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제인에어' 보고 미술관도 가고 밥도 먹고 고독으로 점철된 하루 일지;
(영화 내용 스포 있어요!)
1. 오늘 진짜 진짜 오랜만에 유유자적 (혼자) 놀다 왔어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적없이 종로로 가서 (종로는 별 생각없이 가도 시간 떼우기가 그만이죠.ㅋ) 광화문 시네큐브 지나다가
끌리는 영화가 있으면 내리자 싶었는데 '네버 렛 미 고'가 보이길래 내렸어요.
그러나 아직 개봉전이길래 제일 먼저 시작하는 영화가 뭔가 하니 '제인 에어'가 있더라구요.
별로 끌리지도 않고 원작도 안 읽어봤고 풍문으로만 엄청 지독한(?) 사랑 이야기라곤 들었는데..하며 그냥 봤어요.
일단 너무 눈이 즐거웠어요. 소품 하나하나 의상 하나하나 너무 이쁘네요.
제가 원작을 잘 몰라서 (무식하지만 대학 시절 영문학 수업때 '폭풍의 언덕'을 강제로 연구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랑 짬뽕되서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아니, 왜 남자주인공이 저렇게 허여멀건하지? 한동안 궁금해했...;)
심지어 전 어릴적에 얼핏 들은 이 소설 내용이 로체스터란 남자가 실은 살인자이고 나중에 집에 불이 나 화상을 입는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허...그런데 막상 밝혀진 반전이 고작 미친 와이프 숨겨둔 거고 (고작은..아닐지도)
얼굴에 화상 입는게 아니라 실명을 하는 거였군요; 으허허;;
하지만 제가 본디 상상하던 잘못된 정보의 내용이 더 스펙타클 했기에 나름 절절한 러브스토리인데 왠지 시시했어요.
스토리가 좀 더 격정적이길 원했는데 아니었던 걸 빼곤 하지만 무척 재미있고, 또 볼만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고 (어린 시절 묘사가 특히 좋았어요) 분위기도 너무나 시적이고 아름다우면서도 다크하구요.
근데 로체스터 역을 맡은 배우 (제가 한때 성이 파스벤더길래 독일 영화감독 파스벤더와 상관있다고 혼자 굳게 믿었던 배우;;)
뭔가 아쉽지 않나요? 제가 원작은 모르지만 뭔가 본성적으로 더 야성적이고 쎈 느낌이 부족했어요. 박력이....섹슈얼리티가...
아님 제가 너무 굶었거나요..사실 격한 만남 후 베드씬을 기대했었다곤.......말 할 수 있습니다.
2. 영화 보고 나서 덕수궁 가서 고독이란 이름의 갑옷을 입고 돌담길도 걷고 고궁도 돌아보고 추상화전 하고 있길래
혼자 다 보고도 시간이 안가서 큐레이터 안내 타임에 맞추어 봤던 그림 한번씩 쭉 다시 훑어주고....
알 수 없는 그림의 의미를 가슴팍에 아로이 새기고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서
상처입은 발바닥의 아픔을 봄날 따스한 바람 (실은 욕나오는 속력의 강풍ㅠ) 에 녹이며
시립미술관에 당도하여 극사실주의 회화전도 보고 왔어요.
극사실주의 회화는 문학에 이어 미술에도 조예가 얕은 저에겐 '얼마나 잘 그렸나 보자' 본격 트집잡기 장르라서
어떤 감상보단...우왕, 잘 그렸다. 이건 좀 그림티가 나는군. 이러면서...보긴 했지만
사진같은 사실속에서 언뜻 언뜻 묻어나는 손떼가 묘한 매력을 주더라구요. 풍경화 같은 경우 멀리서 보면 분명
사진인데 가까이서 보면 조금씩 실선이나 점 하나하나가 그려진 부분을 볼 수 있고. 미술이란 참 감각적인 장르입니다.응?
다시 덕수궁 추상화전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는 원래 추상화 같은 거 누가 갖다붙여주면 예술이고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이라 싫어하는데
오늘 본 전시회는 꽤 좋더라구요. 그림 배치나 해석도 큐레이터 설명으로 한번 더 들으니 아항 싶은 것도 많고
굳이 뜻을 몰라도 그냥 감각적으로 끌리는 작품도 많았어요.
큐레이터 지식킹왕짱 님의 말에 따르면 추상화는 낮설게 보기를 통해 우리 의식의 정형화된 생각을 깨는
새로운 접근법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혼자 볼때는 모래사장으로 보였던 것이 알고보니 헝겊천을 확대한 그림이었고;;
걍 분홍색 덩어리가 그려진 그림은 깨알같은 붓펜으로 한 땀 한 땀 무언가를 그려낸 흔적으로 가득했어요!
오늘 본 그림 중 가장 멋졌던 건

(사진은 찍을 수가 없었기에 인터넷에서 스샤삭!)
공성훈이란 작가의 개 연작 시리즈 (물론 이건 집에 와서 인터넷 서핑으로 한 사실;) 입니다.
그냥 보는 순간 너무 맘에 들었어요. 그림으로는 느껴본 적이 없는 색감.
그런데 쓰다보니깐 고독으로 점철되었다기 보단 오늘 재미있게 논 것 같네요. ㅋㅋ
혼자 이렇게 많은 것을 하며 쏘다닌 건 한 2년만인 것 같아요.
실은 친구에게 바람맞은 분풀이로 악착같이 놀고 왔어요; 하지만 덕분에 혼자 노는 즐거움을 간만에 찾았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