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런 얘기(일부 내용 삭제)

    사실 요즘 제 신경을 갉작거리는 지점이 일상의 어떤 부분을 타의에 의해 의식하게 만드는 상황들이지요. 다른 사람들은 누군가와 1:1로 점심을 먹어도 상관없는 일들이, 저의 상황이 되면 하나의 주목거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듣고 깨닫고 상당한 피로를 느낍니다. 즐기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여자라는 것을 새삼 실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이 담백하게 먹는 냉면 한 그릇조차도, 내가 누구와 점심을 먹는지 또는 퇴근 후 누구를 만나는지가 어린 여자동료들에게조차 지대한 관심거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진짜 피곤해요. 물론 전혀 내색하지 않고 무심하고 무상하게 지나치지만, 그들에겐 이런 게 왜 신경쓰이는 대목일까 이해가 되지 않고, 일찍이 경험한 여자들 집단 안에서의 은근한 소외나 그룹핑에서 제외되는 씁쓸함을 맛본다는 게 이 나이에도 과히 담담하게 넘길 대목은 아니지만요.

 

    언젠가 글에도 썼듯 저의 여성성은 한 번도 과시된 적 없지만 그렇다고 위축된 적도 없지요. 항간에 떠도는 ‘한국여자론’을 다 뒤엎는, 데이트비용을 전부 다 대가며 물심양면으로 남자를 만난 여자를 꼽자면 단연코 여기 있어요. 어쩌면 저는 남자로 하여금 지갑을 선뜻 열게 만들고, 다 먹고 마시고 난 뒤 살풋 미소 지으며 “잘 먹었어요” 라는 인사로 남녀가 공존하는 시공간적인 비용을 대체할 만큼의 가공할 절대적 미모가 없다는 데서 속으로 한숨짓는 여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여자들에겐 늘 경계의 대상이었고, 남자들에겐 가당치 않는 미지와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있는-_-... 제가 그닥 되고 싶지 않았던, 대놓고 예쁘지는 않은데 에둘러 ‘매력적’ 이라 퉁치는 그런 여자로 자리매김한 게 아닌가 하는 일말의 억울함이 앙금처럼 가라앉았어요.

 

   사실, 제가 진짜 되고 싶었던 건 말 그대로 인형처럼 예쁘고 백치미가 뚝뚝 흐르는 공주과, 한 마디로 “예쁘다!” 라는 말 말고 다른 잡다한 수식어가 필요없는 그런 여자였어요. 이 부분은 지금도 늘 제겐 2%가 아닌 98% 부족한 지점일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썼는데 막상 김태희를 보고 본인조차 무감한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새삼 김태희 미모를 논하자는 건 아니니 논쟁은 삼가주시고... 그러고보니 김희선 정도나 되어야 제가 원하는 필요충분조건일까요. 어쩌면 저는 백치이긴 하나 그것을 승화시켜줄 미모가 안 된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급습이군요.

