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곳에서 고요한 마음을 지키는 것은
참다운 고요함이 아니니,
소란한 곳에서 고요함을 지킬 수 있어야
천성의 참다운 경지를 얻으리라.
즐거운 곳에서 즐거운 마음을 지니는 것은
참다운 즐거움이 아니니,
괴로운 곳에서 즐거운 마음을 얻을 수 있어야
마음의 참다운 기미를 보리라.
靜中靜 非眞靜 動處 靜得來 纔是性天之眞境(정중정 비진정 동처 정득래 재시성천지진경)
樂處樂 非眞樂 苦中 樂得來 纔見心體之眞機(낙처락 비진락 고중 락득래 재견심체지진기)
-채근담, 前88-
풀이
고요한 속에서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는 쉬운 일이니 이것은 참 고요함이 아니다.
움직이고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맛볼 줄 알아야 이것이 천성(天性)의 진실경이니
참 고요함이다. "대은(大隱)은 시항(市港)에 숨는다."는 옛말이 있다. 깊은 산골에 숨어
살기는 어렵지 않지만 시끄러운 저자에 숨어 살기는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절간에 앉아서 도를 닦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어지러운 거리에 나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시끄럽고 어려운 고비에 처해 보지 않고는 과연 그 사람이 참고요함을 체득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모른다. 즐거운 자리에서 즐거워하는 것이야 누가 못하겠는가, 이것은 참 즐거움이 아니다.
괴롭고 아픈 속에서 얻는 즐거움만이 마음의 참묘미를 아는 까닭이다. 이것이 참즐거움이다.
'고위락(苦爲樂)'이라는 말이 있다. 괴로움이 따로 있고 즐거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생각 문득 돌리면 괴로움이 그대로 즐거움이 된다는 말이다.
모든 괴로움이 다 즐거움이 되는 멋이 해탈경에 있다.
홍자성 저, 조지훈 역, 『채근담』, 현암사, 1962,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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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과 풀이 모두 지조론을 쓰신 조지훈(1920-1968)님의 것을 썼습니다.
살면서 마음이 괴롭고 번잡할 때마다 꺼내어 읽으면
다소 차분하게 되어 종종 찾게 되는 구절입니다.
채근담(菜根譚)이라는 제목의 유래는 송나라 때 유학자인 왕신민(汪信民)의
"사람이 항상 나물 뿌리를 씹어 먹을 수 있으면 곧 백가지 일을 가히 이루리라."
는 말에 있다고 합니다. 담담한 맛에서 참맛을 느끼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그런 경지가 참 쉽지는 않은 듯 합니다.
푸른 5월의 한가운데 서있군요. 유쾌한 주말 보내세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