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잡담끝]See Ya!혜화!!

한달 남짓, 입원을 마치고 오늘 아빠가 퇴원했습니다. 물론, 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고 결핵은 수술을 요하는 병이 아니라길래 우선은 퇴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달 후에 다시 외래를 받으러 오긴 해야하지요. 그래도 퇴원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그동안 서울, 특히 이 혜화에서 많은 생각과 많은 볼 것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변하긴 개뿔. 분위기 타지 말아라. 하는 마음 속의 자책도 들려 옵니다.

처음 격리실에서 엄빠, 나 셋 다 마스크를 끼고 아빠를 만지면 소독액으로 손을 소독했어야 했습니다. 대소변을 갈때에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말도 아니었지요. 그 때에 오만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듀게에는 되도록 밝은 글을 올리려고 했었는데 지금 오니 말해도 될까요.

하루는 새벽에 어떤 소리에 깨어보니, 엄마가 울면서 아빠에게 말하고 있더군요.
-해삼아빠. 그냥 가세요. 우리 힘들게 하지 말고 편하게 가요. 그럼 내가 자식새끼들 잘 키우고 따라 갈테니까 제발 먼저 좀 가요.
이 소릴 듣자마자 저는 등에 불이라도 닿은 것 마냥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오만 욕을 해댔습니다.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그 때엔 그 말이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거든요.

말도 못하고, 굳은 얼굴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빠. 산 송장이란게 저런건가.. 싶기도 하면서 저 역시 3개월 정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빠는 조금씩 나아지셨죠. 밤과 새벽마다 열이 39도를 넘나들며 힘들어하고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볼일을 보시고. 저는 쓴것처럼 굉장히 비관적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일들이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냥 웃으면서 하는 절 보고 간호사님들은 착하다고 하셨지만 칭찬 들을 행동은 아니었지요.

예전에 쓴 시와 같이 정말 가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때엔 헛소리를 하거나 할때엔 모두 과거의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가게를 안한지 오래면서, 손님이 왜 없는거냐.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다. 하시고, 아들의 나이는 아직도 국민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눈물과  한숨에 젓갈처럼 절여진 엄마와 먹지도 못하게 굳어버린 북어같은 아빠 사이에선 난 뭘 해야하나.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은 웃는 거더군요. 나 스스로 즐거워지려 했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듀게에 글을 올리고, 그 글을 엄빠에게도 보여줬습니다. 엄마는 시골 아줌마답게,
-이 공을 어떻게 갚냐...;; 다 죽어가는 니 아방이 뭐라고 이런걸 다...
하셨었죠.

병실을 옮기시고 아빠는 말도 하시고 부축하면 걷기도 하셨습니다. 눈 한쪽이 살짝 마비가 왔지만, 그래도 잘 웃으십니다. 복잡한 생각을 못하셔서 그런지, 마음의 표현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옛날부터 의구심이 들었던 생각이 있었죠. 아빠는 날 그렇게 아끼셨으면서 왜 나에게 그리도 잔혹한 폭력을 행했었나. 날 정말 사랑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제가 하는 말은 다 듣습니다. 제가 하는 심한 농담도 다 웃고, 틈만 나면 아들에게 돈 좀 주라고 하십니다. 뭐 좀 먹이라고 하십니다. 살 빼야 한다고 제가 말하면, `에이!`하시면서 자기 밥마저 내밀며 먹으라고 하십니다. 좀 더 일찍 이랬었다면, 저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ㅎㅎ.....

병실을 나서면서 한장 찍어봤어요. 제 얼굴을 공개하면 -현빈까지 군대간 이 공황상태에서- 큰 파장이 있을거기에 마스크를 썼습니다.

(사진 펑)
아빠 모자는 제가 어제 선물한 뉴발 모자. 빨강을 좋아하는 아빠와 패딩 색을 맞췄습니다.


공항에 가서 아빠가 좋아하는 티라미수를 스타벅스에서 사 드리고, 엄빠를 보냈습니다. 아빠는 말한대로 자꾸 웃으십니다. 저만 보면 정말 바보같이 웃으세요. 엄마가 부축하고 들어가시는데 자꾸 웃으시면서 돌아보셨어요. 뭐라고 말하는데 엄마가 급하다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셔서 제대로 말은 못 들었지만. 서너번 계속 웃으시면서 돌아보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좋은 날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운 적은 2002년 옛 애인이 절 떠날때 이후로 없었는데.ㅋㅋㅋ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노랠 또 들었습니다. 가사대로 자꾸 그 마지막 모습이 눈에 남아서 지워지지가 않아요. 노래들마다 자기에게 어떤 이미지나, 사연이 있겠지요. 이 노랜 앞으로 저에게 공항에서의 웃으며 뒤돌아보던 아빠의 이미지로 각인될 것 같네요. 웃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이쁘고 아름다웠던 거리란 찬사를 하게했던 혜화. 이쁘고 아름다웠던 간호사님들. 잘생겼던 전 주치의 선생님. 이요원같은 새로 온 주치의 선생님. 무너지던 나를 더 무너지게 해서 완전 바닥치고 팔짝 뛰게 했던 혜화 포차.(잊지 않으마 너 이자식.)
다들 안녕. 담 달에 또 보자.

