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말한 철학자가 정치를 하는 사회


오늘인가,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오는 새벽이었나. 문득 떠올랐습니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정치를 하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했습니다. 이른바 철인정치.

그런데 궁금하네요. 실제로 역사상 어느 나라에서던 철학자가 정치를 한 적이 있었나요?

여기서 철학자의 범위를 대충이라도 잡아보면, 음, 그저 철학이라는 학사 학위만으론 안 될 거 같아요. (예 : 김영삼)

철학자로 치려면 적어도 철학회활동을 한 사람이어야 할 거 같네요.



아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하이데거가 떠올랐어요.

하이데거가 나치와 연루됐었죠. (나치를 지지했었나요?)

흠, 근데 그 정도로 정치를 했다고 하긴 좀 활동량이나 범위가 적은 거 같은데...



뭐 다른 사례 있나요?

    • 철학이라는 것 자체가 애매모호하다고 생각해서(통치이념이나 기타 것도 범주에 들어간다면야 아주 많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확실한 건 플라톤이 말한 철인정치는 현실상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많죠,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와 현대의 철학자는 또 다를 것 같기도 하고요.
    • 역사상 '(철)학이 정치'에 가장 가까웠던 나라는 조선이라고 합니다.
    • 조선왕은 전부 철인이었죠.
      모든 조선왕은 수십년 동안의 철학 엘리트 교육을 받은 후 왕이 되고
      대개의 경우 당시 궁에서 가장 뛰어난 철학자는 왕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종과 정조를 떠올리면 그렇죠.
      왕이 신하들을 가르치는 '경연'이란 걸 열 정도였구요.
      (이걸 철학회라고 봐도 될 겁니다)
    • '철학자가 통치를 해야 한다'라는 부분이 강조가 되어서 철인통치라고 불리지만 사실 철학자가 통치를 한다는건 플라톤의 국가론의 일부입니다.

      일단 플라톤이 고려한 이상적인 정치 체제는 과두정이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민주주의 정치 체제는 아니었죠. 이게 플라톤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데, 예를 들어 공자나 맹자같은 경우에는 왕이 없는 국가가 성립한다는건 상상도 못했습니다. 하다 못해 노자도 소국과민이니 뭐니 얘기할 때 통치자로서의 왕의 존재를 상정합니다.(이 왕이라는 사람이 하는 짓이 뭐냐하면 그 나라 백성들이 너무 똑똑해지는걸 막는 겁니다) 이런 사상가들 입장에서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건 곧 왕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는데 플라톤은 그가 살던 아테네가 이상적인 형태에 가까운 민주주의 정치체제 사회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그런데 플라톤은 그 자신이 귀족 출신이었고, 엘리트주의자였고, 무엇보다 그의 존경하던 스승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희생양이 되는걸 목격했습니다. (플라톤의 입장에서) 우민들의 오판에 의해 최고의 현인인 소크라테스가 죽는걸 보고 플라톤은 분노했고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신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뢰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죠.

      플라톤의 국가론이 단지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거부하는 것이라서 문제가 있는게 아닙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칩시다. 누가, 어떻게 철학자가 되고 왕이 될까요? 여기서 플라톤 국가론의 무시무시한 점이 나타납니다. 보통의 왕정 국가에서는 왕의 장남 혹은 친족이 왕이 됩니다. 귀족의 아들은 귀족이 되고, 소작농의 아들은 소작농이 되죠. 그런데 '철학자가 왕이 된다'는 내용에서 '왕의 아들이 철학자다'라는게 따라나오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철학자는 길러집니다. 철저한 선별과정과 교육에 의해서요. 그러면 어떻게 철학자가 될만한 싹을 골라낼까요? 귀족의 아들이라고 선택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단 교육을 받다가 소질에 따라 철학자, 군인, 노동자 등의 역할을 하도록 국가 기관에 의해 선별되는 겁니다. 내가 운동선수를 하고 싶다고 운동 선수를 하는게 아니에요. 혹은 내 아이를 정치가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만드는 것도 아니죠.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는 사적인 가족 관계 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자신의 자녀도 자신의 손으로 기를 수 있는게 아닙니다. 모든걸 국가가 관리 감독 통제하죠.

