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댓글의 부담감보다도, 이 책 자체가 딱히 코멘트할 게 없는 책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추천하기 전에 그런 생각을 잠시 했는데(오가는 댓글 너무 없겠다는), 그러다가 이 분 책은 그냥 "잘 읽었습니다." 정도의 댓글 몇 개만 달려도 족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꼭 이 책 아니더라도, 이 분의 여러 동화책 가운데 어떤 거라도 아이나 조카에게 한번쯤 읽어주셨다든가 아니면 어린 시절에 몽실언니 같은 것 읽던 생각이 난다라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구요.
호레이쇼/ 저도 그랬어요. 스콧 니어링이나 간디, 심지어 인디언추장의 편지 같은 것들도 찾아읽으면서 장일순이나 권정생을 몰랐더라구요. 학교 다닐 때,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어릴 때는 관심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시야 밖에 있었던 분들인데.. 요즘 들어서야 읽고 있어요.
네 저도 잘 읽었습니다. 댓글이 늦어진건 아이가 아직 안자기 때문이에요.. ㅜ_ㅜ 할말이 없어서라기보다. 크흐; 사실 저 혼자라면 절대 안읽었을 제목의 책이에요.. 책 처음 소개해주셨을때도 가장 먼저 확인한게 하느님인가 하나님인가 하는 거였구요. ^^; 종교를 갖고있는 분들께 호의적이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종교에 크게 흥미가 있지는 않기 때문에....
67쪽. 예수 최후의 만찬이 제자들에게 포도주는 곧 피며 빵은 살이라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가장 단순하고 체험적인 가르침인데도 제자들은 아무 것도 이해못했다는 얘길 하시잖아요. 빵과 목숨은 하나인데 다른 두 개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이 세상의 평화는 요원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요. 그 부분 읽으면서, '어, 나도 잘 이해가 안 되는데..이 비유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거 아닌가' 싶었는데 책 맨 뒤에 민들레교회 최완택 목사님께서 "사람들이 그이(권정생)을 생각한다면서 제 삶의 양식은 하나도 손 안 대려고 하고.."란 부분을 읽으면서 갑자기 아, 그렇구나 싶더라구요.
예수의 비유는 사실 하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정말 단순하고 명백한 이야기였는데, 제자들이 이해 못했다기보다는 이해하기를 회피했다고나 할까요. 그 얘길 이해한다는 건, 즉 자기 삶의 양식을 어느 정도, 꽤 많이 버리는 걸 뜻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책 읽고나서 그 최후의 만찬 때 예수의 제자들이 된 느낌도 들었어요. 이런 책은 마지막 장 덮으면서 아, 잘 읽었다 하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부류의 책이 아니잖아요.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는 보통사람이다. 우리집에도 두어 번 왔지만 나는 대접 한번하지 못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라는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끝이다.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 죽은 뒤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저 이 책 참 좋아하고, 권정생님의 다른 동화 비나리 달이네 집도 참 좋아해요. 한티재하늘이랑 몽실언니도 눈물 쏙 빼면서 읽었고요. 반가운 책이 독서 모임 책으로 선정돼서 본의 아니게 아는 체 작렬이네요 ^.^ 제가 권정생님 이야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문명 비판이나 생태주의 같은, 사실은 참 큰 얘기를 하시는데 그게 공허하게 들리거나 오만하게 느껴지지 않고, 정말 마음으로 얘기하고 있구나.. 정말 진심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거든요. 이 책에서도 새로 생긴 유기농 가게를 환영하면서도, 이제 옆집 물건 못 팔아줘서 어쩌나, 나 혼자만 좋은 거 누려도 되나 고민하시는 거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사실 운동이나 혁명 같은 거, 머리로 주장하긴 쉽지만 삶은 훨씬 다양한 결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유기농 운동 좋고 해야하지만 그거 한다고 나도 모르게 내 바로 곁에 사람 소외시키게 되면 그건 또 어떤 의미인가, 나야말로 나의 공동체를 업수이 여기는 것은 아닌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하고, 곰곰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제 어머니도 타고 가던 열차가 폭격을 맞아 바로 다음 칸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죽는 걸 보며 피난가셨던, 그런 끔찍한 유년기를 보낸 분이세요. 이북에서 총살당하기 직전의 외할아버지를 외할머니께서 소련군인에게 잔뜩 뇌물 바쳐 어렵사리 빼내어 삼팔선 넘어오신 분이라, 저희 모친 포함해서 외가쪽 모임에 가면 완전 자유총연맹이랍니다. ...제가 이 년 동안 전화 한 통화 안 드리고 거의 의절하다시피 산 적도 있어요. 요즘에서야 아, 우리 엄마가 유년기와 성장기에 전쟁을 겪고 평생 그 그림자를 지니고 사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요즘은 엄마와 잘 지냅니다.
