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트 라인' 을 건드린 안철수.

0. 요새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을 꼽자면 단연코 '폴트 라인' 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라구람 G 라잔이 지은 이 책은 2008년 미국 경제 위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제학자. 그리고 언론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에 대해 초 저금리와 파생상품의 범람으로 인해 저소득층들도 집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라잔은 위기의 원인을 좀 더 깊숙히 바라봅니다.  미국 서민들은 어떻게 해서 저렴한 가격에 집을 살 수 있었는가. 라잔은 1990년대 이후 이뤄진 고용 없는 성장이 원인이라고 지적합니다. 소득 분배가 악화되면서 형성된 양극화는 교육 불평등으로 이어지고 이것에 책임 져야할 정치인들은 쉬운 대책인 주택시장 부양대책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브프라임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 라잔은 이 같은 현상을 '폴트 라인'이라는 단어로 정리합니다. 폴트 라인은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 지각판 사이의 균열이 이뤄지는 구역입니다. 폴트 라인에서 일어나는 균열이  겉의 지진으로 일어나듯이 미국에서 일어난 소득,교육 불평등이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서민들의 이기심, 금융권의 탐욕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라잔의 분석은 경청할 만합니다.

 

1. 식상합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출마설 관련 보도를 둘러싼 언론들의 해석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드는 생각입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안 교수의 중도적 이미지에 대한 열광등이 말이죠. 지금 당장 저를 정치부 기자로 발령한다 해도 저런 기사는 충분히 쓸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제 3세계 정치인들이 나왔을 때 우리는 언론의 저런 지적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습니다. 멀리서는 박찬종이 있었고 가까이는 문국현이 있었습니다. 문재인 이사장에 대한 분석도 광의적으로는 들어 맞지요. 현재의 상황을 진단할 때 가장 보편적이고 스탠다드한 정리. 즉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식상하다고 해서 틀리지는 않겠지요. 마치 서브프라임 사태를 분석하는 일반 언론들의 얘기 처럼 어느 정도의 정확성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본질을 말하지는 못합니다. 진도 9.0의 정치적 지진의 진앙지를 온연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2. 그러지 않고서는 현재의 현상을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안 원장의 지지율은 초반이긴 하지만 5~60%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지역, 계층, 연령, 성별 모두에서 그는 고르게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이를 단순한 중도적 이미지, 비 정치권의 정치권 입성에 따른 컨벤션 효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그의 지지율이 거품처럼 추락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안 원장이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서 대중은 무언가를 보고 있습니다. 그것이 그의 지지율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고르고 균일한 지지율이 나올리가 없습니다. 강남에서 마저 압도적인 그의 지지율은 단순한 이미지 정치 그 이상을 설명해 줍니다. 설령 보수층과 진보층에게서 협공을 받더라도 그의 지지율은 쉽사리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고 SNS의 확산도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 역시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이 정치적 지진의 폴트 라인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 원장이 무엇을 말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3. 안 원장이 대중앞에 드러나고 자신의 사회적 발언을 계속하면서 강조해왔던 것은 '사회적 책임' 이었습니다. 대중이 그를 사회적으로 인식하게 된 '무릎팍 도사'에서 안 원장은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개인의 능력때문이 아닌 사회의 혜택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 의식입니다.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하게 된 원인도 바로 이 사회적 책임에서 근원합니다. 청춘콘서트를 개최하며 여러차례 언급했던 언어들도 대부분 사회와 공동체에 대한 강한 의식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느냐가 행동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고 밝힌 언급도 흥미롭습니다. 말하자면 그의 정치적 동기는 욕심이 아닌 사회입니다.

 

4.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그의 태도에 대해 '공적 헌신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라고 정의내리고자 합니다. 안철수 원장에 대한 사회의 환영. 그리고 그의 정치참여에 대한 높은 지지율의 근원은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안 원장의 책임의식에서 나옵니다. 거꾸로 말한다면 기존 정치권은 그동안 '공동체'나 '사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족이 열망을 낳고, 열망이 환영을 낳습니다. 제 3세계의 모든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선함에 안 원장은 공동체에 대한 식견을 플러스 하고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 무게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강력합니다.

 

5. 바로 이것이 '폴트 라인'  입니다.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의 근원. 균열이 형성되는 지점은 공동체에 대한 부실함입니다. 지도층에 대한 불신은 그들이 공동체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는 것에 근원합니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 역시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열망하는 이유는 그것만이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각자 도생의 사회입니다. 국가는 돌봐주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 낙오자들을 무시하고 버립니다. 최소한의 안전망과 패자부활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떨어진 사람들은 패배자라고 놀림받습니다. 사회적으로 계급이 형성되고 그것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상실된지 오래며. 모두가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검투장에서 인생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이 문제를 몇 년 전 화전민 사회 라는 글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지금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점의 근본원인은 '공동체의 붕괴'에서 출발합니다.

 

6. 현 정부의 등장은 공동체의 상실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사적 이익으로 뭉쳐진 집단이며. 공동체의 모든 가치에 대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이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 정부가 말하는 사적 이익의 극대화로 인해 대중이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에 있습니다. 대중이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높은 관심은 국가의 역할.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대중의 일정부분 관심을 가지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7. 이 지점에서 대중의 관심은 안철수를 향합니다. 공동체를 말하고 사회적 책임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중요한 만큼 당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고 말합니다. 지지와 열망이 쏠리고 기대감이 커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보면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세력에 대한 갈망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근원은 공동체에 대한 열망입니다.

