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이 여기서 언급될 필요는 없어보이고, 징후적 독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 멍청해 보인단 말입니다.(저렇게 멍청하게 말을 만든 프랑스인이나, 굳이 징후적 독해라고 빡빡하게 번역한 역자나) 조어를 제대로하는 것도 재능이 필요한 거거든요. 징후적 독해라는 말처럼 벙찌는 조합 참 드물어보입니다. dos님의 해석이 맞건 틀리건 간에 징후적 독해라는 표현 자체가 오류로 보이는데요. 가령 '무지향성의 자판'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려요.
사실 징후발견적 독서란 문학연구에서 매우 중요하고 효과적인 분석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모두 알고 있는 대로 이 개념은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인 루이 알튀세르가 ‘문제설정(problematic)’이라는 개념과 함께 제시한 비평적 방법이다. 알튀세르의 ‘문제설정’ 개념은 “질문 속에 답이 있다”라는 통속적인 문장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능한 답변의 형태는 결정되기 마련이다. 이 질문의 형태 속에는 동시에 그것과 조응하여 제시되기 마련인 답변을 둘러싼 ‘암묵적인 전제’나 가정이 숨어 있다. 그러므로 문제설정은 기대되는 답변만을 ‘선택’하고, 그 이외의 것은 ‘배제’하게 만든다. 알튀세르의 징후적(symptomatic) 독해란 담론을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된 문제설정을 해체하기 위해, 텍스트의 표면에서 배제된 ‘징후’를 극대화시켜 드러내는 일종의 해체독법이다. 알튀세르는 다른 구조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텍스트는 모순적인 이론과 이데올로기들이 교차하는 갈등의 장이자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가정한다. 그는 문제설정을 해체시켜 질문들의 체계가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와 텍스트의 무의식 구조를 분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폐되어 있는 텍스트의 ‘징후’를 해석함으로써, 담론의 보이지 않는 ‘문제설정’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징후발견적 독해'와 '징후적 독해'는 완전히 다른 말인데, 도대체 '징후적 독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이해난망.
그런데 '징후적 독해'를 대체할 그럴듯한 단어가 있는 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한국어학자나 암튼 외국어라도 그 나라 어학자가 아닌 사람들이 개념어를 새로 만들다보니 뭔가 손발이 오그라드는 측면이 없지 않잖아요. 데리다의 차연도 그 원어나 번역어나 몽땅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대체할 적절할 다른 말도 없고.
아뇨, 담론이나 차연은 일단 말은 됩니다. 그 의미를 어느 정도 경향성에 맞춰 따라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징후적 독해라는 말은 전혀 납득이 안되네요. 전혀 다른 뜻인데요. 위에 언급했듯이 그냥 징후발견적 독해라고 표현하는게 낫죠. 저는 '징후적 독해'라는 조어에서 '징후를 포착하는 독해"라는 의미를 전혀 읽을 수 없거든요.
우리말의 한자어 중에는 명사이면서 서술적 의미를 포함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다"를 붙일 수 있는 종류의 단어들이요. 이런 단어는 굳이 '하다'를 덧붙이지 않아도 신문의 표제 등에 쓰여 서술적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symptom의 역어 '징후, 증상'은 서술적 의미가 없습니다. 징후(증상)가 "나타나다" 증상을 "발견하다" 와 같은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하다" 보다 어휘적 의미가 뚜렷한 동사(나타나다 등)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징후로서의 독해, 징후의 성격을 지닌 독해' 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면 "징후적 독해' 라는 말은 말이 안됩니다. 징후를 읽어낸다는 뜻이라면 modify님 말씀대로 징후 발견의 독해가 더 적절한 용어라 생각되고요. '적'의 남발이 일본어의 영향인지는 불분명하나 (일본어에는 '적'이 상당히 많이 쓰이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그런 식의 쓰임이 없습니다. 저는 말의 순혈주의를 주장하지도 않고 필요에 따라 외국 어휘를 들여오거나 신어를 생산하는 일은 우리말을 풍부하게 하는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국어의 통사 구조를 무시하거나 원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전에 나오는 뜻으로 대충 번역하는 풍토는 우리 인문학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네, 전 그 용어의 개념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어의 통사구조상 그런 조어법은 매우 어색합니다. 번역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표현이 좀 과했습니다. 용어의 개념을 이해하고, 번역어에 문제의식을 갖더라도 이미 널리 쓰이게 된 말은 그냥 쓸 수밖에 없지요. 예전에 문학 강의를 들었다가 질린 적이 있어서 그만..
의사가 환자를 진단할 때처럼 텍스트에서 증상 혹은 징후(모순, 장애 등의)가 발견되면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신호, 증상으로 여기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읽어야 한다는 뜻이군요. 어쨌든 "징후적" 이라는 말은 이상합니다. symptom이 '징후'이고 symptomatic이 형용사니까 '적'을 붙이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기계적 번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뭐 une lecture symptomale 이나 symptomatic reading이나 다 비슷한 말같긴 합니다만.. 어찌보면 별로 틀린 번역이 아닐 수도.. ;; 철학은 어렵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