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고기와 한국인
방드라디는 많은 한국인들은 개고기 문제를 문화 상대주의와 문화 절대주의의 갈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마 이는 브리짓드 바르도 여사가 개고기 문제를 깠고, 특히나 논술 학원가에서 주입식으로 이를 상대주의,절대주의 논점으로 가르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생각도 안해보고 주입식으로 사고한다는 점에서 참 한국인스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방드라디도 왜 한국인들이 유독 개를 잡는 것에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지는 궁금하더군요. 이는 개의 생명만 소중하게 여겨서일까요? 아니겠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람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국인들은 노비이기 때문에 사람이기보다는 동물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고차원적인 행위는 못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한국인들이 유독 개고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요?
방드라디가 고민을 한 결과 개와 소닭돼지오리는 생명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한국 사회 구조 내에서는 그것들이 차지하는 위치가 달랐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회적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사실에 근거했기에 소닭돼지의 죽음에는 침묵하지만 개의 죽음에 분노하는 한국인들은 멍청하기는 하지는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뭐 우선 한국인들은 소돼지오리닭보다 개를 더 친숙하게 여기는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소돼지오리닭을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는 공간에서 살죠. 그래서 애완동물로 소돼지닭오리보다 개를 더 많이 키우더라고요.
또 여러 대중 문화 속에서 개는 다른 동물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물적인 한국인들이 개를 소돼지오리닭보다 더 친숙한 존재로 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유독 개고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사실 이것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바로 "도축장"의 유무 였습니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개잡는 동영상은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 소돼지오리닭을 잡는 영상은 볼 수 없었습니다. 이는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혼수 상태에 빠진 사람의 병상 앞에서 "귀여운 나의 잠꾸러기"라고 사진 찍어 올리는 족속들이기 때문에 도축장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장소의 사진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방드라디는 도대체 왜 한국에서 소 돼지 닭을 잡는 영상이 없는 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소, 돼지, 닭의 경우 축산 유통에 관련된 법에서 가축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도축장에서 도축을 합니다만, 개는 가축이 아니기 때문에 도축장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도축장 내에서 소돼지닭을 잡는 영상은 너무 잔인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영상이 없다고 그러더군요. 반면에 개는 흔히 길거리에서 도축하기 때문에 도축하는 것을 백정이 아닌 한국인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를 잡는 것에 대해서 한국인들은 강한 반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개가 죽기 싫어서 얼마나 발버둥치는 지를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만약 소돼지닭을 잡는 장면을 한국인들이 볼 수 있게 하면 한국인들은 소돼지닭을 잡는 것에도 그렇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제이미 올리버가 TV에서 수평아리를 청산가리로 죽이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계식으로 사육한 닭과 달걀의 잔혹함을 비판하자 그 후 자연 방목으로 양육된 닭과 달걀의 판매량이 증가했다고 하죠. 한국인들은 이처럼 눈에 잘 안띄이면 사대강이 파헤쳐지는 일이 벌어져도 괜찮지만, 눈에 띄이면 "개고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올리는 사소한 글"에도 짜증을 내는 이상한 동물이죠. 이는 한국인의 본성입니다. 이를 사회 과학에서는 "인지"의 효과라고 그러죠.
즉 한국인들은 유독 개를 다른 동물보다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환경에 처해있으면서도 개를 도살하는 장면을 다른 동물보다 더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개고기가 유독 사회적 문제가 되는 거겠죠. 브리지트 바르도 여사를 제외하더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도대체 방드라디는 이를 통해서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방드라디는 모든 사람이 자기 손으로 죽인 동물만 먹을 수 있도록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윤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자본축적을 목적으로 세워진 "도축장"이라는 공간이 있어서 버튼 하나를 누르면 닭 300마리를 죽이는데 30분 밖에 안걸리고 그 덕분에 고기가 하나의 생명으로 연상되기 보다는 600g에 이만원으로 연상되는 문화는 한국적이기는 하지만 별로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한국인들만이 태어날 뿐입니다.
그러므로 방드라디는 개고기 합법화에 반대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먹는 고기가 고통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도축장이 새로 생기는 데에 반대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운동이 소돼지닭의 도축장 시스템을 해체하는데까지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찬성합니다. 하지만 이는 요원한 일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개고기 합법화에만 반대할 뿐입니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이런 글을 제대로 읽을리가 만무합니다. 한국인들은 트위터보다 긴 글은 멍청해서 못 읽죠. 그래서 한국인들은 애를 낳으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