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역사 이야기, 조선이 바뀔 수 있었던 몇 번의 기회,
-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소현세자라는 존재, ...저는 사실 조선의 수 많은 독살설들을 '설'로서만 받아들이는 편이었는데, 소현세자의 죽음은 아래의 구절을 책에서 읽으면서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당시 왕이나 고관대작이었어도 이건 절대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는...(...)
소현세자가 아담 샬에게 보낸 편지는 다음과 같다.
어제 귀하에게 받은 천주상(天主像), 천구의, 천문서와 그 밖의 다른 양학서(洋學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어서 기쁘기 짝이 없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급히 책 두세 권을 통독했는데, 정신 수양과 덕성 함양에 관해서 높고 원대한 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완전히 암흑이라고 할 만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지식의 빛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천주상은 벽 사이에 걸어두었는데, 보는 사람의 마음에 평화를 줄 뿐만 아니라 속세의 티끌을 털어내는 것처럼 감격과 놀라움이 다가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천구상과 서적류가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는데, 제 곁으로 온 것을 꿈에도 기뻐합니다. 우리나라에 유사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백 년이 지나면서 하늘의 운행에 들어맞지 않고 어긋나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진귀한 물품을 얻어 무엇보다 기쁩니다. 저는 고국으로 돌아가면 궁정에서 사용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을 간행해서 식자들에게 반포할 생각입니다. 머지않아 사막 같은 나라가 학문의 전당이 되는 은총을 입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구인의 과학에 힘입게 되어 모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양학서류와 천주상을 고국으로 가져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하지만 저의 나라에서는 아직도 천주교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이단사교(異端邪敎)로 몰려 천주의 존엄을 모독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이 천주상을 귀하에게 돌려보내서 잘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귀하에 대한 의무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진귀하고 기이한 것을 감사의 답례로 드려도 귀하의 은혜와 의리에 비하면 만에 하나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남몰래 근심합니다. 삼가 올립니다.
아담 샬은 소현세자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166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회고록 《역사적 사실(Historica narratio)》을 발행했는데, "얼마 전 소현세자가 우리의 구원자인 하나님과 관련해 천문학과 관련된 유럽의 서적과 다른 복합적인 과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해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책들을 줄 것을 부탁했다. 소현세자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는 지금껏 이런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라고 썼다.
소현세자는 1644년 11월 26일 북경을 떠나 이듬해 1월 18일 서울에 도착했다. 그가 귀국할 때 들여온 서양 문물은 한역서학서와 <여지도> 1가(架), 천주상 1폭 등이었다. 무슨 까닭인지 천주상은 되돌려 주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귀국 후 불과 3개월 만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계획은 영원히 땅에 묻히고 말았다.
- 그리고, http://www.angelhalowiki.com/r1/wiki.php/%EC%86%8C%ED%98%84%EC%84%B8%EC%9E%90
- 역사에 가정은 금물이고, 소현세자 한 사람이 왕이 되어서 개명군주가 되었다고 해도,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역사에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시기가 펼쳐졌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봄직 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싹은 뿌릴 수 있었겠지요,
- 그러고 보니 '추노'에서도 꽤 비중있게 나오는 듯 한데... '추노'를 안 봐서 자세히 이야기 할 거리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