    • 음...읽으면서, 쿠델카님의 어떤 부분을 보고, 그 부분이 저의 어떤 부분과 유사함을 느껴서(이성의 고백을 받을 만큼 매력있다는 점은 빼고) 선뜻 댓글을 못 달겠어요 ㅎㅎ 다만, 그 여자애들이 내 약속과 주말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하고 재미있어하면서도 결국 비아냥대고 뒷말을 했는지 이해가 확 가네요. 캣우먼 임경선식의 구별법으로 보면 님은 '마성의 여자'
    • 왜 비아냥 대고 뒷말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의 기원은 대학시절 동아리방에서부터 출발이군요. 저는 언제나 여학우들과 여후배들을 진심으로 살뜰히 챙겼는데도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늘 뒤통수 치는 건 후배들,어린 여자애들이긴 했지만;;; 그런데 진짜 그 이유가 뭘까요?
    • 음... 잘은 모르겠는데 여중 여고 여대(?) 대략 8년 정도 트리를 타 보니, 어찌해도 여자들은 모이면 뒷말을 아니 하는 법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저도 여자지만 이해하기 힘들고, 그냥 이해하지 말고 혼자 살기로(?) 맘 먹고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그들의 기억에서 잊혀질 만큼 희미한 존재감을 갖게 되면 뒷말 나올 일도 별로 없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 일종의 열폭 아닐까요. 열등감때문에 깎아내리고 싶어서...
      그들이 못가진 것을 쿠델카님이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신중함이나 지성같은.
      거기다 무뚝뚝한 성품이면 자기들에게 오픈하지 않고 비밀이 많다고 여기고 자기들을 나쁘게 판단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을 것이고요.
    • 원래 살뜰히 챙기는 선배가 후배 얼굴 들여다보지도 않는 선배보다 더 뒷담의 도마에 오르는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이러다가 뭐 바라거나 뒤통수 치는 것 아냐 등의 자의식 과잉 뒷담도 섞어가면서요.
      에아렌딜 님의 댓글처럼 존재감의 문제기도 한 것 같죠.
    •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으시니 저의 개인적인 견해로 대답을 드려 보겠습니다.
      Koudelka님의 글 속에 이미 대답이 나와 있다는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와 1:1로 점심을 먹어도 상관없는 일들이" 이 부분이요.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와 1:1로 점심을 먹는 것에 관해서, 또 다른 사람들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쿠델카님이 1:1로 점심을 드셔서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아니에요. 쿠델카님도 그 다른 사람들 중의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남들의 사건을 가쉽 거리로 얘기하는 것을 특별한 악의 없이 재밌어 하기도 합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자의식이 은연중에 표출되고 설령 그것이 의도된 바 없이 드러나는 것이며 쿠델카님이 극복하고픈 부분이라고 한들, 자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인식하는 사람은 그 다르다고 규정된 군에 해당되는 사람들 눈에는 어떤 거부감을 갖게 하는 거죠. 여자'들'이라는 생각을 좀 둔화시켜 보시면 어떨까요. 그들은 곧 나이며 나는 곧 그들속의 그. 여자이지 않나요. 내가 하는 고민은 그들도 다 하고 있고 내가 아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다는 시선으로 전환하시면 '왜 나만 그들의 고까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좀 사그라들 것 같아요.
    • 존재감이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며 내 일을 완벽에 가깝게 열심히 해내는 게 가장 큰 실력이다, 라는 생각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일까요.
      저는 타인의 그것을 열폭이라 쉽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제가 남들과 썩 다르다는 선민의식으로 자기기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람은 누구나 개별적 존재임에, 제가 진짜로 알고싶은 건 개인들의 지극히 고유한 개별성이지만(물론 이것을 제가 알아야 할 권리도 그들이 말해야 할 의무도 없겠지만), 이외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이 병적으로(?) 적은 저같은 사람은 대다수가 갖는 어떤 집단정서에서는 상당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을요. 어쨌든 제 직장생활에서 직접적으로 접하는 반경이니까요. 저는 도시락을 싸서 여직원들과도 밥을 먹고, 나가서 남직원들과도 밥을 먹습니다. 1:1로 먹기도 하고 다수와 먹기도 합니다. 남자든 여자든 일인이든 다수든 그날그날 제가 밥먹고 싶은 '동료(들)' 은 때마다 다를 수 있고 그들 역시 저와 밥 한 끼 같이 먹는데 흔쾌히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이 누구와 어떻게 밥을 먹든 술을 마시든 그닥 궁금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사심없는 제 입장에선 의아할 밖에요. 예를 들어 점심이지만, 많은 부분 특별한 악의없이, 또는 악의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며 재밌어 할 다른 사람들이 그 거부감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쩌면 늘 그렇게 한결같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요. 결국은 예민한 지점이 서로 다르겠거니 하고 넘어가긴 합니다만.

      본문에서 '다른 사람들이 누군가와 1:1로 점심을 먹어도 상관없는 일들이' 에서, 다른 사람들'은' 으로 고쳤어요. 단지 매끄러운 문맥을 위해서 수정한 건데 어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기를.
    • 제가 자의식 과잉한다고 한 사람은 원글님이 아니라 뒷담을 하는 사람을 두고 한 얘깁니다. 그저 하는대로 하는 사람에게 뒷담하는 애들이 '나한테 뭘 뽑아갈 게 있구나'라고 스스로에게 뭐가 좀 있는 줄 알고 자의식 과잉한다고요.
    • ㅎ ㅎ 자의식 과잉이라 해도 나쁘지 않아요. 저는 타인에 대한 호기심보다 제 자신한테 훨씬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인 건 맞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늘 자기를 숨기고 스스로를 무화시키는 사람들의 자의식이 더 무섭다고 느껴요. ㅎ ㅎ
    • 영화 아고라에서 뭇 남성들에게 대쉬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자신의 관심사는 행성의 궤도 따위였던 히파티아가 생각나네요.
      궤도이탈 하신건 아닌지. :)
    • 아비게일, 설마 제가 주제도 모르고 그 정도라고 말씀은 못드리겠는데, 항상 제 자신의 관심사가 제 자신이었던 점은 맞아요. 이건 궤도밀착 또는 궤도침잠이라 해야 할까요? 제가 이렇다보니 남들도 그런가 싶었는데;; 의외로 많이들 타인의 동선이나 일상에 집착하는 경우를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 오늘 근무(월급도적;;)라 Koudelka님 글에 시의적절(?)한 때에 댓글을 달 수 있어 기쁩니다.
      저도 처음에 본문 읽고 든 생각은 역시 Koudelka님은 마성의 여인네!
      이런 생각이었는데요. ^^;;