수많은 댓글과 선물로 저와 저의 가족에게 희망을 줬던 듀게여러분들에게도 벅찬 감사를 드립니다.

p.s.아빠의 공항패션. 엄마왈.
'이게 꽃거지네.꽃거지.깔깔깔.'


거지 아닙니다. 우리 아빱니다.
자세히 보면..

자고 있어요.
좋은 꿈 꿔 아빠.
    •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 퇴원 축하드립니다~^^
    • 퇴원 축하드립니다 아버님께서 하루하루 더 건강해지셔서 봄에 꽃구경도 가셨으면 좋겠네요 ^^

      + 빨간색 운동화로 패션에 포인트를 찍으셨군요
    • 게시판을 못와봐서 몰랐는데... 많은일 겪으셨군요.
      퇴원하셔서 다행이에요. 내려가셔서 완쾌하시기를 바랄게요..
      말린해삼님도 계속 웃으시는 일들 있길 빕니다. 웃고계시는거 맞죠?
    • 기다리고 있던 글이 올라왔네요. 퇴원 축하드립니다.
    • 말린해삼님의 아버지의 퇴원을 축하드려요. 고생하셨어요 해삼님. 아이고 해삼님 너무 이뻐요!!!
    • sourcream/감사드립니다.ㅎㅎ
      그냥저냥/그러게요. 죽다살아난 양반이 빨강 코르테즈라니;;
      Remedios /네. 웃고 있습니다.히히히
      달진/저도 기다리고 있었지요.
      기린아/여기서 보네요.ㅋ 근데;;; 제가 이쁘다구요?;;
    • 거봐요 금방 다 같이 웃고 금방 나을거라 했죠. 참 아들 잘 키우셨네요. 잘 생기기까지했음 배 아플뻔 했ㅎㅎㅎ
    • ㅋㅋㅋ 얼굴 말고요 ㅋㅋㅋㅋ 해삼님이 이쁘다고요. 얼굴은 마스크 땜에 평가가 어려워요. 흐흐.
    • 그동안 계속 병원 간병기 보고 있었지만 리플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몰라서 늘 썼다 지웠다 했어요.
      퇴원하셨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정말 정말 축하드려요.
      이제야 이런 얘기도 할수 있다, 하시는 말씀 보니까 슬프고 다행이고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 피노키오/배 아플까봐 마스크를 썼....
      기린아/마스크를 써도 평가따위야.
      멋진징조들/감사드립니다.ㅎ
      폴라포/감사드려요요`용`
    • 굶벗/....알아요.아니,제가 좀 더 나을 수도 있..
    • 와! 정말 축하드려요. ^ㅡ^)/
    • 따뜻하네요. 축하드려요 ^^
    • 퇴원하셨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
      아버님 너무 잘 생기셨어요~
    • 그동안 고생 많으셨겠어요. 오늘이 오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아무튼 좋은 소식! 진심을 담아 축하드립니다. 꼭 쾌차 하실줄 알았어요. 이리 좋은 아드님이 계시니 말이죠.

      축하합니다!!
    • 말린해삼님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님 퇴원 축하드려요.
    • 석 달. 긴 시간이었어요.아버님 퇴원 축하드립니다.^^고생 많으셨네요.
    •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슬쩍 고백하는 건데 성인 남자분이 아버지를 '아빠'라고 하시는 걸 보면 참 좋더라구요. *-_-*
    • 정말 반가운 글이네요, 퇴원 정말정말 축하드려요!
    •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축하축하축^.^!
    •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아빠'께서 더 건강해지시기를 빕니다.^^
    • 퇴원 축하합니다. 따뜻한 글들 그동안 잘 읽었어요 :) 또 다른 소소한 일상사를 들려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 축하드려요. 오늘 완전히 인간사 지겨워져서 집에 들어왔는데...에고...고맙습니다.
    • 퇴원 축하드려요! 앞으로 더욱 건강해지시길!
    • 고생하셨어요:) 축하드려요^ ^

게시판 2012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날짜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462,406 01-31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147,940 12-31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122,151 04-01
130354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10 187 12-31
130353 아바타 3를 보고 유스포 2 192 12-31
130352 [핵바낭] 올해 잉여질 결산 잡담 14 334 12-31
130351 아바타: 불 과 재 보고 왔어요 짤막 소감 6 228 12-31
130350 [영화강추] '척의 일생' 8 249 12-31
130349 흑백요리사 2 8~10회, 싱어게인 4 탑 4 결정 6 285 12-31
130348 Lacombe Lucien(1974) 7 131 12-31
130347 [관리] 25년도 보고 및 신고 관련 정보. 15 324 12-31
130346 Isiah Whitlock Jr. 1954 - 2025 R.I.P. 2 138 12-31
130345 [왓챠바낭] 우편배달부 말고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 잡담입니다 12 267 12-31
130344 [넷플] 말 많고 탈 많은 '대홍수' 드디어 봤습니다 14 453 12-30
130343 [반말주의] 다들 올해 고생 많았어!! 새해 모두 건강하고 복 터지길 바래!! 12 186 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