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잡담

* 뭐 했던 얘기들입니다. 아마 특별한 이야기가 더 뜨지 않는 이상 이 주제와 관련해선 마지막 얘기가 되겠죠.

 

 

* 예능을 보는 이유는 순전히 재미때문입니다. 그 재미의 속성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요점은 재미죠.

 

 '나는 가수다'는 다분히 여러가지를 잡기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으로 보입니다. 아이돌천지인 가요계에서 그래도 정말 노래를 잘부르는 가수들에게 무대에 설 기회를 주고, 사람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것만 보여주면 골든타임의 체면이 안설테니 서바이벌을 도입하자, 청중평가단에 의해 몇주에 한번꼴로 투표를 하고 그중에서 7위를 기록한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자. 중간중간 가수들만 나오면 예능맛이 살지 않으니 개그맨들을 매니저로 붙여 재미를 유도하자. 그것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입니다. 문제가 많다고하지만 전 사실 취지 자체는 큰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서바이벌이란 요소는 분명 비판받을 여지가 많은 요소이긴 합니다만, 멀리는 해외 서바이벌프로그램들, 가깝게는 슈스케나 위탄 등을 통해 사람들은 이런 방식에 어느정도 익숙해졌죠.

 

 

* 초반엔 편집이 많이 조잡했지만, 볼만했습니다. 사실 저런 기라성(아..이 표현 오랜만에 쓰는군요)같은 가수들을 한곳에 모아놓는 프로그램이 어디 많겠습니까. 다들 시대를 풍미하거나 지금도 진행중인 가수들이잖아요. 편집에 불만을 가진 시청자들의 의견 역시도 다음 방송에 반영이 되었고요. 몇몇 가수들의 노래가 실시간 검색 순위에 들정도로 일밤의 나는 가수다는 비교적 순탄한 항해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루하고 쓸때없는 장면을 참고 넘기며 나름의 무대를 보여준 가수들 중 누가 떨어질지 생각했고, 기대했습니다. 아, 기대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겠군요. 다만, 호기심이죠. 그리고 결전의 날. 그들은 '협상'을 했습니다.

 

1박2일에도 재도전이나 협상은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의 협상과 1박2일의 협상은 그 종류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프로그램의 근간을 흔들진 않아요. 예를들어,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등을 포함해서 그들중 누구도 '1박'을 하지 않고 빨리 퇴근하겠다는 것으로 협상을 하진 않죠. 그들이 협상하는건 벌칙이나 식사, 잠자리 같은 부수적인 권리였을뿐입니다. 부수적인 권리이기에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이 권리를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고, 이 속에서 또다른 재미를 만들어내죠. 강호동, 이수근과 PD의 협상게임은 다들 짜고치는 고스톱인지 아니면 진짜진짜 리얼인지와는 별개로 소소한 재미를 부여합니다. 아니아니, 요즘은 아예 협상 자체가 하나의 코너인냥 굳어져버렸습니다. 출연진, 제작진, 심지어 시청자들까지도, 이젠 서로 알만큼 알기에 협상이나 '꼼수'같은 것들을 용인할 수 있는거죠.  

 

