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개관 9주년 영화제-헝거[스포일러]

주말에 스티브 매퀸Steve McQueen의 <헝거>를 봤습니다. 스티브 매퀸이라고 하면 다들 잘생긴 영화배우를 생각하시겠지만 이 사람은 1969년생 영국 미술가입니다. 존 레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제가 <노웨어 보이>를 본 이유가 샘 테일러 우드 때문이듯이, IRA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게 없는 제가 <헝거>를 본 것은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궁금증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제인 에어>에서 잘 나온 것은 물론이고 새 엑스맨 영화에서 마그네토이기도 한 파스빈더 때문이기도 합니다.(그러고 보니 감독은 매퀸이고 배우는 파스빈더네요.하하하)

 

1981년 IRA 단식투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번째에서 간수인 로한은 감옥의 일상적인 폭력 때문에 정신적인 고립을 경험하고 결국 IRA의 손에 살해당합니다. 두번째에서 6년형을 선고받은 길렌은 BLANKET/NO WASH 투쟁 중인 감방의 삶에 적응하지만 협상하라는 지도층의 요구에 굴복합니다. 마지막에서 협상이 난항을 보이자 지도자격인 보비 샌즈는 신부와의 토론 끝에 단식에 들어가고 결국 사망합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대부분 파스빈더가 연기한 보비 샌스가 정치범 지위 요구 단식투쟁으로 죽어가는 영화의 후반부를 기억합니다만 저는 새로 감옥에 들어온 길렌이 낯선 환경에 다가가고 간수인 로한이 고립되는 전반부가 오히려 더 와 닿습니다. 아사에 이르는 단식경험이란 거의 상상하기 불가능한 데 비해서, (죄수복을 거부해서) 담요만 두른 추레한 남자들이 배설물을 감방벽에 바르고 구더기가 들끓게 하는 방식으로 감옥의 권위에 저항하면서 의례적으로 구타와 학대를 당하는 환경을 오히려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 사람들이 감옥에 갇힌 죄수인 이상 이들의 저항이 자해의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정말 무섭더군요.  

 

실화인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배경은 아마도 정치적이고 논란이 될 만한 내용이지만 감독/각본가인 매퀸은 이 상황을 아주 차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한 15분짜리 롱테이크인 신부와의 논쟁 장면에서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인 보비의 비장한 결의에 대해 감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현실주의자인 신부의 입장에 서서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저버리는 행동의 어리석음에 대한 한탄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굳이 시간내고 돈내서 이런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전자의 입장이겠지만, 사람이 10명이 죽어나갔는데 끝까지 굽히지 않은 대처를 "테러리스트의 협박이 굴하지 않은 위대한 지도자"로 본 사람도 있을 거고요.

 

의사와 영양학자의 도움을 받아서 실제로 체중을 급감하고 아사자의 모습으로 변신한 파스빈더의 연기와 실제로 단식으로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있겠냐만은 . . .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데 죽으면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도 들거든요. 어렸을 때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멋있게 보였었는데 나이를 먹은 탓인가 봅니다.

    • 일요일에 보겠다. 기대하고 있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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