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블랙스완

 

드디어 봤는데, 보자마자 알 수 없는 한기를 느꼈어요.

아니 영화가 중반 쯤을 넘어서자 내내 그랬던 것 같아요. 평상시엔 먹지도 않는 팝콘과 콜라 때문인지, 어쩌면 극장 난방기가 고장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가 끝나자마자 차를 몰고 가까운 레스토랑에 가서 뜨끈뜨끈한 파스타를 시켜 허겁지겁 접시를 비우고 나니 그때서야 이것이 허기였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상했던 건 약간의 허기는 언제나 영화에 몰입하고 싶은 나의 의지였고, 그것은 언제나 성공적이었거든요.

조금의 나태와 방만도 허락하지 않고, 영화의 spirit과 만나고 싶은 예민한 관객의 무기였어요.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영화를 버텨내기에 그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영화가 암전되면서 알았어요.

탈진. 전 말그대로 탈진 상태였던 거예요.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리니 연한 두통이 몰려왔어요. 그리고 대화가 시작되었죠.

 

-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 게다가 태생적 결핍을 안고 있는 존재, 그러므로 인생은 그것을 인정하거나 극복하는 과정, 그러나 자신의 경계를 뛰어넘기란 어쩌면 불가능한 여정, 그래서 궁지에 몰린 인간이 선택하게 되는 것은 광기 혹은 죽음.. 결국 평범한 인간은 생긴대로 혹은 주어진대로 살아간다. 때로 인간들 중 아주 자아가 강한 몇몇은 완벽해지기 위해 미치거나 죽어버린다 등등.

 

동행도 저도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산발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므로 이 내용들간의 인과는 그다지 좋지 않아요.

하지만 분명한 건 인간은 이상과 현실사이에 존재하고,

그 사이의 간극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욕망하고, 좌절하다가 종국엔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라는 거죠.

블랙스완은 이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굉장히 신경질적이고, 자극적이고, 강렬하게 보여주는 영화예요.

이 영화의 화법이 그대로 전달되어 육체적, 정신적 공황상태를 잠시나마 경험했다면 저는 영화와 완벽하게 소통한 걸까요?

이건 분명.. 카타르시스군요. 멋진 영화예요.

정말 오랜만에 멋진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

 

 

p.s. 영화와 감독과 배우, 음악 얘기는 다른 분들이 너무나 자세히 해주셨으므로 저는 간단한 소감만 적었습니다.

 

    • 전 이 영화를 세 번 봤는데 두 번째 볼 때부터는 특정 장면에서 눈물이 나더군요.
    • 전 눈물흘릴 틈도 없이 이 영화의 속도에 끌려갔어요. 그냥 마지막 무대에서 물리적으로 가슴이 아팠어요. 영화를 다시 보면 제게도 여유가 좀 생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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