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ing Private 한예슬 – 리버럴, 경제학, 계약
1.
한예슬이 책임을 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임.
드라마 종영까지 촬영을 마치는 것과 중도 하차하고 계약에 따른 배상을 하는 것.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할 지와 관련된 당사자의 자유, 선택권을 존중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함.
타인에게 끼치는 피해는 배상책임을 통해 규율됨.
비슷한 환경에서 촬영을 끝까지 마치는 다른 연기자들이 한예슬 보다 딱히 더 책임감이 강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그렇게 행하는 것인지, 한예슬보다 배상 책임에 따르는 경제적 손실을 더 두려워해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을 알든 모르든 그에 대해 도덕적으로 단죄하겠다는 생각에도 일정한 위험이 따름. (물론 편익도 있을 수 있음)
이런 태도를 대중적 사상 검증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양심의 자유 제한 등 사상 검증 일반의 문제점을 일부 공유함.
개인적으로는 수퍼모델들과 일반인들 사이에 대단한 본질적, 도덕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내가 수퍼모델처럼 섹시하고 수퍼모델이 직업이었다면, 지금의 나와는 많이 달랐을 것임.
한예슬이 “무책임하다”라는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함.
그리고 그런 (개인적) 도덕적 판단도 얼마든지 가능함.
그러나 그런 표현과 판단이 배상책임을 전제한, 배상책임이 이미 강제된 개인, 사인(私人, private)의 선택을 제한하는 논리로 정당화된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생각함.
무책임에 대한 약속된 대가를 지불하고 무책임할 권리를 옹호함.
1-1.
한예슬은 계약 상대방에 대해서만 책임을 짐.
아마도 소속사일 것으로 판단됨.
그리고 소속사가 제작사에 대해 계약 이행 책임을 짐.
그리고 제작사가 방송국에 대해 계약 이행 책임을 짐.
그리고 방송국이 광고주에 대해 계약 이행 책임을 짐.
이런 식임.
각 계약 단계는 고유한 특징들을 갖고 있고,
이 특징들을 반영한 계약이 체결되어 있음. 또는 있을 것임.
매우 복잡하게 여러 가능성들을 고려하고 각 가능성들에 대한 처방이 포함되어 있음.
(주1: 계약경제학의 주요 문헌들 참고)
그 중에 매우 중요한 것이 risk sharing (위험분담) 임.
moral hazard (도덕적 해이)는 별개의 이슈로 볼 수도 있고, risk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겠음.
소속사, 제작사, 방송국은 모두 risk taking을 해야 하고
계약 단계에서 그것을 상대방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여러 장치를 마련했을 것임.
그러니 계약대로 하면 됨.
즉, 제작사나 방송국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함. 그들은 호구가 아님.
갑과 을은 상대적인 것으로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는 어떤 본질이 아님.
방송국이 광고주에 대해 계약 이행 책임을 진다고 방송국이 을이 아님.
프로그램을 전후한 광고 배정을 놓고 줄 세우고, 경매 붙여서 형성된 계약임.
광고주가 시청자-소비자들에 대해 을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임.
여기서 누구도 호구가 아니고, 일방적인 갑이거나 을이 아님.
(유일하게 차별되는 계약자는 방송국이라고 생각함.
공영방송은 전파라는 한정된 자원을 비시장적-비경쟁적인 방식에 의해 과점하도록 권한이 부여되었으므로
직접적인 규제 대상임)
1-2.
다른 출연자 및 스태프들은 한예슬이 책임져야 할 대상이 아님.
스태프들이 제작사와 계약을 맺었다면, 제작사에게 계약 이행을 요구하면 됨.
제작사는 한예슬-소속사로부터 배상 받아서 방송국과 스태프들에게 배상하면 됨.
이 과정에서 일부 손해를 분담할 가능성이 더 큼. (전방향으로 ‘슈퍼갑’이 아닐 경우)
그건 당연히 제작사가 져야 하는 부담임.
no risk, no gain. high risk, high return. no free lunch.
스태프들은 제작사로부터 배상을 제대로 못 받을 가능성이 큼.
계약 관행이 바뀌어야 함.
스태프들의 권익이 계약법이 아니라 한예슬의 “미덕”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사회는 별로 좋은 사회가 아님.
물론, 미덕은 좋은 것임.
그러나 내가 보기에 미덕인 것이 타인이 보기에 억압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다원주의 사회의 기초임.
이 기초를 분명히 하자는 취지에서 계약법에 의한 (시장)규율을 우선적으로 강조함.
계약 관행이 크게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큼.
스태프가 한예슬에 비해 훨씬 대체하기 쉽기 때문임.
시청자들이 말단 스태프가 만들어내는 차이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단 스태프를 하겠다는 사람은 꽤 있기 때문임.
이건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임.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이 공유하는 문제임.
