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의 기독교


오바마에게 있어 종교는 그의 대권행보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과제였습니다.

무신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과 다양한 종교를 접할 수 있었던 어린시절의 환경으로 말미암아 오바마는 미국의 '국교' 기독교와 친숙해질 기회가 별로 없었죠.

그는 젊은 시절 사회운동을 하면서 교회가 가진 영향력과 비기독교인으로서의 벽을 실감했습니다.


지역조직운동을 성공적으로 하려면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 유명한 제레마이어 라이트 목사가 있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죠.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의 특징은 한 마디로 '흑인신학'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세상을 억압자와 비억압자로 구분짓고 예수를 비억압자들의 구세주이자 해방자로 인식한다는 겁니다.

마르크스 사상과 흑인민권운동 그리고 전통 기독교의 메시아적 사상이 뒤섞어있죠. 일반적인 교회와 다르게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는 여성의 낙태권, 동성애자의 권리를 옹호하며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슬람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오바마가 대권후보가 된 이후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다녔던 경력은 곧바로 보수 기독교계와 공화당의 일차적인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다행이도 오바마의 경쟁상대였던 매케인은 종교를 정치적 목표달성을 위한 도구로 삼는 것에 거부감을 가진 '점잖은' 보수주의자였습니다.

처음에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옹호하던 오바마도 라이트 목사의 거침없는 화법 - God damn America! - 이 자신의 정치적 앞날에 부담이 될 거라고 판단했는지

오랜 세월 자신의 영적 고향이 되어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오바마는 예수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을 믿기 시작하며 그 스스로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한 뒤로도  언제나 이성의 합리성을 기반으로 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로마서의 애매한 문장 하나가 기독교를 정의할 순 없다.'고 말하는 오바마를 단순한 기독교인으로 얘기하긴 힘들 겁니다.

그는 오히려 오늘날 종교를 자기 취향에 맞게 취사선택하고 소위 '쇼핑'하는 미국 젊은 세대들의 포스트모던한 종교관을 가졌다고 볼 수 있죠.

젊은 시절 정체성의 혼란으로 인한 방황의 시기에서 기독교를 통해 위안을 얻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긴 했지만 오바마에게 있어 종교는 인생의 유일하거나 절대적인 나침반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부시와 정반대되는 점이죠.)


종교의 영향력과 힘을 경험한 오바마는 '트리니티 유나이티드 교회'를 떠난 뒤로도 기독교 자체를 멀리하진 않았습니다. 

그는 심지어 종교를 정치활동의 영역에 끌어들이는 것에 동의하기도 했죠. 다만 비종교인들도 수긍할 수 있도록 종교적 색채를 지우는 과정은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보수기독교계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습니다만... 진보주의자들에게 있어 오바마의 이런 종교관은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면서 엄격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고수하는 민주당의 가치에 대한 위협이기도 했죠.

어쨋든 종교를 아예 언급조차하지 않으려했던 하워드 딘의 선거정책보다는 오바마의 적극적인 종교적 어필이 선거에서의 승리에 도움이 되었으므로 민주당도 점점 종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좌파기독교'의 등장입니다.


무신론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 현실적 필요성으로 기독교에 몸을 담기 시작했고 결국 기독교를 진심으로 믿기 시작한 오바마의 종교적 여정은 참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 양부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거주할 때 부친의 종교를 이어받는 이슬람의 전통으로 오바마의 학생부 종교란에는 이슬람교가 적혀있었죠.

학교에서 이슬람 수업을 듣기도 했던 그가 어린 나이에 이슬람적 종교관을 내면화했는지는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 전까진 알 수 없지만... 그가 이슬람 신자였다는 가정을 세우면

이슬람 신자였기 때문에 미국 기독교계에서는 '죽일놈'이고 훗날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슬람계에서는 진짜로 '죽일놈'이 됩니다. 

재미있게도 얼마 전에 공개된 오사마 빈라덴의 살생부에 오바마가 적혀있긴 했다는군요.





이글을 왜썼냐구요?

전 오바마의 스토리가 재밌습니다. 오바마에게 있어 스토리는, 그리고 그 스토리를 정갈한 말로 표현할 줄 아는 그의 필력 자체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정치적 자산이죠.

취업시장에서도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경쟁력이 있는 요즘... 오바마 나이대의 정치인들 중에서 오바마만큼 재미있는 스토리를 가진 사람이 전세계에 또 있을까요.



    • 외조부모는 종교가 있었나요?
    • GREY/ 외조부모 모두 기독교 신자였습니다만 그리 열렬한 신자는 아니었던 거 같습니다. 오바마의 친부와 양부도 이슬람교도이긴 했지만 그다지 종교적인 사람들이 아니었죠. '후세인'이라는 중간이름을 남겨준 친부는 친모와 마찬가지로 거의 무신론자에 가까웠습니다.
    • 이 글을 보니 오바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오바마에 관한 책을 추천해주실수 있나요?
    • 율피/ 시중에 오바마에 관한 서적은 넘치고 넘칩니다만... 오바마 본인이 직접 쓴 책은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담대한 희망'입니다. 전자는 오바마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후자는 오바마의 정치철학을 담고 있죠. 두 권 모두 추천할 만합니다. 영문판으로 읽어보진 못했는데 미국에서는 낭송하기 좋은 책으로도 뽑혔답니다.
    • 굉장히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오바마는 여러면에서 그야말로 멜팅팟 그 자체네요.
    • 전 가끔 오바마가 너무 빨리 대통령이 된게 아닌가 싶어요.
      금융위기와 전쟁에 자신이 가진 정치적 자산 대부분을 소모할거 같거든요.
      물론 그렇기때문에 당선이 됐고, 그런 종류의 빛을 물려받지 않고 대통령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은...
      그렇게 생각하면 이명박은 운이 여러모로 좋고, 우리나라 다음 대통령은 여러모로 측은해집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무신론자가 대선출마를 하고, 그자체가 화제가 되지않을까 싶어요.
    • 아주 재미나는 글이네요.......
    • 그렇다면 현재 공화당 유력 차기 대선 후보인 Mitt Romney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이 길을 열어준 것일까요 막고 있는 것일까요.
    • 요즘 보기 드물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 제가 그 좌파기독교(?)라 그런지,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해방신학 루트로 기독교를 접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네요.
      (저한테는 비WASP라는 것 자체가 대단하게 느껴지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실 미국 흑인사회에서는 종교라는 게 아주 다양해서 남부같은 곳은 모르겠지만,
      북부쪽에는 이슬람이었다가 유대였다가 불교였다가 기독교가 되었더라라든지
      기독교에서 이슬람이었다 불가지론자가 되었더라라든지 하는 많은 과정을 거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기독교인이지만 오바마가 말한 것처럼
      '로마서의 애매한 문장 하나가 기독교를 정의할 순 없다.'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 잘 읽었습니다. '로마서의 애매한 문장'이란 어떤 구절을 말하는 건가요?
    • 저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덕분에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기네요.
      돌아가신 그분이 계속 계시면서 현재 앞으로의 미래를 같이 지켜봤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도너기 / 동성애가 죄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장이겠죠 아마
      바울은 성경에다 왠만하면 결혼도 안 하는 게 좋다, 여자는 교회에서 입도 뻥긋하지 말라는 등의 얘기도 많이 했는데, 마음대로 골라서 어떤 건 무시하고 어떤 건 강조하면서 이상한 교리를 만드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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