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사람들 이야기.

 

 

1.

집 근처에 맛있는 국숫집이 있어서 종종 저녁을 국수로 해결하곤 합니다.

전 김치와 양파등을 넣고 양념장으로 승부한 비빔 국수보다 양배추, 깻잎,숙주,김가루 등을 넣고 버무린 비빔 국수를 좋아해요.

김치 넣고 비빈 국수는 늘 먹던 김치 맛이 강하게 나는지라 , 새콤달콤 맵지만 지루한 맛이라서 안 좋아하죠.

게다가 김치 넣고 고추장 넣고 새콤달콤하게 비비는 국수라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해먹을 수가 있기 때문에,

국숫집 메뉴로써는 좀 서운한 구석이 있단 생각이에요.

여름이 되니까 그 국숫집에서 직접 갈아 만든 콩국수를 선보이고 있어요.

요즘은 분식집이나 중국집, 심지어는 국수 전문점에서도 콩국을 그냥 받아다 쓰는 경우가 많아서

콩국에 땅콩이나 다른 견과류의 맛이 나는 걸 선호하지 않는 저로서는 그 옛날 흔하던 '직접 맷돌로 갈아 만든 콩국수'에 대한

애착이 있어요. 국숫집 앞에 여름 메뉴 콩국수 개시! 라고 써 놓은 깃발 위에 '맷돌' 글자만 펄럭인다 하면 반색을 하며 들어가게 되죠.

그런데 저희 집 근처에 바로 직접 간 콩국수를 팔고 계시니 그냥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면서 잘 먹고 있답니다.

콩국의 맛은 줄 서서 먹는 여의도의 유명한 콩국수집 맛처럼 진하고 고소한 건 아니지만, 맷돌로 간 콩국도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어요.

그 집은 돈까스도 직접 얼리지 않은 생고기를 계란에 입혀 튀김옷 조금 묻히는 가정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돈까스도 무척 맛있어요.

중국산 음식재료가 범람하고 대량 생산된 납품용 냉동 돈까스,튀김,만두 등이 점령하지 않았던 오래전의 경양식 돈까스 맛이랄까요.

빵으로 드릴까요 라이스로 드릴까요? 묻던 웨이터가 일하고 후식으로는 콜라 사이다 녹차 커피 있습니다 하던 그런 경양식집 돈까스요.

그렇게 돈까스 소스도 직접 만드시고 맛있게 튀겨낸 순살 돈까스가 5000원이라서 갈 때마다 왠지 불안해요.

남는 건 없고 힘들다고 메뉴를 없애시면 어떡하나..... 해서요. 그야말로 이런 걸 기우라고 하는 거겠죠? :-)

 

 

 

2.

그 국숫집에 자주 가게 되니, 국숫집에 오는 손님들 또한 자주 마주치고 있어요.

언젠가 갔을 때 어떤 아주머니가 앉아서 국숫집 사장 부부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그 아주머니 얘기의 주제는 '남편을 잘 다루는 현명한 아내' 에 대한 거였는데.

부부학 개론을 열심히 설파하고 계시더군요. 형식은 부부학 개론이었지만 내용은 아주머니의 남편 다루기 스킬에 관한 자랑이었죠.

남편을 너무 닦달하면 안 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남편이 미안한 게 많아져서

늙었을 때 아내에게 잘하게 된다. 하지만 때리는 건 참으면 안된다. 우리 어머니 왈 한 대라도 손찌검하면 바로 전화해라

당장 이혼시키게. 라고 하셨다......기타 등등.

재밌는 건 그 아주머니의 어머니에 관한 일화였는데 어느 날 남편이 (그 아주머니의 아버지) 노름판에서 집에 들어오자,

조용히 문을 열어주고서 남편이 방에 들어간 뒤 잽싸게 방문을 못으로 다 박아버리고 남편분의 노름 버릇을 고쳤단 얘기였어요.

오늘 그 아주머니께서 남편분과 국수를 드시러 오신 걸 봤습니다.

남편이 열무 국수를 먹겠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추 국수 먹어!"

남편이 또 열무 국수를 먹겠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더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추 국수 먹어!"

남편이 계속해서 열무 국수를 먹고 싶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더 강하고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부추는 몸에 좋잖아 부추로 먹어!!!!"

무척 무안한 얼굴로 더는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부추 국수를 드시던 그 남편분은, 내내 표정이 어둡더라고요.

문득 먹고 싶은 열무 국수 한 그릇을 못 먹는 입장에 놓이는 부부 생활이란 건 과연 뭘까 싶었어요.

물론 저 같은 타인이 그들 부부의 행복 지수를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마는, 어쩐지 알쏭달쏭해졌어요.

그 아주머니께서 생각하시는 남편을 잘 다루는 현명한 아내란 어떤 여자인가.

전 꽤 오래전부터 우리가 그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남편을 잘 다루는 현명한 아내'가, '아내를 잘 다루는 현명한 남편'이 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운이 좋아서 ..... 혹은 좋은 배우자(애인)의 성품을 알아채는 통찰력이 있기에 좋은 이성을 만나는 것으로 생각해오고 있어요. 

