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우리들의 하느님' 책 이야기가 나와서...

제 인생에서 이렇게 중요한 책이 또 있을까 싶어요.

친구 블로그에서 몇 구절 인용된 것을 읽고

작은 관심이 생겨 읽었다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읽었던 책입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보다 전 수필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분의 수필을 읽으면 우리의 현대사와 지금의 우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함석헌에 몰입하면서 받았던 충격 그 이상을 권정생 선생님에게 받았으니...


잘 생기고 똑똑한 소위 뛰어난 사람이었던 함석헌 선생에 비하면

권정정 선생은 작고 병들고 학벌도 보잘 것 없는 뭐 하나 비교할 것이 없는 삶이죠.

예수가 마구갓에서 태어나고 황금으로 치장한 백마가 아닌 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에 삶을 마감한 것은

예수의 이 초라한 삶이 기독교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권정생 선생은 온 삶으로 약하고 병들어 추한 곳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진리를 보여주고 가신 분이죠.


우리들의 하느님에 대한 간단한 소감을 블로그에 적었는데

링크로 올려봅니다. 게시판에 올리기에는 좀 부적절한 것 같아서요.

나의 하느님이 판치는 세상에

우리들의 하느님을 가르쳐주신 분입니다.

http://kojiwon.com/490

    • 제가 이번에 구입한 책보다 늦달님께서 가지고 계신 책 표지가 더 이쁘네요! (이런 내용과는 상관없는 댓글이라니;)
    • 느슨한 독서모임 댓글에서도 썼지만 이런 책은 특히나 현실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잘 읽었다거나 감동했다는 말이 무의미한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늦달님의 경우는 어떠셨는지.. 여쭤봐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요? 전 물질에 완전히 종속된 삶은 살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물질에서 완전히 벗어난 삶은 살 자신이 없는데 그 중간이 어디쯤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중간 어디쯤 정착할 수 있을만한 곳이 있을까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 <우리들의 하느님> 읽고 펑펑 눈물 흘리셨다면 소설 <한티재하늘>이나 <비나리 달이네 집> <몽실언니> 같은 동화를 읽게 되실 적에는 손수건을 미리 여러 장 준비해놓으셔야 하겠는데요. 저는 안 울고 잘 읽다가 책 맨 뒤에 권정생 선생이 마지막으로 적으신 글, 그 통증에 몹시 괴로워하시는 글 중에도 갑자기 그런데 북한, 중동, 아프리카,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떡하지요, 하는 부분 읽으면서 한번 울컥했어요. 그런데 바로 옆 쪽에 신혼여행길에 들르신 최완택 목사님 부부더러 "사모님요, 목사랑 결혼할라카믄 조용기 겉은 사람하고 하시지 와 이런 목사하고 하니껴" 하셨다는 부분 보고서 금세 웃어버렸어요.:-)

      저는 동네 문방구점에 갔다가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집을 보고 사와서 읽는데, 거기 보면 토끼가 나와요. 풀을 뜯어먹으니 맛있고 좋긴 한데 자꾸만 언덕 위의 예쁜 풀과 꽃들이 자기가 먹어감에 따라 사라지니까 마음이 안 좋아진 토끼요. 그래서 풀무꽃풀에게 다가가 내가 살아야하니까 널 먹긴 먹어야 하는데, 그래도 되겠니? 하고 물어요. 그러니 풀무꽃이 바들바들 떨면서 너라면 뭐라고 답하겠냐고, 어차피 먹을 거라면 그렇게 묻지 말고 그냥 먹어버리라고 합니다. 토끼가 차마 먹질 못하고 돌아나오며 이번에는 댕댕이 덩굴을 먹어볼까 그런데 그냥 먹자니 안쓰럽고 미안해서 또 물어보고 싶은데, 물어보면 풀무꽃풀처럼 무서워하고 화를 낼 것 같아 망설이다 그냥 옵니다. 이 토끼가 그래서 바디취나물도 못 먹고, 고수대 나물, 수리취 나물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게 돼요. 배는 고프지만 차마 먹지를 못해 울면서 토끼가 하느님께 묻습니다. 하느님은 무얼 먹고 사시느냐고. 이슬하고 바람, 햇빛 조금이면 된다는 말씀이 들려옵니다. 그러자 토끼가 자기도 이슬, 바람, 햇빛만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빕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해주마고, 그런데 아직은 안 된다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처럼 다른 목숨을 귀하게 생각하는 날이 오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만 하십니다. 그때 토끼 얼굴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지는데, 그게 바로 하느님의 눈물입니다.

