는 개념은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일관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복잡한 개념이라는군요. 그렇지만 우울증에서 '상실'과 관련 있는 자아란, 다양한 층위를 포괄하는 개념이라 합니다. 우선 흔히 생각하는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 생각, 감정뿐 아니라 가치관, 신념, '~은 이래야 한다'라는 이상적 개념 등 자기 몸과 마음의 자아가 있을겁니다. 또 자신에게 의미있는 타인, 즉 부모, 연인, 자식, 친구,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 내가 존경하는 위인,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들과, 타인들 속에 있는 '나의 이미지', 또 내가 그들에게 투영한 정신적 가치, 나의 기대 등도 자아에 들어갑니다. 또 나에게 의미있는 소유물, 예를 들어 나의 강아지, 나의 집, 나의 지위, 나의 학벌, 나의 돈 등도 '나'에 포함된다고 하죠.  그리고 이런 '자아' '의 일부분이 상실되면, 우리는 우울증에 걸린답니다. 한마디로 우울증의 상실은, 자아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래요.


그렇기에 자식이나 부모와 사별을 하게 되어도 우울증에 빠지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가치관이 붕괴하여도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왕따를 당해서, 나는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그러므로 나는 가치 있다는 생각이 무너지거나, 과거 소비에트가 무너지면서 좌파적 가치관을 추구하던 많은 지식인이 대거 혼돈에 빠지며 우울감에 시달리게 된 것 등등.


물론 '상실'이란 우울증 발병 원인의 수많은 가설 중 하나에요. 하지만, 이번 글에서 제가 관심 있어 하는 '자아'와 '우울' 간의 관계와 가장 관련이 있는 것이 '상실'이라는 개념이기에 선택적으로 관심을 두는 것이죠. 더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아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대강 동의하는 내용을 서술해볼게요. 다음은 서울대 심리학과 권석만 교수님이 외부에서 하신 강의 내용입니다.

 

자아개념 (이 분은 '자아'가 아니라, 자아개념이라는 말을 쓰셨어요.)이란 나에 대한 생각, 평가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아개념은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한다. 둘째, 시공간변화에도 나의 동일한 정체성의 근거가 된다. 셋째, 수많은 인생경험을 통합, 조직화하는 기억체이다. 넷째, 새로운 경험에 따라 변화한다. 다섯째, 자신을 강화하고 소중히 여기고자 하는 자기존중감의 바탕이 된다. 그리고 현재의 나에 대한 자아개념뿐 아니라, 이상적인 자신에 대한 자아개념, 나를 둘러싼 타인들이 인식하는 사회적 자아개념 등 다양한 층위가 있다.


그리고 자아란 일정한 실체라기보다, 유기체인 인간이 필요에 의해 진화시킨 복잡다단한 '개념'이며,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후 서서히 발달하는 것이랍니다.

 

 

2.

 


문제는, 자아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경험하게 하는 인지 틀로 작용한다는 점이에요. 우울증 이론 중 하나는, 우울증 발병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사건은 '비공유 경험'이라해요. 비공유란 이런 거에요. 일란성 쌍둥이가 한집에서 자랐는데, 둘 다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어요. 그런데 한 아이는 우울증에 걸리고, 한 아이는 정상적으로 자라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유전자'도 같고, '양육 환경'도 같은데, 결과는 다르게 나와요. 이때 과학자들은 그 외부 경험 -아버지에게 폭행당함-이 비공유되었다고 해요. 즉 비공유 경험이란 특정 외부 경험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 창출하는 내적 경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죠.

이 비공유 경험을 만드는 것은, 당연히, '자아'에요. 그렇기에, 의학적으로 뇌의 이상을 치료하고, 가정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개인을 둘러싼 외부 환경을 우울증에 호의적으로 개선한다 해도, 이 자아의 해석에 따라, 어떤 이는 계속 우울증에 걸릴 수도 있어요. 반대로, 어떤 악조건과 비참한 환경과 끔찍한 고난 한복판에도, 어떤 자아는 비범한 해석을 통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되고요.