내가 뭘 잘해서 그 아름다운 사랑을 받았던 게 아니란 걸 말예요. 

그들은 애초에 누구를 만나도 따뜻한 미소를 변함없이 지어줄 사람들이었단 걸 말이죠.

 

 

 

3.

그렇게 국수를 먹고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을 때 문자 메시지가 왔어요.

최근 회사 후배가 이직하게 돼서 송별회 날짜를 조율 중이거든요.

커피 마시면서 "**씨. 언제가 좋겠어요? 다음 주 금요일 괜찮아요?"라는 문자를 보냈죠.

국내 SKY대학 중의 한 군데를 나와 영문학을 전공한 그 후배께서 재빠르게 답장을 보내셨어요.

"네 괜찮아요 ㅎㅎ 그럼 이직 전까지 유정의 미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할게여 ㅎㅎ"

 

유정의 미...... 유정. 정감있게 회사 생활을 마감하시겠다는 건가? 아님 유정란을 함께 아름답게 나눠먹잔 건가?

역시 맞춤법의 세계는 지식 학벌 성품과 아무 상관관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배, 참 다정하고 됨됨이 좋고 남에게 피해 안 주려는 성정의 친구거든요.

 

아 유정의 미..... 유정의 미를 그녀와 꼭 거두고 말겠어요.

 

 

 

 

 

 

 

 

 

 

 

 

 

    • 모든걸 다 따져서 정한 음식값이니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귀여운 부부네요.
      유종 보다 유정이 좋군요.
    • 3. 음.. 스마트폰의 오타일수도 있지않을까요? 그런실수 가끔 하거든요.. 당황해서 재차 복문을 보낸적도 있기도 하고..
    • '유정의 미'는 오타 아닐까요? ^^; 저도 문자 메세지 보낼 때 오타를 많이 내는지라 조금 찔리네요. ㅎㅎ 그렇다고 그거 오타라고 다시 수정해서 보내는 것도 오버인 것 같아 참을 때가 많거든요. 'ㅓ'와 'ㅗ'는 붙어있는 경우도 많아 오타일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 eque / 네 그럴 수도 있죠. 근데 그분은 요즘 보기 드문 구식 핸드폰 사용자시랍니다. 스타택 리뉴얼로 출시됐던 그 모델..
    • 뭔가 먹는 걸로 이러쿵 저러쿵 하는 건 별로 좋아 보이지가 않아요.
      본인이 아닌 이상 행복지수는 알 수가 없지만요.
      으아...갑자기 콩국수가 확 하고 땡기네요.

      오타는 아주 기초적인 게 아닌 이상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편이에요. 제가 지적받아도 울컥 해서 ㅎㅎㅎ
    • 글 잘 읽었습니다 :^) 재미있는 글은 길어도 금방 읽혀요!
      2번의 남편분은 어떤 병 같은게 있는거 아닐까요?
      당뇨병에 걸린 사람이 단 걸 먹으려 하면 주위사람들이 마구 말리는 것 처럼...
      남편분에게 어떤 병이 있으니 아내분께서 이래저래 강압적으로 챙기는...게 아닐까 하는 쓸대없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꼭 유정의 미 거두시길 >_<
    • 가끔영화 / 유정이 괜찮죠? ㅎㅎ
      솔솔 / 오타라고 수정해서 보내는 거 정말 참 그래요 ㅎㅎ
      천개의혀/ 먹을 거 가지고 강압적으로 권하는 거 좀 그렇죠
      NARI* /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열무국수가 안 맞는 병이 뭐가 있을까요.... 음..
    • 주안 / 웹툰을 전혀 안 보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상세 설명에 감동 중...ㅎㅎ
    • 후배에게 꽃을 선물하세요. 동백꽃이 좋겠네요.
    • 쌩뚱맞지만, 글 깔끔하고 재밌게 잘 쓰시네요.자주 올려주세요. 글 기대할게요.
    • 광화문 일민회관의 돈까스가 경양식 돈까스같다고 생각해서 어머니랑 같이 가서 먹은 적 있어용, 추천하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는 매일 아침 계란찜에다가 혈액 순환에 좋다며 부추를 팍팍 넣어주시는데 사실 저는 좋지 않아요..그치만 건강을 생각해서 주시는 거기에 억지로라도 먹습니다. ㅎㅎ 제 지인 중 한명인 유정양은 배우 추상미와 소녀시대의 최수영양을 섞어놓은 듯한 아름답고 시원시원한 외모를 가졌지요.(순전히 제생각만은 아닌듯요)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나르샤 박효진의 열성팬이래요. 어제 저는 부모님과 외식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공원근처에서 우유판촉행사를 하고 있는걸 보았는데 상품으로 유정란을 (아마도 열다섯개 들어있는거) 보너스로 주더라고용~ 으해해햇~ 글 정말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D 저도 글 기대하겠습니다아! 와우~! 신납니다~!
    • 맞춤법은 학벌에 관계 있는 게 아니라 독서량과 관계가 있죠..
    • 김유정 --> 유려한 문장 -->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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