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영도다리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일화는 영도다리 밑에 사는 19살 소녀입니다. 다리 밑에 산다는 표현을 그대로 믿지는 마시길. 일화가 사는 곳은 다리 근처에 있는 단칸방인데, 상태가 비교적 괜찮습니다. 혼자 사는 방치고는 넓고 그 정도면 경치도 좋아요. 학교 그만두고, 알바나 가족 지원도 없이 혼자 사는 애가 어떻게 그런 방을 얻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의 부동산 사정이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은 건가요.


영화가 시작되면 일화는 아기를 낳습니다. 그리고 일화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요. 아기를 입양보내는 거죠. 그게 최선의 선택인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짐작해보는 거죠. 영화 내내 관객들은 일화의 사정을 짐작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과연 가족은 있나. 학교를 다닐 때엔 과연 누구랑 같이 살았나. 계속 반송되어 오는 편지는 도대체 누구에게 보내는 건가. 이런 것들은 신경이 쓰입니다. 이건 단순히 군데군데 구멍이 빠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일화의 환경은 묘하게 비현실적입니다. 아무리 빈 구멍을 채워도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일화가 그리는 부산 역시 실제 세계라기보다는 상징화된 공간에 가깝습니다. 오로지 양아치와 일진들, 그들의 희생자들만 존재하는 곳이지요. 일화도 아마 몇 개월 전에는 그 먹이사슬의 일부였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아기를 입양시킨 뒤로, 일화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를 분리시킵니다. 일진애들이 사람들을 두들겨패거나 술에 취한 행인이 사고를 당하는 걸 봐도, 일화는 그저 보기만 해요. 그 아이는 그냥 주변 세계에 대해 감정을 느끼지 않아요. 이 무심함은 종종 초현실주의를 넘어 희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노래방의 두 방을 하나로 잡는 롱테이크 장면 같은 건 그냥 자크 타티의 영화에서 따온 것 같은 걸요.


그렇다고 일화가 놀기만 한다는 건 아닙니다. 영화 내내 이 아이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러 돌아다니느라 바빠요. 그리고 친구랑 하는 말을 들어보니 검정고시로 대학교에 갈 생각도 하고 있다는군요. 하지만 그 어느 계획에도 절실함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 애는 여전히 썩 좋은 방에서 머물며 먹을 것 다 먹으면서 사는데, 방세 내놓으라는 주인도, 스토킹하는 빚쟁이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영화 후반에 하는 행동은 거의 어리둥절할 정도입니다. 아이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입양시켜버린 아기를 되찾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아기가 입양된 프랑스로 가버려요. 도대체 무슨 돈으로? 무슨 생각으로? 음, 사실 이 부분은 꿈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영화 전체가 다 꿈일 수도 있겠죠.


결국 이건 장르와 현실과의 균형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수일의 [영도다리]는 철저하게 동아시아 아트하우스 영화의 논리와 스타일에 따라 움직이는 영화입니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모두 약간씩 상징화되어 있고 현실 그 자체보다는 현실에 대한 추상화된 주석에 가깝죠. 우린 처음부터 여기서 현실 세계를 기대해서는 안 되었어요. 하지만 더러운 도시 밑바닥에서 애를 낳아 입양시키고 거기서 홀로 살아보려 알바 자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19살 소녀를 다룬 영화를 만들 때, 현실세계는 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죠. 적어도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어떤 분이 이 영화가 [이리]처럼 보기 힘든 영화가 아니냐고 물어보셨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아니다'입니다. 일차적인 이유는 이미 위에서 설명했지요. 주인공이 그 더러운 세계에서 끝까지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그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어느 정도 안심하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예뻐요. 피사체가 되는 부산시내는 초라하고 더럽지만, 영화에 투영된 결과물은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주연배우 박하선도 예쁘지요. 이 사람은 사극 얼굴이라 현대물에는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어울릴 뿐만 아니라 예쁘더군요. 

 

기타등등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일화에게 한 마디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넌 도대체 제정신이니? 그 동네가 어떤 곳인지 네 눈으로 보고도 거기서 네 아기를 키우고 싶어? 


**1/2

    • 판타지군요. 감독은 무슨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 아트하우스 영화로 잘만들었다고 할 수 있겠군요.
    • 오타 : 그리고 친구랑 하는 말을 '들어보이' 검정고시로

      그 상황 자체가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관객들은 어느 정도 안심하고 영화를 보게 됩니다. <- '어느정도'가 연달아 두번 들어가서 조금 어색하게 읽혀요.

      요즘도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나오네요. 좋다 나쁘다의 의미가 부여 될 문제는 아니지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 들어보이 내가 먼저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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