그리고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 문제들의 뿌리는, 이 세상을 해석하여 내적 경험을 창출하는 자아에 있다고 해요. 자아가 독립적이고 건강하게 발달하지 못하거나, 현실적응에 불리한 쪽으로 혹은 개인의 자존심에 부정적인 쪽으로 발달하거나, 병적으로 분리되어 있거나,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어 유연성이 떨어져서 현실적응에 부적합한 것 등등이 그런 예이죠. 즉 자아라는 틀이 뒤틀리면, 내적 경험도 뒤틀리고, 이것이 심리적 문제들을 유발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떤 이들은 좋은 자아, 나쁜 자아가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고,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차이에 따른 갈등이 심하다고 해요. 그러니까 '나'를, 좋은 나와 나쁜 나로 나누고 나쁜 나를 가혹하게 공격하며, 이상적 자아 (나는 168cm에 48kg이어야 해.)에 도달하지 못한 현실적 자아(나는 뚱뚱해!)를 질타하며, 그에 따라 나의 내부로 향하는 공격이 심해질수록 심리적 문제가 커진다는 거죠. 그래서 이럴 때 심리치료는, 좋은 자아와 나쁜 자아의 통합, 비경직적으로 뒤틀린 이상적 자아를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지요. 또 자아의 구성요소 중 부정적이고 자학적이고 암울한 신념, 완벽주의 등 역기능적 사고패턴 등,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잘못된 사고, 부정적인 신념, 자기비하적인 자아상 등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그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해석하는 심리치료는 이를 잡아내어 좋은 쪽으로 고치려고 시도하지요. 하여튼 자아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심리치료에서는 다양한 기법들을 개발했고, 나름 일정의 효과를 거두고 있어요.


 

 

 

3.

 

더 자세한 '자아'와 '심리이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알고 싶으시면 다양한 학파의 심리치료사와 상담하시거나, 혹은 심리학서적을 탐독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개 환자인 저는, '자아'와 '우울'에 얽힌 제 경험을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제가 첫 우울증 삽화를 겪게 된 것은, 학창시절 우울증이 시작된 사람 중 상당수가 그러하겠지만, 학업, 진로문제 때문이었어요. 저는 이상적인 자아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의 나에 대해 실망하고 한심해하고 심하게 자책했어요. 그리고 그에 대한 방어로 '내가 나를 공격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억압하며, 혹은 다른 쪽에 주의집중을 하여 내적 갈등을 회피하며, 긴긴 시간을 보냈어요. 늘 궁금했습니다. 왜 내 정신에너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이 모자랄까. 당연한 일이었어요. 제 정신에너지는 저를 공격하고, 또 그에 따른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 그 과정을 억압하느라 어마어마하게 소모되고 있었거든요. 차라리 그 고통과 괴로움을 억압하지 않고, 남에게 털어놓고 상담이라도 받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저는 타인의 하소연을 잘 들어주어도 제가 하소연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것도 싫어했었죠. 그렇다고 심리치료 같은 것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그렇게 긴긴 시간을, 제가 저 자신을 공격하고 또 그걸 억압하며, 하릴없이 보냈어요.


더구나 저는 제가 진로니 학벌이니 하는 속물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창피하게 생각했어요. 많은 돈과 명성과 타인의 시기, 부러움에 대한 열망,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 좋은 학벌에 대한 집착, 남들 앞에 우쭐하며 잘난척하고 싶은 충동, 이런 것들은 한심하고 속물적이고, 또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특정 주류 시스템에 편입하여 버는 돈에 대한 열망이나 학벌에 대한 집착 등은 특히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가치관, 상식 있고 지적이고 속물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진심으로 수용하지도 못한 채, 그저 '그래야만 하다.'라고 억지로 저에게 주입하려 했어요. 속물이 되면 안 된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난 감사하지 못하겠는걸.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나는 성과를 내었는데, 주변 환경 때문에 내 욕망 달성이 좌절되었는걸. 한심하게 굴지 마. 착한 자식이 되어야지. 그것도 얻지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게 초자아가 심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하더이다 만, 하여튼 저는 사회적으로 옳다고, 또 지적인 사람들이 고상하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진심으로 소화하지도 못한 채 앙상하고 경직된 몇몇 지침들을 억지로 저에게 쑤셔 넣으려 하고 있었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사람이 속물에서 벗어나 성숙하고 청아해지는 것도 결국 때가 있는 건데. 철도 들기도 전에 진심으로 수용할 수 있기도 전에 그렇게 주입식으로 강요해대며,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나를 수치스러워하고 공격할 필요는 없었는데. 결국, 속물적인 욕망을 포기할 정도로 단련된 것도 아니었으면서. 그 타오르는 집착을 꺼트릴 수도 없었으면서.