반면, 나는 가수다가 이번에 처음시도한 재도전 협상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삽질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지난 몇주내내 오만가지 폼이란 폼은 다잡았습니다. 가수들은 처음엔 장난처럼 임하다가도 막상 노래를 부르고, 청중평가단에 예비심사를 받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며 프로그램의 서바이벌 요소에 더욱 더 무게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경향이 짙어질수록, 탈락자가 나올때 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까, 잔인하지만 일부 시청자가 궁금해했던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그맨 매니저를 둔 가수들의 무대와 청중평가단의 판정, 순위의 결정. 이게 전부였죠.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의 실제적인 첫클라이막스부터 자신들의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컨샙을 뒤집어버렸습니다. 지난 몇주간 자기들이 계속 떠들어온 약속을 어떠한 예고와 상의도 없이 정면에서 뒤집은거죠. 그것도 청중들이 없는 자리에서 자기들끼리요. 이소라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유로 뛰쳐나가고(청중 앞이 아니라고 여기에 면죄부가 부여되는건 아닙니다), 다른 출연자(김제동인가요?)와 제작진은 듣도보도 못한 재도전이란 카드로 협상을 하려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중요한 이벤트만을 기다리고 있는 시청자의 기대를 정면에서 부정해버린 것이죠. 그러나, 그럼에도 방송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교체 가수의 모습을 비춰주며 시청자들을 향해 "걱정마세요, 그런일은 없을거에요"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했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시청자들은 김건모가 재도전 카드를 받지 않으리라 생각했을겁니다. 결과에 승복하는 자세. 이런 자세가 아름답다 어쩐다 하지만, 사실 결과에 대한 승복이라는건 그냥 룰을 지키는 것일 뿐이죠. 딱히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 아닙니다. 김건모의 재도전 포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김건모의 안티라서가 아니라 일련의 상황들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좀 더 확고히 다져주는 의미에서의 이벤트라고 여겼을겁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김건모씨는 덥썩 재도전 카드를 물었습니다. 재도전룰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지난 몇주간 시청자들을 향해 탈락되는 가수의 모습을 꼭 보라는 듯한 예고편을 보내준 주제에, '나는 가수다'의 제작진과 출연진들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완벽하게 배신해줬습니다. 결과는? 짜증이었겠죠. 식당에서 주문한 요리가 나오지 않으면 짜증이 납니다. 며칠간 간절히 기다리던 택배에 벽돌한장이 들었다면 그 벽돌로 창문을 부수고 싶어집니다. 협의가 되었어도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면 짜증이 나는 것이 사람인데,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은 잘못된 요리를 하고, 물건대신 벽돌을 집어넣는 일련의 상황과 과정을 모두 여과없이 보여줬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에선, 이런 과정들을 방송으로 만들며 "이게 진짜 리얼이다!"라고 여겼는지도 모르죠.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막말로 생업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않는 일개 주말 버라이어티 방송이 요며칠간 인터넷을 얼마나 달구었는지 보면,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에 기대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제작진의 삽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PD가 교체된다는 얘기가 나오더군요. 어떤분들은 비난하던 사람들이 원하던게 이런거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글쎄요.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사람들이 주말 예능을 보는 이유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방송은 즐거움대신 짜증과 심각함을 안겨줬습니다. 아울러 MBC의 결정은 그 심각함에 좀 더 무게를 주고 있습니다. 삽질을 했다고 하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방송국에 의해 '짤리는' 것은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최근의 일련의 소동과 더불어 PD의 교체까지 패키지로 함께 떠올리겠죠. 그건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 제 생각은 다릅니다.
      예고로 낚고 정작 본방송은 달랐던 프로그램은 늘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이 다 지금처럼 욕을 먹지는 않았죠.
      그리고 탈락자를 구제해주는 건 슈스케와 위탄 모두 다 이미 나왔던 내용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처럼 욕먹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비난은 선전과 다른 내용, 룰을 바꾼 재도전 기회부여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비난의 이유는, 탈락의 결정자가 방청객이었다는 부분 때문입니다. 방청객의 결정을 피디와 스탭이 뒤집었기 때문이죠.
      시청자는 방청객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즉, 피디와 스탭의 재도전 결정은 프로그램을 시청한 사람들의 권한을 침범한 행위로 비춰졌고, 그렇기 때문에 엄청난 비난이 일어난 겁니다.

      그냥 예고와 다른 내용, 룰을 변경한 재도전 기회 부여 때문에 이런 비난이 일어난 거라면, 무난하게 넘어간 기존 다른 프로그램들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 지금까지의 진행이 다 기획에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될줄은 차마 몰랐겠죠.
    • 시러/
      재도전은 여러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슈스케나 위탄같은 서바이벌에도 재도전이 있지만 전 성격이 다소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슈스케나 위탄에서도 출연자들이 갑자기 정색하며 재도전 기회를 달라고 '협상'을 시도하나요? 그렇진 않죠. 말씀하신 것과 같은 청중평가단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고요.

      이번과 같이 그 자리에서 바로 재도전을 결정하는 방법, 몇회차 후의 재도전, 일정 테스트후의 재도전. 개인적으론 두번째, 즉 몇회차가 지난 후 재도전하는 시스템으로 가닥을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 자리에서 PD가 그런제안을 했다면, 시청자 반발이 이렇게 거세진 않았을거라 추측해봅니다.
    • 메피스토/
      방청객들에게 나머지 가수들이 김건모의 재도전 기회를 달라 말하고, 방청객들이 투표를 거쳐 재도전 결정을 내렸다면 지금같은 비난이 있었을리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방청객은 시청자와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방청객의 결정을 피디와 스탭이 월권을 행사해 뒤짚었다는 부분이지, 협상시도가 아닙니다.
      슈스케나 위탄 모두 출연진이 심각한 분위기 조성하고 자기들끼리 회의하고 그랬습니다. 그리곤 몇 명 구제해주고 그랬죠. 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혀, 아무런, 그 어떠한 문제도 없었습니다. 왜? 그건 그네들의 권한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번엔 권한은 방청객(시청자)의 것인데 그 권한이 침해된 점이 가장 큽니다.
      만약 슈스케의 최종 무대 시청자 문자투표 결과를 뒤짚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거나 지금의 사태나 마찬가지인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 시러/
      슈스케나 위탄 모두 합격,탈락 여부를 '통보받은' 출연진이 협상을 요구하며 심각한 분위기를 잡지는 않죠.

