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본 영화들에 대한 제 짧은 잡담들...
[시더 래피드]
조그만 코미디 영화 [시더 래피드]의 줄거리는 익숙합니다. 평생 자기 동네를 벗어나지 못한 주인공이 처음 동네 밖 세상에 나온다는 설정만 얘기해도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갈 지 능히 짐작되지요. 자신의 고향에서 보험 외판원으로 일하는 주인공 팀 리피는 갑작스러운 일이 생긴 탓에 상사의 지시로 아이오와 주 시더 래패드에서 열리는 컨벤션에 참석합니다. 순박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가 붙임성 좋은 로널드와 요란하지만 사람 좋은 지글러, 그리고 팀이 좋아하게 되는 조안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영화는 소소한 웃음들을 자아냅니다. TV 시리즈 [오피스]에서 주목을 받은 후 최근 [행오버]와 그에 따른 속편으로 더 주가가 오른 에드 헴스는 낯선 세상을 접한 보통 남자로써 든든한 코미디 주연이고, 존 C. 라일리, 앤 헤이시, 그리고 아이제이야 위트락 주니어가 그의 주변에서 각자 만의 개성 있는 코미디 연기를 합니다. (***)
[인시디어스]
막 이사를 온 램버트 가족의 집에 이상한 일들이 생깁니다. 처음엔 사소하게 보였지만 큰아들이 원인 모르게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면서 일이 심각해지지요. 집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같아서 이사를 하지만 여전히 그 음험한 기운이 따라오는 가운데 아들은 깨어나지 않고, 이러니 결국에 가서 초자연현상 전문가가 초빙되고 이 현상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게 밝혀집니다. 그 사연을 듣다 보면 [폴터가이스트]가 절로 연상되게 되는데, 본 영화가 저 너머의 세상으로 빠지는 걸 보는 동안, 특수효과를 요란하게 과시했던 [폴터가이스트]가 괜히 저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들 좋고 분위기 잘 유지했던 영화는 저 너머 세상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적으로 식상해지거든요. 악당 역할을 하는 캐릭터는 직쏘만큼 시시하고 결말은 반전을 위해 작위적으로 밀어붙였다는 티가 납니다. 전반적으로, 감독 제임스 왕은 그의 대표작 [쏘우]보다 덜 불쾌한 괜찮은 호러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운드트랙이 왜 이리 국내 호러 영화 음악만큼이나 무식한지... (**1/2)
[헨리의 범죄]
[헨리의 범죄]는 한 설정의 뒤집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강탈 범죄를 주도하는 주인공이 공법들보다 더 멍텅구리 같다면 어떨까요? 주인공 헨리는 아무것도 모른 가운데 친구들 은행 강도 계획에서 운전사 역할을 맡게 되었고, 체포된 후 경찰 앞에서 입을 다문 덕택에 2년 징역을 받습니다. 톨게이트 직원으로 무의미한 삶을 살아온 그는 거기서 나름대로의 목표를 가지게 되는데, 세상에, 그건 다름 아닌 전번의 그 은행을 터는 것입니다. 그는 공범으로 같이 감방을 쓴 고참 죄수 맥스(제임스 칸)를 끌어들이고, 그와 맥스는 과거 속으로 묻힌 은행과 그 옆 극장 사이에 있는 지하터널을 이용해서 은행을 털기로 합니다. 한데, 문제는 어떻게 극장에 잠입하냐는데... 그건 바로 헨리가 곧 상연될 체호프 연극의 배우로 채용되는 겁니다. 여기서 슬슬 극장과 은행 강도 음모, 그리고 헨리와 상대 여배우 줄리(베라 파미가) 간의 관계 발전 사이의 갈등과 긴장에서 서스펜스와 코미디가 나올 법하지만,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늘어져 있습니다. 이야기 절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계획이 착수될 정도예요. 간간히 재미있는 순간들이 나오긴 하지만, 키아누 리브스가 그 뻣뻣한 얼굴로 체호프 연극에 나오는 것이 셰익스피어 연극에 나오는 것만큼이나 믿겨지지 않는데 어떻하겠습니까. (**)
[산탄총을 든 부랑자]
최근에 국내 개봉된 [마체테]처럼 [산탄총을 든 부랑자]도 영화 [그라인드하우스]에 나왔던 가짜 예고편들 중 하나에 기초를 둔 영화입니다. 화물열차를 집으로 삼아 이리저리 떠돌던 부랑자 영감님이 한 도시에 잠시 머물게 되었는데, 이 도시는 영화 속 악당들이 한 낮에 대놓고 잔인하기 그지없는 깽판들을 치는 동네였습니다. 처음에 그냥 참았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한 영감님께서는 산탄총을 손에 쥐게 되어 그 도시의 무대포 자경단원으로 활약합니다. 한데, 인간 말종이라고 해도 부족할 지경인 악당들도 만만치 않는 막장 캐리커처들이고 덕분에 영화는 상영 시간 내내 끊임없이 신체훼손이 난무합니다. 익스플로이테이션 영화 정신에 충실한 것 이해가 가지만, 계속 자극만 할 따름이나 웃어넘기기 힘들 정도로 불쾌해져 가니까 문제이지요. 그건 그렇고, 룻거 하우어 옹의 연기는 컴백 수준까진 아니어도 이 쓰레기장에서 나름대로 재미 보시는 티가 납니다. (**)
[풍산개]
영화를 보는 동안 저는 이야기 설정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휴전선을 그렇게 잘 넘나드는 걸 잠시나마 믿을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 3시간 안에 평양과 서울 사이를 왕복할 수 있을까요? 그거 말고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풍산개]의 주인공의 능력들에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감독 전재홍은 시치미 뚝 떼면서 영화를 밀고 나갔고 남과 북 사이를 오가는 동안 내내 말이 없는 윤계상도 이야기를 잘 이끌어나가니, 저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설정을 조용히 받아들이면서 흥미롭게 지켜보았습니다. 하지만, 상대역인 김규리는 밋밋한 캐릭터 때문에 낭비되었고, 이야기 후반부 전개의 동력원이 되기엔 두 배우 간의 화학작용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남북관계에 대해 씁쓸하게 웃어대는 후반부에서 의도적이지 않게 웃기는 장면이 나오니 저와 관객들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1/2)
[트랜스포머 3]
본 영화에 대해서 좋은 말은 딱 하나 밖에 할 수 없는데, 그건 본 영화가 전편보다 최악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전편보다 나은 것은 아닙니다. 변신 로봇들은 여전히 대부분 구별할 수 없고(색깔 있는 로봇들 빼면 다들 크고, 못 생긴 금속 덩어리인데, 디셉티콘들은 상대적으로 더 못생겼습니다) 이들의 CGI 액션들은 덩치 큰 물량 공세일 따름이지 별 재미가 없고 이 난장판에서 배우들이나 그들 캐릭터들 이야기는 너무나 사소하고 엉성하고 별 흥미가 안 갑니다. 이러니 제가 작년 봄에 막 돌아다녔던 시카고 시내가 엉망이 되고 시민들이 마구 팍팍 터지는 우울한 광경을 냉담하게 지켜보는 동안 다시 한 번 2009년 여름의 괴로운 경험이 환기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전 2D로 봤는데, 굳이 보고 싶으시다면 2D 버전을 보셔서 돈을 조금이라도 덜 쓰셨으면 합니다. (*1/2)