그런저런 자아 분열, 나에 대한 공격, 갈등의 억압 와중에 우울증은 냐금냐금 진행되고 있었어요. 수면패턴이 소실되고, 다이어트-폭식-스트레스-과식-다시 다이어트-폭식-과식의 사이클을 수차례 거치는 등 식습관에 문제가 생겼어요. 수면과 식욕의 이상은 우울증의 주된 신호지요. 항우울제를 먹고 난 후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저 부분이고요. 그리고 한 가지 일에 대한 집중력이 사라지면서 피상적인 쾌락을 주는 다양한 흥밋거리를 산만하게 찝쩍댔고, 일상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상실한 채, 서서히 삶에 대한 흥미, 목표의식, 그리고 열정이 사그라져갔죠. 그렇게, 객관적으로는 꽤 좋은 조건에 있으면서도 저는 '그렇게 사는 게 재미 없냐? 왜 그러고 사니? 살기 싫으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들시들 말라갔어요.


그러다 가끔 나를 바꿔보겠다고 폭주도 했죠. 가장 쉬운 게 다이어트였고요. 눈에 보이니까. 웃긴 게, 저는 꽤 마른 편이에요. 그런데 조금 있는 군살을 빼겠다고 다이어트를 했죠. 일종의 현실도피였어요. '이것만 성공하면 나는 바뀔 수 있어.' 그럴 리가 없다는 건 희미하게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죠. 또 각종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이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성격과 태도로 저를 고치고 싶어 안달했어요. 물론 그 시도는 철저히 실패했죠. 사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적절한 이론과 방법, 그리고 꾸준한 노력과 지속적인 시도를 거치면, 유전자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성격의 상당 부분은 변화할 수 있다고 하거든요. 특히 습관 같은 것은 만들기 나름이죠.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제가 너무 싫었어요. 몸도 성격도 지능도 취향도 삶에 대한 태도도 기타 여러 가지로.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자신을 혐오하는 한, 그 자신에게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무참히 실패하더군요. 제가 변하기 시작한 건, '이 모습대로 평생 살아도 이제는 받아들이겠다. 난 지금 내 모습을 인정한다. 지금의 내가 변하지 않더라도, 난 내 모습을 좋아한다.'라며, 현실의 나를 바라보며 수용하려고 노력하면서부터였어요. 하여튼 자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부분을 밀어내며, 다양하지만 결국 실패가 예정되어 있던 시행착오들을 겪으며, 일상은 점점 더 어그러져갔고, 제 우울증은 혹은 제 뇌의 피해는 냐금냐금 진행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외부의 커다란 사건에 대해 그간 쌓아두었던 갈등을 폭발시키며 극단적인 반응을 해버린 후, 저는 완전히 무너져내렸죠.

제 첫 우울증 삽화가 시작된 거에요.




4.

어쩌면 그 우울증 삽화는 두 번째, 세 번째 일지도 몰라요. 그전에도 이런저런 덜컹거림과 사건 사고들이 잦았거든요. 하지만 당시가 가장 심했어요. 15~20시간에 육박하는 과도한 수면과 폭식으로 3~4개월간의 기억이 없으니까. 에너지가 없어서 다행이지 한강까지 걸어갈 에너지, 하다못해 지하철까지 갈 에너지라도 남아 있었다면, 위험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 밖은커녕, 가족들이 일어나있을 때는 방 밖으로, 아니, 침대 밖으로도 안 나갔던 것 같으니까.


그러다, 온라인에서 우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애정과 에너지를 받으면서, 혹은 시간이 흘러 자연적으로 (원래 시간이 흐르면 우울증 삽화는 저절로 치유되어요.) 저는 그 악몽과 같은 상태에서 탈출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다시 잘 살리라, 현실에서도 다시 힘을 내서 적절한 길을 갈 거라 생각했고, 어느 정도 성공도 거두었어요. 하지만, 제 내부 갈등은 그대로였고, 완벽주의 등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앙상하게 뒤틀린 비정상적 초자아도 여전했고, 경직적인 현실 대처방식도 변한 것이 없었어요. 내적인 갈등과 외적인 문제 앞에서, 저는 그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며 자아를 더욱더 유연하게 변화시키고 단련했어야 했어요. 하지만 전 그러지 못어요. 그렇기에, 다시 어려움이 닥쳐오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예정이었죠.


