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블랙, 화이트, 블루, 이런 건 이제 내성이 생겼나 아니면 까망, 하양, 파랑으로 느껴지는 건가 여튼 아무렇지도 않아졌는데. 골든샴페인빛? 골든샤프란빛? 프러시안블루? 스틸블루? 굳이 다른 나라 말 써가며 한국말에 없는 색 표현을 해야 하나 싶어요. 그냥 옅은 금빛, 짙은 푸른빛, 이런 식으로 표현하면 알아먹기도 쉬울텐데. 풍부한 색 표현을 하고싶은 의도는 이해하겠지만 좀 오그라들지 않나요? 아무리 잘 쓴 글도 이런 생소한 외래어 색상 표현들이 나오면 인터넷쇼핑몰의 상품설명이 갑자기 오버랩되더라고요 전.
사실상 언어로 표현하는 색감은 물리적 빛의 스팩트럼을 단계별로 나누는 거랑은 달라요. 일정한 감정적 상태까지 담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러니 일대일 대응 번역이 불가능한 색의 상태 표현을 외국어로 표현한다고 싸잡아 조롱할 건 아니죠. 반대로, 우리말 '누리끼리하다'를 영어로 번역해야 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가장 정확한 번역은 누리끼리하다를 그대로 쓰고 괄호를 달아 부가설명을 다는 겁니다.
아 물론 ally님 말씀처럼 한국어로 존재하고, 느낌까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걸 굳이 외래어 가져다 쓰는 건 오글오글거리죠. 패션잡지 특유의 '허세'에 다름아닌.... (하지만 적으신 것 중 올리브 그린이나 에메랄드 그린은 한국말로 표현하기 좀 애매하긴 하죠.. 올리브 그린은 정말 없는 것 같고(쑥색.과는 다르고) 에메랄드 그린은 옥색? 정도로 해야할까요? 역시 느낌이 안 나긴 하네요.)
올리브그린 - 쑥색; 에머랄드그린 - 짙은옥색;; 뭐 이런식으로 대충 비슷하게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후자로 표현하면 폼이 안나죠. 가오잡기용이라는 혐의에서 100%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결정적 이유는.... 실제 올리브그린이라고 쓰이는 색이 올리브의 그것과 아주 똑같은 색도 아니에요. 에머랄드 그린은 더하구요. 어차피 상징화 시키는 색명칭인데 기왕 쓰는거 외래어(정확히 표현하자면 서양어)가 폼이 나고 멋져 보이고 있어 보이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되려 분명히 대체될 수 있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색들(검정, 하양, 빨강, 파랑, 초록 등)마저 외래어를 쓰는데서 더 오글거리더라구요. 폼생폼사도 유분수지;;; 이러다가 명사는 물론이고 동사와 형용사마저 모조리 외래어로 도배할 기세 (이미 그런 경지에 오른 경우들도 심심찮죠)
디자인이나 미학 등을 외국에서 공부하고 난 뒤, 대중화시키는 과정에서의 관련 계통 종사자들의 태만이죠. 오바하면서 남발해대는 경우들을 보면 겉멋든 것 같아서 저도 우습더군요. 그렇다고 정말 굳이 정확한 색감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기 위하여 쓰려는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업종에 따른 스노비즘 폭발로 보이는 경우도 많아요.
회화과라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것들은 물감색 명칭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준으로 얘기하기 위해 쓰는걸거예요. '세루리안 블루'와 '코발트 블루'와 '울트라 마린'을 한국어로 정확히 번역하기가 힘드니까요. 뭐 한국어 순화운동 그런것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ㅎㅎㅎ 건축현장일 하시는 분들이 일본어 표현쓰는거랑 똑같애요 배운대로 쓰고 통하기 위해 쓰는거예요.ㅎㅎ 그렇지만 패션잡지에서 남발하는건 잘못된것 같아요. 게다가 색 말고도 그냥 어휘같은것도 그대로 영어로 쓰지않나요?ㅎㅎㅎ 몇년후에 자기가 쓴글 읽으면 창피할듯.
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두 스놉 형제의 이야기인 시트콤 프레지어가 생각나네요. 주인공 프레지어가 회색 카펫을 새 걸로 바꾸면서 동생 나일즈와 이야기하는 장면. (9x06)
나일: 새 카펫은 무슨 색이야? 프레지어: 한 단계 진하게 바꿨어. "Harvest Wheat"이야. 나일: 다음 단계 색은 Buff라고 알고 있었는데? 프레지어: 그랬었는데, 그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색이 발견됐거든. 나일: 그러면 이제 "Tofu", "Putty", "Oatmeal", .. 나일&프레지어: "Almond", "Harvest Wheat" 프레지어: 그리고 "Buff"인 거지. 나일: 이거 익숙해지기 힘들겠는 걸.
심심해서 인터넷을 뒤지니 '라임 그린'을 '석회 녹색'이라고도 한다네요. '석회 녹색'이라고 하면 저도 생경하고 듣는 사람도 못 알아들을 단어지요. 뭐 어차피 실제 '라임'이나 '석회'의 색을 알아서 쓰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의 개념이 된 단어니만큼 국어순화운동으로 '석회 녹색'이 널리 퍼질 수도 있겠네요. 뭐 모꼬지나 대동제처럼.
셀룰리언 블루 얘길 들으니 저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에서 미랜다의 대사가 떠오르네요.
“넌 그 스웨터는 단순한 블루 색이 아니란 건 모르나 보구나. 그건 터쿼즈색이 아니라 정확히는 셀룰리언색 이란 거야. 2002년에 오스카 드렌타가 셀룰리언색 가운을 발표했었지. 그 후에 입생 로랑이, 군용 셀룰리언색 자켓을 선보였고. 이후 8명의 디자이너를 통해서 셀룰리언 색이 속속 등장하게 된 거지. 그런 후엔 백화점으로 내려갔고, 끔찍한 캐주얼 코너로 넘어갔지. 그렇지만 그 블루 색은 수많은 재화와 일자릴 창출했어. 좀 웃기지 않니? 패션계와는 상관없다는 네가 사실은 패션계의 사람들이 선택한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 게?”
전 미술전공자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 물감색으로 색상명을 배워서 그런지 외래어 색상명을 사용하는 게 굳이 아는척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이상하게 들리지는 않더라구요. b_b님 말씀처럼 '세루리안 블루', '코발트 블루', '울트라 마린'을 들으면 각각 떠오르는 색상이 다른데 그걸 한국말로 표현할 어휘가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일상생활에서 일부러 저런 말을 남발하는 태도는 스노비쉬한 게 맞겠지만, 꼭 필요한 때에 쓰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데 라임 그린의 라임이 석회를 지칭하는 거였군요. 저는 왜 과일 라임을 생각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