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슬 사건을 통해 많은 분들이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얘기합니다. 연예인들에 대해서 도덕적인 판단을 할 때면 말도 안되는 '공인' 타령 이외에 솔깃하게 들리는 논리는 내가 그 제품의 소비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 가수 씨디도 샀는데 걔가 그럼 안돼. 내가 그 드라마 애청자인데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그럼 이런 의문이 듭니다.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소비했을 때 그 물건에 대해 그리고 그 물건의 생산자에 대해 갖는 권리는 얼마큼일까요. 그리고 문화를 소비할 때 우리가 정말 사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선 우리는 직접 돈을 내고 물건을 구입합니다. 문화 생산품도 돈을 내고 구입합니다. 영화표를 사서 영화를 봅니다. 돈을 내고 씨디를 삽니다. 우리가 산 물건이 맘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환불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무지 형편없다고 해도 보통 영화 관람료를 환불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씨디의 경우도 가게마다 환불 정책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씨디 자체에 물리적으로 큰문제가 없지 않는 한 환불은 힘듭니다. 환불이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소비한 물건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한계는 여기까지인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우리가 그 상품을 서비스가 위해 지불한 돈 거기까지가 우리가 상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소비한 문화 생산물에 대해 어떠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이게 고작 우리가 갖고 있는 권리의 한계입니다. 우리가 어떤 제품의 소비를 통해서 직접적인 상해를 입지않는 한 제가 아는 어떤 법체계예서도 그리고 어떤 과거의 판례에도 그 이상의 소비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공중파 티비의 경우는 어떤가요. 우리는 사실 (공영방송 시청료가 있기는 하지만) 방송국에 돈 한 푼 내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왜 심지어 어떤 생산자들마저 방송을 한다는 시청자와의 약속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걸까요? 저는 현대 대중문화의 방송과 시청자와의 독특한 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혼동을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방송이 파는것은 무엇일까요? 방송은 프로그램을 파는걸까요? 아닙니다. 사실 방송은 시청자를 팝니다. 시청자를 광고주에게 파는거지요. 물론 방송국이 시청료와 세금으로만 운영되는 진정한 공영방송이라면 이야기는 좀 다르겠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상업방송은 시청자를 광고주들에게 팝니다. 그게 바로 심지어 뉴스까지 시청률에 민감한 이유이죠. 여기서 실제로 권리와 책임이 발생하는 관계는 방송 생산자와 시청자 사이가 아니라 방송 생산자와 광고주 사이입니다. 광고를 하기로 한 그 시간에 방송은 나가야 하고, 재미있어서 시청률이 얼마는 나와야하고.... 이런 것들은 사실 광고주와 제작사와의 약속입니다.
시청자는 그 사이에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제작 관행에서 시청자 입김에 내용도 바뀌고 길이도 바뀌고 하는 일들이 일어나지요. 바로 그 이유때문에 제작사들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하는 것이고 마치 그들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직업적 책임의 대상이 시청자라는 것으로 내면화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사실 시청자의 힘은 그리고 그의 권리는 방송에서 생산된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직접적으로 도출되기 않습니다. 사실 권리와 책임은 제작사와 배우 사이 하청 제작사와 방송국 사이 방송국과 광고주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지 시청자와 배우 혹은 시청자와 제작사 혹은 시청자와 방송국 사이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방송국은 시청률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대해 민감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그들이 시청자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얘기할 뿐이지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우리가 나와 계약으로 혹은 일로 연관되어 있지 않은 옆 사무실의 어떤 직원의 개인적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평가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예인들의 어떤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할 권리는 없습니다. 내가 씨디를 샀거나 영화로운 돈주고 봤으면 나한테 권리는 그 씨디값만큼 그리고 영화표값만큼만 있는겁니다. 그것도 환불 받기 위해서는 극장에 불이났다던가 씨디가 심각한 불량일 때, 아님 내가 돈주고 산 문화 생산물의 내용이 심각하게 자질에서 도저히 보고 들을 수 없을 때뿐일 겁니다. 타블로가 싫으면 타블로 씨디를 안사면 되고, 한예슬이 싫으면 그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지 않으면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아래 스포츠 조선의 촌스런 제목을 비웃으셨지만, 사실 사람들이 연예인들의 일에 반응하는 행태를 보면, 그런 기사 제목이 별로 어색하지 않기도 합니다.
김전일/저도 지금 미국 살고있어요. 환불의 천국이지요. 어쨌든 아무도 내가 산 물건값 이상을 돌려보내는 않지요. 에어컨가격에 그에게 주는 광고료가 포함된게 싫으면 에어컨을 환불받으시는 수 밖에요. 그런 사람이 많으면 그리고 한예슬을 광고로 쓰는 에어컨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더이상 모델로 쓰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