왜 그 많은 갈등과, 고통과, 우울증이라는 형벌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내 '자아'가 변하지 않았을까. 아마, 그 고난 속에서 제가 배우지 못해서였다고 생각해요. 전 내면적 고통과 내가 서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았어요. 현실을 똑바로 보고 그 속으로 뛰어들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갈등이나 고통을 억압하여 현실에서 도망 다녔어요. 제 현실 도피 방법은 점점 더 다양해져 갔어요. 어릴 때부터 심리적인 고통이 있을 때면 백일몽을 꾸던 버릇이 있었는데, 그건 어느 순간 머리로 영화를 찍는 수준으로 발전했죠. 또 책, 만화, 영화, TV, 팬 질, 온라인 게임 등, 다종다양한 재밋거리들을 얄팍하게 찝쩍거렸어요. 해야 할 일들을 최대한 미루는 버릇도 심해졌고, 그러다가 일상적인 일들과 삶의 당연한 절차들도 최대한 미루게 되었어요. 그러다 외부 현실이 지나치게 가혹해지면, 저는 실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주저앉았어요. 머리의 퓨즈는 나가고, 이불 속에 웅크린 벌레처럼 숨어들어 갔어요. 그렇게 현실의 고통과 갈등을 마주해야 하는 과업을 미룬 채, 저를 최대한 현실을 회피하며 저를 보호하려 했어요. 저는 자꾸만 도망쳤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회피가, 도망이 제 또 다른 천성이 되어버렸어요.

저는 고난의 시기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현실의 직시하며 그 과정을 견디어낸 것이 아니에요. 타인들과 어울리거나, 현실 인지를 억압하며 정신을 다양한 현실도피 재밋거리에 돌리거나, 아예 정신을 날려버리며 시간을 보내고 견디는 와중에, 저절로 최악의 상황이 지나가고 자연이 준 회복능력 덕에 제 상태가 호전되었을 뿐이죠. 어떻게 견딘 지도 모르면서 어려운 시기가 지나가 버린 거에요. 그렇기에 우울증을 유발하는 갈등과 고난, 수차례 반복된 우울증 삽화 속에서도 뭔가를 배울 수가 없었어요. 눈을 들어 제대로 보고 인지하지 않았는데, 뭘 배울 수 있겠어요. 그냥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입을 막고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효과적인 고난 극복방법이긴 하겠지만, 저 같은 성향의 인간에게는 최악의 극복방법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어요. 저는, 아무리 희망 없고 고통스럽고 끔찍한 현실이라도 똑바로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그 속으로 뛰어들어갔어야만 했어요. 그래야 고난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내 속의 무언가가 변하고, 그렇게 자아가 유연하고 현실적으로 갈고 닦여야, 진정한 변화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어요.


우울증의 끔찍한 점은, 우울증 삽화를 거칠수록 외부 상황이 점점 더 안 좋아져 간다는 것이죠. 성적표의 F는 증가하고, 연인과 배우자가 떠나고, 자식들은 외면하며, 사회적 평판은 떨어지고, 직장에서 해고되며, 돈도 능력도 인간관계도 점점 더 안 좋아지고, 그렇게 해 놓은 것 없이 혹은 그나마 있던 것도 갉아먹으며 나이는 먹어가죠. 이런 상황은 우울증 환자가 다시 우울증에 빠져들게 하는, 좋은 토양이 되어요. 최초의 큰 우울증 삽화 후 저는,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운도 입어가며 현실 상황이 최악의 상태로 떨어지는 것은 피했어요. 그리고 다 잘 될 거로 생각했죠. 하지만, 경직되고 극단적이고 융통성 없고 부정적인 저는 그대로였어요. 모든 것이 잘될 때는 문제 없지만,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이미 손상되기 시작한 뇌와 여전히 뒤틀린 자아를 가진 우울증환자는, 다시 최악의 방식으로 반응하기 시작하죠. 그리고 그 반응은 상황을 더 악화시켜요. 그러는 와중에 이전보다 더 빠르게 다시 우울증 삽화가 덮쳐와요. 그렇게, 수차례 반복되는 우울증 삽화가 오고 가고, 치료는 없는 와중, 시간은 흘렀고, 상황은 더 안 좋아져 갔어요.




5.


그러다 우연히 '명상'을 알게 되고, 그 후 심리학 전공들을 연달아 듣게 되었어요. 그제야 우울증이라는,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 계속 외면하려 했던 그 병의 실체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내가 우울증 환자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어요. 그리고도 또 긴 시간이 지나서야 제대로 우울증 치료를 받기 시작했어요. 이와 관련해선 앞에서 쓴 바 있어요.