오롤로/ 한티재 하늘 좋아하시는 분 뵈어 반갑네요.^^ 한티재하늘 앞 장에 보면 권정생님이 어머님 얘기하시잖아요. 어머니가 삯바느질 하시면서도 재미난 이야기를 늘 들려주셨고, 산에 가서 나물캐시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고, 그리고 자신은 이 책에서 어머니가 들려주신 그런 이야기들을 적었을 뿐이라구요. 1937년생인 권정생님도 어려운 생을 사셨지만, 그 전 세대 그것도 극빈계층의 여성으로서의 삶이 어떠했겠어요. 그야말로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 괴롭고 고단하고 굶주리는 무력한 인생이었을 거라는 게, 한티재하늘이나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들을 읽기 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이었을 거에요.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끊임없이 권정생 어린이에게 이야기들을 들려주었고, 권정생 어린이는 엄마가 들려준 재미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 이야기들을 잘 품고 있다가 어른이 되어 동화로 소설로 산문으로 남겨서 이렇게 여러 어린이들과 부모들이 읽고 저같은 사람도 읽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그 어머니가 과연 무력한 삶을 산 것인가, 어머니 뿐 아니라 한티재 하늘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힘없는 사람들(태백산맥이나 토지에는 그래도 절반쯤은 지주나 지식인들도 나오는데 한티재 하늘은 등장인물 모두 그야말로 풀뿌리 민초잖아요)이나 우리들의 하느님에도 종종 나오는 조탑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삶이 무의미하고 힘이 없는 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는 그게 상당히 큰 전환점, 아니면 어떤 위안 같은 게 되었어요.
<비나리 달이네 집>이라는 동화책은 아마도 저 유언장의 2번에 나오는 정호경 신부님네 이야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어릴 때는 이 책이 나오지않아서 미처 못 읽고 나이 든 아줌마가 다 되어 읽는데, 그것도 나름 좋네요. 동화책 읽다가 감동받는 것은 어린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인 것도 같아요.
건조한 감상 부터 이야기 해볼께요. 일단은 좋은 글이지만 저에게 조금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부분 이랄까요. 제 생각에는 이분이 믿고있는 하느님이 기독교의 하나님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본인 마음대로 좋을대로 해석한 하나님이란 거요. 이분의 해석 쪽이 훨씬 좋긴 하지만..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은 이분의 해석처럼 좋기만 한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고... 이런식의 해석이 기독교라는 종교의 단점에대해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본인이 기독교라는 틀에 너무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그 사상을 벗어나 있으면서도 그걸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솔직히 조금 들었습니다. 좋은 글에 쓰기엔 많이 건조한 평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ㅜㅡㅜ
그럼에도 기독교에 대해서 비판하신 부분중에 "만약 예수가 이 세상에서 참되게 살지 못하고 참되게 죽지 못했다면,그의 동정녀 탄생이나 죽은 뒤 사흘 만에 부활한 것도 지금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는것도, 모두가 값어치 없는일이다" 하는 부분은 참 와닿고 좋았어요. 기독교 신자들이 이부분에 대해서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비신자로써 와닿는 부분이었어요. 전 제 나름대로의 신을 믿는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본적이 있어서.. 더 이런 부분 - 부활이나 심판같은 형식적인 부분보다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하는게 더 중요하다는 부분 - 이 긍정적으로 느껴졌던것 같습니다.