      플라톤 국가론에서는 뭐랄까... 개인은 철저하게 국가를 움직이는 부속품으로서 존재합니다. 군인이나 노동자 계층 뿐 아니라 통치 계급인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에요. 플라톤에게 철학자들은 한 가지 부류일 뿐이죠. 에피스테메를 알고 있는 사람. 동굴밖에 나가 이데아를 보고 온 사람. 이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지혜를 기르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보다는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통치를 하게 될 수 밖에 없다는게 플라톤의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선후관계와 인과관계에서 문제가 있는건데, 철학자가 통치를 해서 이상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플라톤의 입장에서 이상적인 국가가 존재한다면, 그 이상적인 국가에서 통치자는 철학자가 된다는게 맞을 겁니다. 철학자가 덜렁 통치자가 된다고 이상적인 국가가 되는게 아니고요.

      뭐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한가지만 하죠. 플라톤 입장에서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국가가 이상적일 수는 있습니다. 아마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보다 훨씬 더 나은 사회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국가에서는 사회를 어떻게 움직어야 될지, 어떤 방식으로 통치를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 이런건 통치자만 고민을 합니다. 일반 백성들은 고민할 필요 자체가 없어요. 그건 그들의 일이 아니죠. 하지만 만약 저한테 물어본다면, 저더러 그런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플라톤 할아버지 너나 실컷 사세요라고 말할 겁니다. 비록 나중에 일이 잘못되서 그 뒷감당을 하게 되더라도 내가 사는 사회가 어떤 것일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의 일부는 내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에게요. 무엇이 살기 좋은 사회인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몇몇 특정한 사람들의 권한이 아닙니다. 설령 그런 식으로는 결코 이상적인 국가에 이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저는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해요. 플라톤이 생각한 철학자들이 얼마나 잘난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 사람들만 그걸 하는게 과연 의미가 있는 일이겠습니까?
    • 플라톤이 직접 시도한 일이 있죠. 본인이 원해서가 아니라 제자였던 디논이라는 사람이 당시 폭군 디오니시우스가 다스리던 시라쿠사의 총신이 되면서 철인정치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부탁하자 안될 거라고 거절하다가 간청에 못 이겨 간 일이 있다죠. 결과는 철저히 실패해서 디논은 사형당하고 플라톤도 죽을 뻔 하다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탈출했다더라...는 이야기를 버틀란드 러셀이 쓴 철학사에서 읽었던가...가물가물...(하도 오래 전 읽은 거라)

      플라톤도 안될 거라고 했다...가 중요하죠.
    • 우드로우 윌슨이 PhD in history and political science고 고든 브라운이 PhD in History죠^^ PhD in Philosophy로 좁혀보자면 세르비아 수상이었던 Zoran Djindjic가 독일의 콘스탄츠대에서 PhD in Philosophy를 받았었죠.
    • 이승만도 철학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걸로 쿨럭. 물론 전공분야는 국제법이지만

      그렇지만 고대의 철학과 현대의 철학이 같을 수는 없죠. 고대에 행정학이나 조직학이 있지는 않았고 결국 춘추전국시대의 백가들처럼 철학과 현실정치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그걸 철학이라고 한다면 손자나 공자도 철학자였고 정치를 한 것이죠. 플라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지금의 사회와는 다르게 당시는 동서양이 모두 군사국가였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국강병에 부역을 하거나 그것에 맞는 효용에 쓰이려고 학문을 해서 입신양명하는 수단으로서 철학이라면...

      어쩌면 당시의 철학은 국가학이나 통치학에 가까운 학문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 설마 플라톤이 철학회활동 같은 걸 염두에 뒀겠습니까.
    • clutter/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경연은 왕이 배우는 자리입니다. 단 한 명의 왕(정조)만이 신하를 가르쳤구요.
      물론 단순히 배운다기보다는 토론의 장이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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