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시가 먼저겠죠. 기본적으로 시라는 것은 문자를 전제하지 않는 담화양식입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20세기의 자유시가 출현하기 이전까지 시는 운문과 거의 동의어였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정당한 지적처럼 고대 그리스에는 과학시, 농경시 등 실용적 목적의 글이 운문으로 쓰여지기도 했습니다만.) 그런데 운문이라는 것이 왜 나왔을까요? '암송' 때문입니다. 운문이란 사사조의 율격이든 힙합가사의 라임(각운)이든 자음운이든 결국 어떤 형식적 제약을 통해 쉽게 외울 수 있게 만든 문형입니다. 외워야 했던 이유는 당연히 문자사용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컨대 호메로스가 '맹인'이라는 신화가 수천년 동안 지속되어 왔는데, 장님이 문자해독능력이 있기는 어렵겠죠. 실제로 고대의 음유시인(왕궁에서 서사시를 읊어주던)들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등을 통째로 외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통상적으로는 문자가 없는 사회가 고도의 문명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만, 시라는 것이 그렇데 대단한 고도의 지적노동이 필요한 물건이 아니죠.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야 어마어마한 고도의 문명에서나 나올 수 있는 것이지만 소녀시대의 쥐쥐쥐쥐 같은 노래가사는 개나소나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구술문화에서 노래/운문/시는 핵심적인 지식 전승 도구라고 보면 됩니다. 이쪽으로 관심이 있으시면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02548 로 시작하면 됩니다. 그리고 딱히 이 얘기만 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비슷한 주제의 글을 블로그에 끄적거린 적이 있습니다. http://cherokee.egloos.com/4320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