      고기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는 어린이들은 동화책에서 가끔 봤는데, 이런 토끼는.. 참, 마음을 건드리지요.
      보리출판사에서 나온 잡지 <개똥이네집> 3월호 뒤쪽에 실린 동화도 그래요. 이렇게 시작하는 동화에요.
      : 철거민들이 살고 있는 천막촌은 너무도 추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네도 똑같이 비닐 보자기로 덮어씌운 시퍼런 천막 안에서 밤마다 오들오들 떨며 지냈습니다. "아버지, 조금만 기다리세요, 한 백만 원만 모으면 사글세 방이라도 한 칸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기다릴 테니 얼른 돈이나 모아 봐라. 어이구, 추워..." 그냥 땅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그 위에 비닐 장판지를 깔아 놓은 방바닥은 바로 누워도 모로 누워도 차고 시리고 떨렸습니다. "아버지, 이리 가까이 오셔서 제게 안기세요." 예수님이 말하자 하나님은 체면 때문에 얼른 그러지 못했습니다. "괜찮다. 나 하나도 안 춥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은 새벽녘에 눈을 떠 보면 어느샌지 성자 예수님께 꼭 붙어 안겨 있는 것이었습니다. 과천댁 할머니는 드러내 놓고 성부 하나님을 윽박질러대었습니다. "그래 예배당 나간 지 벌써 석 달이 지났소. 그동안 얼마나 축복받았소?"

      댓글보고 우실지 몰라서 동화는 이만 적습니다. 저는 이 분이 이렇게 슬픈 동화들을 많이 남겨주고 가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 brunette님께서 올려주신 첫번째 동화 참 예쁘네요.

      현실에서의 저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인간이 이렇게 다른 생명을 먹으며 양분을 섭취하는것도 자연 섭리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그 모습을 지나치게 벗어나려고 하는것도 인간만이 다르다는 오만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변명거리를 마련해두었달까 -_-; 그렇죠. 예쁜 이야기 읽고 이런 댓글이나 다니 좀 재미없긴 하네요. 성격이 좀 이런것 같습니다.

