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공화국(월남) 패망 36주년 뒷북 잡상

1. 우리가 월남이라고 종종 부르는 베트남 공화국은 프랑스와 베트민(일명 월맹)사이에 맺어진 제네바 협정을 무시하고 1955년 북위 17도선 이남의 국민투표를 통해 성립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는 그다지 '민주주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초대 대통령인 응오딘지엠(고딘 디엠)부터가 철저한 독재정치, 족벌정치를 펼쳤고 심히 골룸한 정치와 심히 골룸한 군대덕분에 1963년에 군사 쿠데타로 응오딘지엠이 죽고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이미 베트남은 전쟁통이었습니다.

 

2. 미국이 1964년부터 베트남에서 직접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한 이유 중의 하나는 베트남 공화국(월남)이 너무너무 전쟁을 못해서 입니다.-_-;;

 

3. 베트남 공화국의 많은 장군들은 전쟁보다는 사이공에서 권력을 잡는데 관심이 더 있었습니다. 덕분에 1967년 응우옌반티에우(구엔 반 티우)가 공군 원수 응우옌까오끼(구엔 카오 키)랑 손잡고 정권을 장악할때까지 정치가 상당히 혼란스러웠습니다. 이후에는 응우옌반티에우의 철권통치가 망하는 그날까지 계속되었고(1971년에는 단독으로 대선에 출마합니다) 중간에 밀려난 응우옌까오끼는 틈만나면 권좌를 차지하려고 노리지만 결국 실패하고 마지막에 피난가는 신세가 됩니다.(사이공이 월맹군에 포위된 그 순간까지도 응우옌까오끼는 자기를 대통령으로 세워달라고 미국 관리들에게 청원하고 있었습니다.-_-)  

 

4. 미국은 베트남에서 직접 전쟁을 수행하기는 했는데 북위 17도선 이북에 대해서는 폭격만 가할뿐 실제로 지상군을 진격시키지는 못했습니다.(소규모 '비밀'작전은 했다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국과 소련이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한국전을 넘어 3차대전 수준으로 비화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당시에는 높은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거의 확실한 시나리오였습니다) 

 

5. 우리나라에서 '월남 패망'이야기할때 곧잘 정의구현사제단 수준으로 언급되는 쩐후탄 신부는 사실 응오딘지엠 정권 시절에 친정부 인사로 좀 날리시던 분이었습니다.-_-;;(응오딤지엠 자신이 카톨릭 신자였고 지지층도 대부분 카톨릭 신자였습니다. 덕분에 지엠은 카톨릭 편향 정책을 아주 많이 폈는데 이게 몰락의 원인 중 하나가 됩니다)

 

6. 북쪽보다 우월했다고 일컬어지는 경제는 사실 프랑스 식민통치 이래 계속되어 오던 쌀 수출과 미국 원조 덕분이었습니다. 상당부분의 농촌 지역을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이 장악한 전쟁 중반부터 베트남 공화국은 무려 '쌀 수입국'이 됩니다. 이후 1973년 미군이 완전히 철수하고 원조가 급감하자 경제는 바닥을 찍게 됩니다.(마침 1차 오일쇼크도 터졌군요)  

 

7. 1973년 이후 미국의 원조가 급감하면서 베트남 공화국 군대의 전투력도 같이 급감하게 됩니다. 30여년 뒤의 우리야 '자주국방'을 안했으니 '자력갱생'을 안했으니 베트남 공화국은 너무 편하게 전쟁했으니 어쨌느니 할 수 있지만 갓 식민지 벗어나자마자(사실 프랑스 식민지 벗어나기 이전도 전쟁터였지만) 전국이 전쟁터가 된 나라가 무슨 여력이 있을까요?

 

8. 1975년 3월 탄약과 연료 부족으로 인해서 더이상 전국토를 장악하겠다는 노력을 포기한 티에우는 중부 고원의 군대에게 '재편성'을 지시합니다. 이건 사실상 군대를 철수시켜서 비교적 인구가 밀집되고 경제력이 높은 곳 위주로 방어하겠다는 발상이었는데 문제는 철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서 중간에 대탈주 수준으로 엉망이 되어버린것입니다. 사실 그 무렵에는 이미 중부 고원의 주요도로는 죄대 북베트남군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으니 너무 늦게 철수를 한 셈이죠.(사실 이렇게 하자는 제안은 미국이 추가 원조를 거부한 1974년 12월부터 있었습니다)

 

9. 중부 고원이 무너지고 난 이후에는 베트남 공화국은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일부 장군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어떻게든 수도 사이공과 남부 지역을 방어해보려고 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유일한 희망인 미국마저도 도움을 거절하자 베트남 공화국 의회는 응오딘지엠 정권을 몰락시켰던 쿠데타를 일으킨 즈엉반민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여 북베트남과의 협상을 시도합니다. 티에우는 그전에 사임하고 국외로 탈출했고 그외에 탈출하려는 이들로 미 대사관과 탄손누트 공항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10. 즈엉반민은 북베트남과의 협상 시도를 하지만 보기 좋게 거부당하고 관저에서 포로가 됩니다.(그런데 얼마한가 풀려나와서 나름 잘 지냅니다) 그리고 베트남 공화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1. 1973년 미군이 철수할 무렵에 베트남 공화국에는 정규군(육,해,공군), 지방군(베트남의 지방행정조직은 성省마다 수개 대대씩 편성), 민병대(촌락마다 수십명씩), 국립경찰 등 도합 100만이 넘는 무장병력이 있었고 전쟁수행의 편의를 위해서 각 성의 장은 죄다 현역군인이었고 그밖의 지방관리들도 대부분은 군인이 겸하고 있었습니다.(대한민국으로 치면 도지사-군수-읍장이 죄다 군인이라는 뜻) 물론 군인이 많다는 것과 전쟁을 잘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 재밌게 읽고 갑니다 :D
    • 잘 읽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관련 자료들은 언제봐도 씁쓸하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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