전 MBSR (명상프로그램), 약물치료, 인지치료를 받고 심층심리치료를 받다 말았어요. 인지행동치료는 우울증 환자의 부정적 사고, 침체한 기분, 고립된 행동 등이 역기능적으로, 그러니까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고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면, 그것을 잡아내어 고치는 것에 중점을 두어요. 그리고 제가 받은 인지치료 프로그램은 주로 사고의 교정에 초점을 두고 있었어요. 우선 인지치료 이론에 의하면, 우울증 환자들은 자신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 더 나아가 세계 자체에 대해, 그리고 자신과 세계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대요. 이를 인지 삼제라 해요. 그래서 우울증의 인지 치료는 이런 인지삼제와, 기타 부정적이지만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습관적인 사고형태들, 예를 들어 하나라도 잘못되면 다 망했다는 식의 완벽주의, 사소한 것을 재앙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재앙화, 나와 타인과 습관적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비교하는 등등의 자동적 사고들을 잡아내어,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부정적이라는 것을 인지시키고,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작업을 반복하는데 초점을 두어요.

즉 인지행동치료는, 흔히 말하는 '생각 바꾸기,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의 과학적, 조직적, 체계적 버전이라 할 수 있어요. 그것도 부정적인 사고패턴을 무조건 긍정적 사고로 고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이고 합리적이고 문재 해결에 훨씬 유용한 사고방향으로 고친다고 보면 되겠죠. 이런 인지치료를 받으면서, 또 인지치료의 심층치료요법이라 할 수 있는 스키마치료를 받으면서, 제 자아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부정적인 사고패턴, 비정상적으로 경직된 신념 따위가 조금씩 유연해지고 현실화되기 시작했어요. 아마 긴긴 우울증의 재발과 비참한 경험들의 시기를 거치면서 견고하던 제 자아가 상당 부분 쓸리고 닦이면서 깨지고 있었던 와중이라, 더 쉽게 일이 진행되었는지도 몰라요. 그렇게 저는 수많은 우울증 삽화 와중에도 배우지 못했던, 건설적인 사고방식, 현실적인 신념 등 좋은 자아의 요소들을 배우게 되었고, 그 당시 우울증 삽화에서도 빠른 속도로 빠져나오기 시작했죠.


하지만 제 우울증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었어요. 제 경우,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면, 자아의 잘못된 부분을 교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아 자체를 놓아버려야 했어요.

 

 

    • 저도 우울한 인생이라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요,이게 아마 심도가 깊어져서 그런가 같아요.
      그런데로 해결 방법은 시공간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드려 접수하는 주체가 되는 것인데요 그러려고 노력을 합니다.
    • 가끔영화 / 진짜 그게 이상적인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그냥 다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
    • 네 그 수가 제일 좋아요 사실은 모르겠어요 좋은 수인지
    • ㄴ 제 경험으로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변화의 가장 중요한 티핑포인트? 같아요.
    • Being님의 글 항상 잘 읽고 있어요. 님이 지나온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조금은 느껴지기도 하구요. 덕분에 우울증에 대해서 많은걸 배울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무엇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건 님이 자신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분석하고 위로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리고 그걸 이렇게 읽히기 쉬운 글로 써주시는 점두요. 맘으로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항상 잘 읽고 있어요. 돌아오셔서 기쁩니다. 하지만 갑자기 being님이 가졌던, 현재도 가지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객관적으로 좋은 편인지 궁금해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동안 안보여서 진심으로 걱정을 했어요.
      마지막 문장 이후에는 어떻게 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 첫 회부터 잘 읽고 있습니다. 몰랐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
    • 아니 이렇게 현기증 나는 부분에서 끊으시다니...!! 42편을 어서 보고 싶어요ㅜㅜ
    •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의 제 상태를 가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 아일린 / 친절한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_ _)

      대필작가M / 음, 이 질문을 읽고 나름 고민을 좀 했는데요,사실'객관적'이라는게 뭔지, '좋은 편'의 기준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어요. 대강 제가 서 있는 기반을 저도 부모도 남들에게 최대한 알리고 싶지 않으니(창피해서?) '객관적'으로 나쁜 상태라고 해야하나?


      모르는 사람, tnfeo / 쭉 쓰다가 너무 길어서 중간에 끊었어요;; 정리도 안 되고 ㅠㅠ

      13인의 아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keira / 뭔가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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