누구도 그들을 방송제작업에 억지로 밀어 넣지 않았고
방송제작업 노동자의 권익을 다른 산업 노동자의 권익보다 특별히 우선적으로 보호할 사회적 당위는 없음.
노조 결성이 부분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으나, 그것은 그것대로 비용을 초래함. (아래에서 다시 언급)
스태프들도 한예슬처럼 대응하는 수밖에 없음.
시청률 경쟁 한창일 때 펑크내서 엿 먹이기 (voice)
계약 단계에서 임금 수준, 임금 지급 주기, risk sharing에 대해 요구하기 (voice)
더럽다고 때려 치우기 (exit) 등임.
물론 손해가 따름.
그러나 자신의 선택에 의해 일부 손해를 감당하는 것은 한예슬, 소속사, 제작사, 방송국 등도 마찬가지임.
내가 A와 계약을 맺으면서 A와 계약을 맺는 제3자들의 권익까지 모두 고려,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생각임.
제3자도 마찬가지임. 그들이 나의 권익을 고려할 필요가 없음.
아무도 그렇게 살지 않고 있으면서 한예슬은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모순적임.
1-3. 스태프를 포함한 일반 회사원과 한예슬의 공통점과 차이점
회사원도 마찬가지임.
노동법 혹은 고용계약의 규정에 따라 자기 권익을 추구해야 하며, 할 수 있고, 하고 있음.
차이점은 이것임.
내가 여러 가지 사유로 퇴직하면서 규정에 따른 통보 및 인수인계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질 가능성은 극히 작음.
그러나 소속사와 한예슬은 이를 피할 수 없음.
따라서 굳이 따지자면 한예슬이 회사원보다 더 ‘무책임’해도 된다고 생각함.
1.4
회사원과 한예슬의 고용 계약이 다른 것은 경제적 특질이 다르기 때문임.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중심적인 것이 바로 대체가능성임.
한예슬과 계약을 맺고 드라마를 슈팅하면
회사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체가능성이 제한됨.
그렇기 때문에 해당 리스크가 계약에 다 반영됨.
hold-up 문제라고 볼 수 있음.
http://en.wikipedia.org/wiki/Hold-up_problem
편당 출연료 정해 놓고 계약서 사인만 하면
한예슬은 대충 해도 꼬박꼬박 현금 꽂히고,
제작사는 한예슬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바꿀 수 없음. 바꾸기 어려움. hold up!
이것은 엄밀하게 얘기하면 도덕적 해이와는 조금 다른 사후적 기회주의(opportunistic behavior)라고 함.
(엄밀하게 말해 도덕적 해이는 agent의 노력 정도에 대해 관찰, 측정이 어렵거나 감시 비용이 많이 드는 경우 발생하는 문제를 의미함.)
이와 같은 사후적 기회주의의 위험 및 그에 따른 피해규모가
일반 회사원, 스태프의 경우와 전혀 다르기 때문에 계약에 반영되는 것임.
(사후적 기회주의를 규율하는 메커니즘은 배상책임 외 다른 것들도 있는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평판(reputation)임.
영화판이나 이런 동네, 평판이 매우 강력한 규율을 하는 시장을 everyone knows everyone market 이라고 하기도 함.)
1.5 배상 책임
지금 어떤 식으로든 소송이 진행될 것 같은데, 법원이 판결을 잘 해야함.
계약서 문구만 보고 삽질하면 안 됨.
입증책임을 누가 지는지 등을 잘 고려해서 적정한 배상책임을 지워야 함.
reliance damages, expectation damages 등 rule 혹은 법리가 있음.
여기서 문구만을 근거로 제작사 편을 들어주면?
expectation damages 적용하고 손해액도 크게 계산하면?
그러면 앞으로 제작사의 횡포(사후적 기회주의)를 방조하게 됨.
큰 관심이 없어 자세한 사실관계는 모르지만, 제작사(PD)의 사후적 기회주의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 같음.
“TV 켜놓고 일하면서 종종 스파이명월
틀어놓곤 하는데 드라마가 잘안풀리니 좀 한예슬한테 의존한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특히 중간에 새작가가
투입되면서 한예슬에게 집중되는 코믹?설정들이 강화되기도 했고..”
“이 드라마 몇 번 본 사람으로서 한예슬 씨 십분 이해가 갑니다.
오히려 '잘 했다' 싶을 정도로 드라마 엉망이었습니다. 이런 대본과 상황을 진지하게 연기하는 게 신기할 정도랄까요. 저
사람이 그런 행동에 이르게 된 것이 드라마 수준, 이야기 수준이 직업 의식이나 체력 한계를 견딜 수
있는 정도 이하라는 점이 좀 더 부각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 등등
“80%까지는 모르겠으나 한예슬의
매력을 다 뽑아먹겠다는 게 눈에 확 드러났으며, 그걸 풀어내는 방법이 상당히 유치하고 삼류였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드라마입니다.”
