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세로 걸으시나요

저는 최대한 반듯한 자세로 걸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허리를 꼿꼿히 세우고 걷는다는 말도 많이 듣습니다.


발은 1자로 하이힐 굽이 흔들리지 않게 무릎을 펴고 허리를 세우고 목을 뽑고 정면을 바라보면서 걷습니다, 터벅터벅 걷거나 신발이 끌리지 않도록 합니다. 그래서 뮬도 잘 안신고 슬링백을 신고 끈을 발 아래로 넣지 않아요.


제가 이렇게 걷는 이유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전학가기전 중학교까지 이지메를 겪었습니다. 등교하면 책상 속에 쓰레기가 가득했고 며칠 된 우유도 들어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으면 등에 샤프심 자국이 빼곡히 찍혀 있었습니다. 도시락에 방부제를 부어놓곤 먹으라고 얼굴도 박혔습니다. 가방은 쓰레기통에 있으면 다행인데 걸레통에 들어있어서 시궁창 냄새가 났습니다. 걸레물에 젖은 교과서는 주황색 곰팡이가 피었습니다. 책상에 연필로 쓰여진 욕은 괜찮지만 칼로 정교히 새긴 욕은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저를 표적삼아 비비총을 쏘는 놀이를 했습니다. 가끔 반애들에게 몰매를 맞을때도 있었는데 그때는 침을 뱉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애들이 그렇게 한 이유를 모릅니다


그때 저는 세상에 부끄럽고 제가 부끄러워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다녔습니다. 고등학교 때 "너는 짱돌로 그 애들의 머리를 찍어버렸어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걷는 자세를 바꿨습니다. 걷는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차하면 힐을 벗어 머리를 찍어버리면 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눅진한 침을 닦으며 본 저녁노을을 잊기 위해 저는 반듯한 자세로 걷습니다.


네, 제가 잘못을 했을수도 있고 안했을 수도 있습니다. 설사 잘못했다 하여도 그것들을 감내할 이유는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째 심란합니다만 이렇게 생각합니다. 뭐, 육체적 폭력은 없으니 그냥저냥... 너랑 닿으면 썩는다고 했던 말도 기억나지만 저를 향해 침을 뱉던 얼굴이 더 기억납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표나지 않는 것들은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바른 자세로 걷습니다. 바른 자세로 걸을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오늘은 꼭 글렌 굴드의 바흐를 들어야겠습니다. 고양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걸으시나요? 어떤 생각으로 걸으시나요?

    • 길에 뭐라도 떨어져 있을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걸어갑니다
    • 걷기 매니아입니다. 걸음도 무척 빠르고....일이던 뭐던 좋은 아이디어들은 대부분은 걸으면서 떨오릅니다. 걸으면서 인생공부, 일공부도 합니다. 항상 기웃기웃 눈알은 졸라 돌아가고;; 그래서 볼거리 많은 거리를 걷는걸 좋아합니다. 아...농촌, 산길을 걸을적에도 전 그러기는 합니다. 자세? 그렇게 공부하기 좋은 자세를 취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고개를 바짝 세우고 몸의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려 척추에 무리를 주는 것을 방지합니다 (님의 걷기 자세는 건강에도 아주 좋은 자세랍니다 :) ) 아참, 걸으면서 하는 구경중에 가장 재미있는건 역시 '사람구경'이라고 생각해요.
    • 저도 좀 구부정하고 시선이 땅에 있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 가끔 돈도 줍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앞으로 반듯하게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씩씩하게요.
    • 의식적으로 어깨와 가슴을 펴고, 거북목이 되지 않도록 턱을 집어 넣고 보폭을 조금 넓게 해서 걸어요. 건강상의 이유와 미관상의 이유, 자기 만족 등등 때문에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때까지 집단으로부터 그렇게 심한 이지메를 지속적으로 당할만큼 한 아이가 잘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누군가를 잔인하게 대했던 기억도 이미 잊었을 지도 몰라요. 애초에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었을 거예요. 사소하고 별 것 아닌 것들에서 시작해 가속도가 붙은 거겠죠. 소설 풍장의 교실이 떠오르네요. 

      그리고, 글렌 굴드의 바흐는 언제나 옳아요.
    • 여차하면 힐을 벗어 머리를 찍어버리면 됩니다... 가장 감동적인 구절이네요^^
      전 팔자걸음을 걷고, 여자가 팔자로 걷는다 구박 꽤나 들었지만 당당히 걸었거든요. 근데 허리디스크가 왔고, 팔자걸음은 골반을 틀어지게 하고, 틀어진 골반은 디스크를 더 악화시키고... 해서 요즘은 님처럼 똑바로 걸으려 무지 애씁니다. 건강을 위해서도 똑바로 걸어야 해요~
    • 굉장히 키가 작기 때문에 언제나 곧은 자세로 걸으려고 노력합니다.(더 작게 보이는 건 싫으니까요ㅜ) 걸음은 상당히 빠른 편이고, 보폭이 큰 편이라 씩씩하게 걷는단 소리를 곧잘 들어요.
    • 어릴 때부터 팔자걸음으로 유명해서 핀잔을 많이 들었는데 잘 안 고쳐지더군요.
      걸음걸이가 운명을 만든다는 말도 있는데 뭐 어쩔 수 없죠. 팔자걸음치고는 내 운명이 그닥 나쁜 것 같지도 않고...
      근데 이지메 당한 이야기를 보니... 가슴이 다 먹먹하네요. 그런 상황을 상상조차 못하겠어요.(우리땐 왕따 같은 말도 없어서...)
      한나 아렌튼인가 하는 분이 나치 전범들을 분석하면서 '악의 평범함'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그때 왕따를 놨던 아이들도 사실은 참 평범한 애들일 거예요. 그치만 어린 시절의 상처로 덮기엔 너무 엄청난 일일것 같군요.
      똑바른 걸음걸이를 통해 조금이라도 상처가 아무시길 바랍니다...
    • 좀 빠르게 걷는 편이고 앞을 똑바로 보고 걷기는하지만, 앞에서 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인식하지 못해요. 앞에서 슈주 김희철이 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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