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만성고질 우울증 덩어리의 얼렁뚱땅 극복 잡담
제 우울증의 뿌리는 초1인가 부터인가 시작됩니다.
타고난 우울증인지 후천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골목대장 일진이었다는
어른들의 회고담 -_-; 을 고려해본건데 아마도 후천적인게 아닐까 싶어요.
초등학교 진학 직전 부모님께서 이사를 감행하시는 바람에 어린나이에 겹겹으로 큰 환경변화를 겪게 되었고
그만 본의 아니게 외톨이가 되어 초1부터 초6까지 보내게 되버립니다.
초1에서 강제적 외톨이가 되었던게 그냥 성격으로 굳혀 지면서 초6까지 주욱 관성으로 나가버린거 같아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여러사람 앞에서면 눈에 보이는게 없고 말도 더듬고
하지만 혼자 하는 거라면 굉장히 신나서 잘했어요. 공부하기, 독서하기, 그림 그리기, 서울시내 마구 돌아다니기
이 성격이 그냥 대학까지 주욱 가다가 대학에서 조금씩 강제적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됩니다.
(내성적 성격과 고립과 아웃사이더적 성향을 바꾸라는 외부의 작용, 자극이 강하였다는 의미)
그런데 제가 대학 다녔던 시절에는 두 개의 세계가 병존하는 시대였죠.
낭만이 흘러 넘치는 캠퍼스와 지랄탄이 난무하는 교정이라는 두 개의 세계요.
그 갈등이 어느정도였는지는 내과의사가 제 위를 들여다 보더니 "당신 뭐하는 사람인가요? 학생 맞아요?"
했을 정도의 중증 신경성위염 환자가 되었다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암튼 그렇게 더욱 악화된 우울증은 결혼후에도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주기적으로 밀려오는 (두 달에 한번, 상태가 좋으면 일년에 두 세번) 우울증으로 직장생활도 기복이 심해서
저에 대한 신뢰가 강하였던 보스가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선배들의 눈밖에 나버려서 진즉에 쫓겨날 처지였을 정도였구요.
그러던 어느날
아마도 8년차 정도 되었을 때였던거 같습니다.
주로 보스 직속의 기획지원부 보직과 프로젝트매니저를 겸하였는데 제 경우는 고정적인 팀이 아닌 프로젝트마다 적절한 인원구성을
임의로 하는 식이어서 고정된 스태프가 없었다가 기획지원부일이 늘어나면서 드디어~ 두 명의스태프가 생겼는데....
바로 이 스태프 두 명이 제 우울증 개선의 열쇠가 됩니다.
저와는 아주 많이 다른 성격, 성향의 후배들이였는데
밝고, 긍정적이며 낙천적이었어요. 우울증? 그거 먹는건가요? 우걱 우걱~ 이라고나 할까요.
늦은 시간에 함께 작업을 하면 음악을 틀게 되는데
제가 주로 듣던 음악을 틀면
"아니 어디서 그런 칙칙한 노래들만 찾아 갖고 듣고 있어요? 아우~"
이런 핀잔을 듣기 일수였죠.
긍정적이지만 결코 철딱서니가 없는 그런게 아니라 삶의 습관이 그렇게 베어 있는 사람들 있자나요.
그 후배들이 그런 유형이었죠.
그 이후 회사를 나오기전까지 1년 남짓한 기간동안 그 들과 일을 함께 하면서 저도 모르게 물들어 가더군요.
루이암스트롱(만) 듣던 사람이 오프스프링과 그린데이를 듣거나 이소라(만) 듣던 사람이 롤러코스터를 듣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단지 음악에서만이 아니구요.
그 후배들과는 10년이 넘도록 연락을 하고 지냅니다. 둘 다 결혼도 하고 애 딸린 아줌마들이 되었지만 말이죠.
여전히 그 후배들은 당시의 제 직책으로 저를 부르고 저와 같이 일했던 시간이 한국에서 일했던 시간 중에 가장 행복했었다고
말해요. 정말 기쁘죠 :) - 둘 모두 현재 해외 거주중입니다.
아하....
그 뒤로 가급적 긍정적인 사람, 밝은 에너지가 넘처나는 사람을 의식적으로 가까이 하게 되더군요.
그런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자연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덕분인지 아닌지 이제는 우울증도 아주 가끔 가물에 콩 나듯이 오고 와도 하루 이틀 지나면 사라집니다.
그 후배들이 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아주 조그만 치유의 나침반 노릇을 하고 있는거 같아요.
흔들리고 가라 앉을때마다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역할이죠.
그런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