[무산일기]
[무산일기]의 주인공 승철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입니다. 주민등록번호가 고용주들에게 항상 그가 누군지를 말해주니 좋은 직장을 찾기는 쉽지 않고 남은 건, 나이트클럽 광고지 붙이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일들 밖에 없는데 버는 돈은 적고 매일 힘들기만 합니다. 열심히 살아가보려고 하지만, 사정은 열악해져가고 게다가 같이 사는 이기적인 친구 때문에 일이 더 곤란해지니 그도 흔들려 갑니다. 감독/각본/주연을 맡은 박정범은 담담한 자세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동안 잘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이 흔들려지는 모습에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어느 덧 승철이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하는 절정에 도달하게 되고, 영화는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단지 그의 인생이 좀 더 나아졌다는 것만 보여줄 따름입니다. 결말을 어떻게 여기든 간에, 하나 확실한 건 그는 계속 앞으로 나갈 것이란 겁니다. 그래야만 하거든요. (***1/2)

[두만강]
중국과 북한 국경 근처 조선족 마을에 사는 소년 창호는 곧 있을 축구 시합 때문에 축구 실력이 꽤 있는 정진을 자기 팀에 끌어들이고 싶어 하고 북한에서 몰래 건너오곤 하는 정진은 이를 승낙합니다. 이들 간의 관계는 장률의 [두만강]에서 보여 지는 작은 일들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에서 싸늘하게 보이는 겨울 풍경에 걸맞게 영화는 절제된 자세로 마을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덤덤하게 관조하고, 그러다가 결말에서의 의외의 사건 전개로 인해 갑자기 팍 터져 나오는 감정은 상당한 여운을 남깁니다. (***1/2)

[바니의 버전]
30년 넘게 TV 연속극 제작자로 일해 온 바니의 인생엔 굴곡들이 참 많습니다. 외모가 볼품없어도 여자 복은 있어서 세 번 결혼했지만 모두 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망쳐버렸는데, 특히 마지막 세 번째 아내 미리엄은 그에게 있어서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적어도 그들은 결혼 생활 동안 행복했었고 그 동안 자식들 둘 낳아 잘 키우기도 했지요). 그런가 하면 그는 자신의 친구 실종 사건에서 주요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지요. 늙은 바니가 자신의 인생에서 좋은 순간들과 나쁜 순간들을 차례차례 되돌아보는 동안, 어느 덧 그의 인생의 마지막 장이 시작되고, 이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는 찡해집니다. 폴 자마티는 주인공 바니로써 완벽하고, 미리엄을 맡은 로자먼드 파이크은 따뜻하고, 바니의 아버지를 맡은 더스틴 호프만은 코미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균형 잘 잡힌 조연으로써 훌륭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