레옴/ "인간 구원은 하늘의 신이 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 구원은 어디까지나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시고, 이윤복 어린이의 일기보고 "율법의 완성"이라고, 옛날 어머니들이 나무나 바위에 기도드렸던 것만큼 성스러운 게 없다는 분에게 과연 기독교가 무언가 라는 의문이 저도 많이 들었어요. 죽은 후의 천국에 관한 믿음, 성스러운 그 무언가를 향한 믿음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삶으로서의 종교(이런 비유가 가당한지 모르겠는데, 지난번 옴진리교 신자들이 비슷한 동류가 모여 수행을 같이 하는 공동체로서의 종교생활을 했던 것처럼)가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그렇다면 죽은 후의 구원을 이야기하는 게 현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성스러운 것이냐 싶기도 하고, 어쩌면 후자야말로 성스럽고 종교적인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요.
제가 이 책을 읽고 "우와 감동적이다."라고 말하기 힘든것도.. 일단 이렇게 현실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책을 읽으면 내 삶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이 책을 감동적으로, 공감하며, 읽었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현실에서는 여전히 자본과 기술의 꿀물을 쪽쪽 빨아먹으며 살면서 이런 책 한권 읽었다고 마치 내가 이분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삶을 사는것 처럼 일종의 우월감 만을 느끼려하는건아닌가 하는 회의 같은거요. 제가 이책에 거리감을 느꼈다면 이런 부분들 때문인것 같습니다. 좋은 이야기이지만.. 제가 얼마나 이 비슷한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거죠. 그렇다고 제가 자본주의의 삶을 무조건 긍정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지만.. 그 중간 어디쯤엔가 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만해도.. 비싼 메이커 유모차가 좋을까 저렴한 유모차가 좋을까.. 라던가.. 해외여행을 한번 다녀오는건 어떨까.. 비용이 얼마나 들까.. 하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것들을 한참 생각했었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 중간이라는게 있긴한건지.. 사실 제가 엄청나게 세속적인 인간이라 그냥 말만 많고 아무것도 아닌 그런 삶을 살고있는것 같기도합니다.
레옴/ 그렇지요.. 자동자, 자전거, 지게가 상징하는 삶의 가치란 분명하다, 는 부분 읽으면서 나는 자동차의 편의를 모두 취하면서도 자전거가 상징하는 윤리적 지분마저도 악세서리로 달고 사는 인간이란 느낌이.. 들지요. 지게를 질 자신도 없을 뿐더러, 지게 지는 법조차 몰라 부끄러운데..
브루넷 / 어떤 사람을 볼 때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어쨌든 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이해의 가능성이 열리는 어떤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 순간이 바로 그런 순간인 것 같아요. 더 이상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고 바라보는 순간. 세상에는 이름을 남기는 사람보다 남기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많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고 해서 '힘 없는 삶'은 아니라는 걸 새삼, 권정생님의 글에 나오는 수많은 필부들에게서 배워요.
레옴 / 동감이에요. 한껏 들떠서 이 책 좋아한다고 떠들어댔지만 제 일상도 도시의 삶과 싱크로율 99%를 자랑하니까요; 그래서 의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다 까먹고 우적우적 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 가다듬고 돌아보고 멈추고.. 그럴 수 있도록요. 10개 누리고 살던 거 하나라도 줄이고 기꺼이 불편을 감수하는 쪽으로 자신을 자꾸 훈련시켜야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쉽지는 않아요.
레옴/ ..부끄러운데, 이 부분에 대해 제 남편이 한 이야기를 옮겨볼께요. 그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이 비난받았다거나 무안당한 느낌은 아니었대요. 내가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책들은 세상에 많이 있지만, 이 책은 그런 책들과 다르다고, 만약 나중에 고전으로 남게 된다면 바로 그 점 때문일 거라고요. 권정생 선생님은 호레이쇼님 말마따나 우리들 기가 눌릴 정도로 가난하고 겸손하게 사셨지만, 그 분의 뜻이 반드시 그런 외양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하시는 건 아닐 꺼라구요. 지금 당장 귀농을 하거나 권정생 선생님처럼 사는 것, 그 정도로 내 삶의 좌표를 변경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다독일 수 있고 돌아볼 수 있는 점이 참 좋았노라고 그러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오늘은 정말 느슨한 독서모임다웠다고 생각해요. 댓글도 한 스무 개 서른 개 정도면 적당하지 말입니다.^^ 오롤로님 특히 반가웠구요, 게시판에서 이렇게 가끔 얘기나누고 싶습니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