      동성들과 어울리는 게 힘든 여성의 특징에 대해 임경선씨가 말해준 게 있어요.
      최근에 들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래요.
      1. 어둡다 - 주로 우울한 게 겉에 많이 드러난 타입.
      2. 4차원 타입 - 이건 너드, 기크 뭐 이런 게 아니라 무슨 생각 하는지 알 수 없다고 여겨지는 타입.
      3. 여성들의 일반적인 관심사에 무관심하며 여자끼리 챙겨주는 일에 관심 없는 타입.
      저는 3번 타입이 더 강화된 독고다이(?) 스타일도 동성과 어울리는 게 쉽지 않은 타입이라고 생각해요.

      Koudelka님은 점심 한끼 뿐이라고 했지만 회사 생활에선 점심 한끼 먹는 시간도 내 시간은 아닙니다.
      아예 혼자 먹는 스탈이라면 모를까 대개 점심은 늘 먹던 사람과 같이 먹으니까요.
      즉 점심 시간은 고정멤버 간의 유대관계(?)를 적립하는 마일리지타임(?)이예요.
      근데 Koudelka님은 멤버(?)가 자타로 매일 바뀌니 엄격히 말하면 자기네 멤버가 아니라고 여긴 거죠.
      그러니 남말 하기 싫어하지 않는 여인네들이 도마 위에 올리기 좋다고 여기는 거죠.
      Koudelka님이 잘못해서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성 간의 미묘한 눈치(?)에 다치지 않으시려면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조금 생각해보셔야 될 겁니다.
      맘 곧게 펴시고 하시던 대로 쭈욱 밀고 나가시거나(원래 내 스타일이야 라고 상대들에게 인식시키거나
      -하지만 뒷말은 계속 있으리란 거) 고정멤버(이게 제일 속 편합니다.)를 만드세요.
      타멤버(?)와 약속을 잡으실 땐 업무에 연계된 거라는 뉘앙스를 풍겨주시던가요.
      왜 내가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지 하는 의구심이 들겠지만 사람들 맘(개성)이 Koudelka님 맘 같지 않다고 여기면
      씁쓸하지만 넘기는데 도움이 되실 거예요.
    • kona, 저는 2와 3을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이긴 한데, 또 조금은 다른 게 저는 관계에 대해 나몰라라 무심한 타입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상황에 따른 배려나 구체적인 기념일 같은 것, 상대방이 원한다면 진지한 대화들에 인색하지 않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는 게 중평이었어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저는 늘 여자들에게 늘 어떤 종류의 경계심을 형성하는 인간일 지 몰라도 제 인간관계에서는 늘 여자들이 우위를 차지하는 형국이랄까. 다만, 가십 위주의 대화들이나 어떻게든 형성되고야 마는 끼리끼리 정서가 저는 너무 불편하고 낯설어서 필요 이상 섞이는 걸 원치않는 것이겠죠. 그나마 점심시간 한 시간마저 저당잡힌 거라면, 저는 그냥 하던대로 할 생각입니다. 도시락을 먹든 나가서 먹든 혼자 먹든 같이 먹든지 제가 내키는대로요. 그 시간에 대단한 친밀감이 있거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어차피 아니고 밥먹고 나면 다들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친목과 결속의 마일리지를 쌓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쓸데없이 사장이나 상사 뒷다마까는 것도 소모적이고 지겹고요. 그럴 바엔 하고싶은대로 하고, 산책삼아 한 바퀴 도는 게 정신건강 몸건강에 훨씬 나아요. 그냥 고집센 사람으로 남죠, 뭐. 그나저나 주말에 출근하셨군요. 덕분에 저는 이렇게 깨알같이 실속있는 댓글을 얻었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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