      전 우리들의 하느님을 읽으며 눈물 같은건 생각도 안해본걸보면 이런 부분에서 순수한 사람은 아닌것 같아요.
    • 레옴/ 하지만 우리가 구입한 책은 '개정증보판'이라, 녹색평론에 나중에 실린 권정생 선생 글도 추가로 더 있고, 뒤에 이계삼씨가 적은 추모글도 있고.. (그 조탑리 일직교회 할머님들과 수다떠는 얘기, 즐겁지 않던가요)
      엊저녁 제 문장으로 정리한 남편의 이야기를 남편이 오늘 새벽 다시 읽어보더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자기합리화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해요. 그런 면도 있고 그 책을 읽고나서 제가 받은 느낌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저는 남편의 얘기에 분명 동의하는 면이 있어서 적은 거거든요. 한달에 5만원이면 약간 부족하고 10만원이면 좀 남는다던 분(자, 그 금액한도내에서 가능할 의,식,주를 잠시 떠올려봅시다)-이게, 돈이 없으신 상태에서가 아니라 인세가 연 1억이 들어오고 유산이 13억 정도 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셨음- 을 보면서 부끄러움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각자 사는 자리에서도 그 뜻을 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 레옴/ 저는 첫번째 동화가 예쁘다기보다는 '와, 너무 세다!' 싶었어요. 우리가 육식을 금하자는 정도의 이야기는 어쩌면 쉽게 할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큰 고통이겠지만, 채식은 건강에 이롭기도 하고 또 그 뭐죠, 윤리적 자부심? 그런 것도 좀 주잖아요. 마치 자동차를 포기하고 자전거로 이동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과 좀 비슷하달까요. 그런데 저 동화 속의 토끼는 지금 그 정도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라, 먹힌다는 것, 하나가 살기 위해 다른 하나를 죽여야한다는 거를 고민하잖아요. 결국 아무 것도 먹지 못하구요. 저는 이거 진짜 과격한 동화다 싶었어요. 굉장히 근본주의적이죠. 자동차를 포기하고 자전거를 타는 정도를 넘어서서 지게를 질 수 있겠느냐는 어려운 질문을 저렇게 쉽고 예쁘게(?) 어린이용으로 적어서 감탄하기도 했구요.
      (늦달님, 게시글을 멋대로 독서모임 2차 쯤으로 만들어버려서 죄송해요ㅜㅜ)
    • 부모님이 사다 주시는 동화책이며 어린이 잡지에서 권정생 선생님 동화를 읽고 자랐지만 어렸을 땐 그 생생한 묘사가 좀 부담스럽고 무섭기까지 했어요. 어른이 되어 비로소 와닿는 글인 것 같습니다.
    • 권정생 선생의 작품은 어른을 위한 동화죠.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철학적이지 않나 싶은 면이 많더군요.
    • calmaria,Bigcat/ 제가 어린이였을 적엔 TV에서 이산가족찾기 프로도 가끔 하고, 눈물의 상봉 장면 보면서 울기도 하고, 영화나 드라마도 전쟁이나 가난에 대한 것들이 참 많아서 권정생 선생의 동화를 이물감없이 잘 읽었던 것 같아요. 그래봤자 몽실언니, 점득이네 정도였고 요즘처럼 선생 동화들이 수십가지(90여종 된다고 들었어요)씩 서점에 나와있진 않았지만요. 80년대 후반 혹은 90년대 이후에 나고 자라신 분들이라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으로부터 이런저런 권정생 동화들을 권장받아보셨으려나요. 열두살 난 저희 아이도 요즘은 권정생 동화를 찾아읽진 않아요. 어쩌다 권유받아 읽으면 '아휴, 너무 불쌍하다' 소리해가며 읽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아다치 미쓰루의 야구세계에 빠져있는 아이니까요.
      권정생 동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가 싶기도 한데, 또 보면 취학연령 이전의 아이들, 그러니까 진짜 꼬맹이들은 또 이 분 동화를 곧잘 읽거든요. 몽실언니처럼 글자 많은 거 말고, 유아들도 읽을만한 짧고 쉬운 이야기도 많이 적으셨어요. 그러다가 파워레인저와 도라에몽, 소년탐정 김전일 등의 세계로 진입하면 그 후로 오랫동안 권정생 이야기들에는 눈길을 주지 않죠. 그런데 그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권 선생도 요즘 애들 책 너무 많이 본다면서 당신 생각엔 열흘에 한 권, 일년에 서른 권 정도만 읽으면 좋겠다 하셨어요. 그러고 살다가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낳고 기르면서 잊고지냈던 동화들을 다시 펼쳐들 수도 있구요.
      • 제가 권정생 선생님 동화를 처음 접한 건 80년대 중반 카톨릭 계열 어린이 잡지에서였어요. 몽실언니나 이 무렵 작품에 호기심과 함께 반발감을 느꼈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아동문학에 환상이나 모험을 먼저 기대하던 나이였기 때문인것 같아요. 이해력이 좀 붙고 눈이 넓어진 다음에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미취학 어린이 대상의 동화는 술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 좀 놀랐어요. 좀더 쉬운 작품부터 접할 수 있었더라면 아쉽게 생각합니다…
    • 레옴 / 선택은 각자의 몫이니 누구에게 강요할 수 없겠죠. 다만 권정생 선생님의 영향으로 물신주의에서 제가 벗어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이 또 다른 불화의 원인이기도 하지만요. 저는 감히 가난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없지만, 동경하며 살고 싶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의 수필 동화등 모든 글을 권정생 선생님의 자전적인 내용입니다. 그분의 삶이 그러했기 떄문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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