“이 드라마를 집중해서 보지는 않았지만 전회를 다 지켜보긴 했습니다. 일단
한예슬이 불성실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어요. (연기를 잘하는 것과 성실하게 한다는
느낌이 드는 건 좀 다르니까요.) 오히려 저런 대본에도 연기를 하다니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_-; 일단 드라마에 나오는 액션신은 한예슬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에릭은
액션신이 아예 없고 소좌동지도 한예슬에 비하면 액션신이 거의 없어요.
단적으로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등등
사실 어떤 판결이 나든, 즉 한예슬이 독박을 쓰더라도, 나중 사람은 대처할 수 있음.
이제 계약서에 신의 성실의 구체적 기준이 추가되고, 손해배상 한도 조항도
들어갈 것임.
이런 비가격 조정과 더불어 가격 조정이 이루어짐(더 높은 출연료 요구).
그리고 exit 조정이 이루어짐. (주2)
efficient breach of contract, efficient
breach theory 가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음.
(효율적 계약 파기 이론? 번역 용어를 잘 몰라서임. 알았으면 영어 안 씀. 예: 사후적
기회주의)
계약 경제학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비전공자가 혼자 읽기는 거의 불가능함.
법경제학의 계약법 관련 내용을 추천함. 몇 년 전에 괜찮은 교과서가
번역(한순구)되었음.
번역 교과서를 직접 읽어본 것은 아니므로 괜찮은지 어떤지 확신은 못함.)
효율적 계약 파기..
여기서 효율성은 한예슬 또는 제작사,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효율성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정의(justice), 분배적 함의를
가짐..
효율성과 정의를 엄밀한 근거 없이 분리/대립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2. exit vs. voice
구글에서 exit voice and loyalty 로 검색해 보기 바람.
이준구 [재정학] 교과서에도
소개되어 있음.
“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사람이 있어야 더럽다는게 알려지지, 더러워도
해야한다라는 사람만 있다면 상황은 더욱 더러워집니다.”
는 허수아비 대립, 허구적 대립임.
더럽다는 것을 알리고 시정을 요구하면서 (voice)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음.
이순재나 문근영 등이 이런 예에 해당할 지는 모르겠음.
exit 만으로는 사회적 효율성을 달성하기 어려움.
exit 도 정보를 주지만 voice에 비해 정보량이 작음.
voice 만으로도 사회적 효율성을 달성하기 어려움.
두 가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시장규율이어야 함.
3. 오해(?)들
주1회 방영 등 대안으로 제시된 것들이 간과하는 것처럼 보이는 가능성, 비용들에 대해 쓸 생각이었으나 시간관계상 생략.
노조 결성도 마찬가지임.
노조 결성에도 비용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얘기를 하고자 함이 아님.
편익과 비용을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는 함께 고민해 보아야 함.
그것이 생각보다 그러 간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할 뿐임.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음.
이런 배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규제-제도를 도입하면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에게도 피해를 주기 십상임.
4. 리버럴
한예슬을 두둔하는 사람이든, 비난하는 사람이든
그녀가 타인, 특히 집단의 이익에 기초해서 행동하기를 바라는 뉘앙스가
많음.
시청자에 대한 책임?
시청자는 한예슬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기에?
다른 사람들의 도덕관을 비웃고자 함이 아님.
리버럴, 개인주의자로서 나의 도덕관을 제시해 볼 뿐임.
경제학은 한예슬이 참고 견디든, 더럽다고 나가고 배상하든 "합리적" 의사결정이라고 평가 또는 전제함.
이것이 경제학 방법론에 내재된 리버럴리즘이라고 볼 수 있음.
그녀 자신이 결정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음.
그것을 존중하고, 그 존중에 기초하여 예측을 시도함.
한국은 자유주의 만세, 시장주의 만세 사회가 절대로 아님.
국민정서법이 자유주의의 공리(axiom)보다 더 강한 사회임…
사정상 엉성하게 끝맺고 나감.
주1
http://147.46.167.195/cyberclass/bd_list.html?boardid=lectureBoard_1552&bdtype=qna&li_no=1552
한 학생이 매우 친절하게 주요 논문을 전부 올려뒀음;;
주2
http://www.daviddfriedman.com/Academic/Efficient_Breach/Efficient_Breach.html
결론 부문 참조
“The first is that, in order to evaluate different damage rules correctly, one must consider their effect on the decision to buy as well as on the decision to breach, since failing to sign a contract is one way of avoiding damages for breaching it. The second is that, once one includes that effect, the case for the general superiority of expectation damages disappears.”
위 법경제학 결론을 계약경제학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participation
constraint binds” 정도가 될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