 

8. 정치권에서는 안철수의 등장을 '쓰나미'로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그도 그러합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면 그의 지지율은 굉장히 강력하며 모든 것을 휩쓸어가려는 모양새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가오는 쓰나미에 대응하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합니다. 일견 당연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정치권에게 필요한 것은 쓰나미의 근본 원인. 왜 쓰나미가 생겨났냐에 대한 탐구입니다. 누차에 걸쳐 계속 설명하지만 지금 대중의 열망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만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안철수의 폴트 라인은 공동체입니다.

 

 

글이 중언 부언 하군요.

    • 중언부언하다고 말씀 하셨는데 간결하고 명확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난 영화에서는 보통 강력한 무언가가 다가와도 타성에 젖은 기득권 층의 무관심으로 아무 대처도 못하다가 일거에 휩쓸려가죠.
      안철수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사적이익만 충실한 기존 정당에 강력한 재난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합니다.
    • 안철수관련 글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 안철수가 '반한나라당'을 명확히 표명했을 때 지지율이 얼마나 떨어져나갔을 지는 몰라도 저는 정말 후련하더군요.
      앞으로 안철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게 될 텐데 기대도 되고 왠지 걱정도 되고 막 그렇네요.
      이를테면 그가 과감하게 (진보정당 정치인조차 엄청 에둘러 말하는)'증세'를 말할 수 있을까요?
      혹 그가 그런 사람이고 또 그게 이 나라 국민에게 먹힌다면, 정말 안철수는 대단한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겁니다.
    • 며칠동안 트윗이랑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안철수 관련 쏟아지는 글들이 너무 니편 내편만 나눠서 나한테 아군이냐 적군이냐 이런 모드로 감정적으로 엄청 피곤했는데 제가 며칠동안 본 글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입니다.
      프레임대로 움직이지 말자면서 정작 윤여준이 던져주는 떡밥만 먹는게 너무 싫었거든요.
      저도 가장 공감가고 추천하고 싶은 글이네요.
    • 접근각도는 좀 다르지만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안철수관련 글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2


      솔직히 안선생 출마 관련설에 대해서 그의 뒤에 한나라당 윤여준이 어쩌구...하는 소식을 들었을때 너무 화가 나서 모니터에다 대고 욕설을 해대곤 했었습니다.-_-;; 안선생이 한나당으로 출마한다는 것에 얼마를 건다느니 하는 게시판 글들 보면서도 어찌나 성질이 나던지...뒤에 안선생이 확실히 선긋는 얘기를 하니 정말 속이 후련합디다!(윤여준이 이 인간 300명의 후궁들 중의 하나인 주제에 지가 무슨 황후나 되는 것처럼 썰을 풀다니...--+) - 비유가 쎄다면 죄송합니다.;;


      0. ....미국에서 일어난 소득,교육 불평등이 결국 서브프라임 사태로 이어졌다는 지적입니다. 문제의 본질이 서민들의 이기심, 금융권의 탐욕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라잔의 분석은 경청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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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금융위기에 대한 분석들 중에서 이 문제의 원인이 사실은 금융계의 탐욕보다는 서민들에게 내집 마련을 해주겠다는 '선의'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글을 언젠가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 가슴 서늘한 얘깁니다.

      5. 국가는 돌봐주지 않으며 오히려 사회 낙오자들을 무시하고 버립니다. 최소한의 안전망과 패자부활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떨어진 사람들은 패배자라고 놀림받습니다. 사회적으로 계급이 형성되고 그것이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상실된지 오래며. 모두가 서로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검투장에서 인생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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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진보정당을 외면하고 한나라당같은 부자정당에게 표를 주는 이유를 잘 짚으셨네요. 동물의 왕국에서 상처입은 야생동물이 천적의 제1 공격목표가 되듯이 공동체 의식이 붕괴된 사회에서 가난한 서민이라는건 무서운 낙인입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천적들의 공격목표가 되니까요 - 빈곤계층이 겪는 사회적 무시와 놀림을 말합니다 - 난 서민 아냐...라고 정신승리라도 하지 않는한 이런 살벌한 환경을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 안철수 개인이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것과, 실제 그가 그런 세상을 만들 계획이 있다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안철수에게 어떤 계획이 있는 지 궁금합니다.
      비아냥이나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요. 앞으로 설득력 있는 플랜을 보여준다면 저도 안철수를 찍을 겁니다.
      제가 아는 한 그건 정치적 싸움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 같은데.. 제가 모르는 길이 있을 수도 있겠죠.
    • 안철수관련 글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333
    • 안철수관련 글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4

      걱정이 되는 지점은 개인의 지향과 실질적인 계획과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입니다
      경제권에서 일어나는 변수들은 안철수씨라면 어느 정도 예견하고 대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변수들을 어떻게 맞이하고 응용하며 헤쳐나갈지 의문입니다
      만일 그가 현명하고 꿋꿋하게 잘 해낸다면
      저 역시 안철수를 찍고 싶습니다.
      헉...그러고보니 저는 서울 시민이 아니네요 OTL
    • 경쟁을 강조하는 사이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느낌이에요. 그런 분노가 전염되듯이 사회에 퍼지고 그것이 모두를 힘들게하는 상황. 약간 미신같은 부분도 있지만 제 믿음은 요즘 그렇습니다. 노력하도록 자극하자는 게 아니라 같이 가자는 메세지는 확실히 경청하게 되는 것 같아요.
    • 마르세리안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속이 시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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