      물론 이와는 별개로 님의 방청객=시청자 얘긴 충분히 의미가 있어요. 님의 청중과 시청자의 동일시 얘기까진 아니지만, 청중들이 없는 자리에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린 것이 하나의 원인이란 얘긴 제 본문에도 있고요. 말씀처럼 방청객이 있는 자리에서 재도전 얘길 했고 그 모든 장면이 방송에 나왔다면 이번과 같은 비난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죠.
    • 아메리칸 아이돌도 8시즌부터 시청자가 떨어뜨린 후보를 심사위원이 구제하는 제도를 도입했죠. 물론 생방송 시작전 사전공지했구요.
    • 메피스토/
      방송 상에서 협상이 시도되는 일은 흔합니다. 예능이라곤 하지만 강호동은 툭하면 1박2일에서 협상을 시도합니다. 그게 캐릭터로 자리잡혔을 지경입니다.
      협상을 시도한다고 비난받나요? 아닙니다.
      협상을 누구에게 시도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방청객에게 부탁하는 상황이었다면(그랬으면 그렇게 정색하지도 않았겠죠. 상대가 다르니까요. 김피디야 자신들이 정색해도 되는 상대지만 방청객은 아니죠.) 별 문제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협상의 대상이 권한없는 피디와 스탭이었고, 그 권한없는 피디와 스탭은 자신들의 권한 밖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욕먹는 겁니다.
      슈스케나 위탄에서 누군가 탈락이 결정됐는데, 탈락자 말고 다른 출연진들이 협상을 시도한다고 가정해보세요.
      그게 욕먹을 일일까요? 오히려 경쟁자를 감싼다고 칭찬받을지도 몰라요.

      beluga/
      사전공지 했다면 그건 권한 밖의 일이 아니죠.
    • 동감. 즐겁지 않아요.
    • 시러/
      만일 1박2일이 처음시작하는데, 첫시작부터 출연진들이 우린 1박 못한다, 밤에 집에 가겠다고 정색을 하고 심각한 분위기 잡다가 협상하자고 한다면 그걸 곱게 볼 시청자가 몇이나 될까요. 1박2일은 오래된 프로그램이에요. 이젠 협상이라는 카드가 하나의 재미로 자리잡을 수 있는 요소죠.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본문에서 얘기했다시피 첫 클라이막스에요. 첫탈락회차부터 정색을 하며 협상을 시도하고, (당사자들은 그런 일련의 상황이 방송에 나오는걸 몰랐을지도 모르지만)울며 뛰쳐나가는 장면이 카메라를 통해 나왔죠. 그걸 누가 곱게봐요.

      말씀처럼 청중도 없는 자리였죠. 청중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건 제 본문에서도 얘기하고 있고요.
    • 메피스토/
      만일 1박2일이 처음시작하는데, 첫시작부터 출연진들이 우린 1박 못한다, 밤에 집에 가겠다고 협상을 시도하는데, 그걸 정색하면서가 아니라 부드러운 분위기를 이끌며 농담도 해가며 한다면? 오히려 더 재밌을 수도 있죠.
      정색하고 땡깡부린 이소라의 태도는 저도 유감입니다. 하지만 협상시도 자체가 문제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른 생각이 떠올라 덧붙여봅니다.
      만약 기라성같은 가수 7인을 장기호 등 음악학과 교수나 뮤지컬 감독 등 전문가 집단이 평가를 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김건모가 7위를 했을 때, 그걸 나머지 6인의 가수들이 정색하며 재도전을 허락해달라고 협상을 시도한다면 어떨까요.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비난할까요?
      전 오히려, 전문가 집단과 기라성같은 가수들끼리의 기싸움 양상을 재밌다고 즐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역시 문제는 평가의 주체가 방청객이었다는 부분이라고 여겨집니다.
    • 김어준 총수가 윤도현의 두 시의 데이트 < 에 나와서 한 얘기가 공감가더라구요. 착한 척 하다가 최악의 수를 두었고, 정이란 무엇인가;만 보여주었다는 게..
    • 시러/
      글쎄요. 어떤 프로그램이건 컨셉이나 방향이 있고, 시청자들은 그 컨샙에 맞춰 어떤 그림이 나올지 예상하거나 기대하며 프로그램을 시청합니다. 그리고, 확실한 룰이 있다면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적어도 방송시작 초기 그런 기획목표나 룰을 유지해나가려합니다. 만일 룰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방송이라면 딱히 룰을 지키려 노력할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확실한 방향이 있다면, 그것을 지향하려합니다. 그건 제작자와 시청자간의 암묵적인 약속이기도 하고요. 1박2일은 맴버들이 1박을 하게끔하고, 남격은 뭐든지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도전하게 합니다.

      전문가집단이 평가를 했는데, 첫방송부터 가수들이 정색하며 재도전을 요구한다면? 물론 시청자들은 지금처럼 비난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방청객이 없었으니 '덜'비난했을 수도 있죠. 이건 비난을 받는 요소들 중 하나가 빠졌으니 당연히 비난의 강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생긴것이지 문제가 벌어진 것이 평가의 주체가 방청객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입증하지 못합니다.

      요약하죠. 전 지금 여러가지 요소들 중 협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협상을 통해 룰을 엎으려했던 출연진과 제작진의 태도가 PD교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오게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협상이 어려운 상황이 무엇인지는 본문과 리플에 쭉 언급했습니다. 그 요소엔 말씀하신 '청중(방청객)의 부재'도 있고, '첫클라이막스'이라는 것도 있으며,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거웠다는 것 등이 있죠.
    • 메피스토/
      님은 이런 저런 상황이 겹쳤다고 얘기를 하시는 듯 하군요.
      저는 애초 방청객이 평가단이 아니었다면 지금같은 비난도 피디의 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구요.
      서로 생각이 다른 듯 하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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