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오이디푸스, 완벽한 비극을 보여주다
0.
연극 오이디푸스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시물입니다.
혹시 예약하신 분이라면 절대 읽지 말 것을 당부드립니다;
1.
저는 사정상 공연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했습니다.
일단 현재 신분에서 제가 금전적 여유가 안 되는 것도 사실이고
주위에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어떤 물꼬랄까, 시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점도 있습니다.
제 첫 연극은 1, 2년 전에 보았던 오래된 아이라는 호러 연극이었습니다.
그걸 어머니랑 봤었는데 아주아주 무서웠어요.
내 옆에 귀신 역한 배우가 서있으면 나 진짜 기절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도 생각하면 덜덜;
어떤 공포 영화보다 무서웠어요.
그 때 연극이란 게, 영화보다 더 실감이 나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을 느끼긴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앞에서 본다는 것 자체도 아주 신이 나긴 했죠.
그렇지만 그 때의 감상은 거기에서 끝이었습니다.
제 두 번째 연극의 기회는 제 친구 중에 연기를 하고 싶어하는 A양이 주었습니다.
A양은 제 가장 친한 친구죠.
그 친구가 어떤 곳에 어떤 기회로 들어가 연극 준비를 한다는 걸 들었을 때는
신기하기도 했고, 동시에 그리 기대를 하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건 A양이 제 입에서 직접 듣는다 해도 섭섭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찌 되었든 연극을 한다 하더군요.
대학로에서, 관람료는 무료로.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내 친구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거얌? 와~~
이 정도였죠.
아주 작은 소극장의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연극의 시나리오는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지루하고 진부하고, 친구인 A양도 연기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없고 뭔 말인지도 모르겠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상하게 너무나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앞에 나와서 연기를 하고,
소리 지르고,
관객을 웃기게 하고,
계획되어진 동선이 연기되는 것은 확실히 화면으로 보는 것과 엄청난 차이가 있더군요.
연극쪽이 훨씬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 연극을 다 보고 친구한테 너무 재미있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하니까
친구가 약간 의외로 생각하는 것 같긴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어쩌면 연극을 하는 당사자보다 더 들떴던 것 같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연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멋있어보였어요.
제 친구조차 느낌이 달라 보였습니다.
제 친구 연기는 처음하는 것치곤 괜찮았습니다.
화내는 걸 특히 잘하더군요 하하.
어색한 부분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만 뭐 처음이니까요.
2.
그래서 듀게에서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나왔을 때,
바로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또 그 때 글을 올리신 새옹지마님이 워낙 좋게 말을 해주셨고.
엄청 후회할 것 같은 느낌이 팍 들어서 늦은 밤에 오른쪽 사이드 R석스러운 S석을 예약했죠.
그리고 엄청 기다리고 기다려 오늘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에 시작을 했기 때문에 좀 일찍 나가서
명동예술극장에 일찍 도착해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무대장치가 조금 기괴해 보였습니다.
거기 와이파이가 대박 잘 잡혀서 30분동안 인터넷 좀 했죠.
그리고 종소리?와 함께 연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래는 연극 오이디푸스에 관한 링크입니다.
http://www.playdb.co.kr/magazine/magazine_temp_view.asp?kindno=4&no=611
3.
\
무대 구성은 이런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진 구글 이미지에서 데리고 온 건데 괜찮죠..?)
처음에 암전이라고 하나요, 불이 다 꺼지고나서 갑자기 저 오른쪽 무대장치 (좀 높은 위치에까지 봉이 매달려 있었는데)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입을 못 다물고 한 5분 동안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어디서 많이~보신 분이 무대에 서계시길래 음?하고 보았떠니
TV에도 많이 나오시는 정동환 분이...
나중에도 계쏙 보니까 정말 연극하시는 분들은 발성이 좋으시더군요.
우렁차시고 대사가 다 귀에 들어오고.
갑자기 제 친구네가 했던 연극이 생각났는데...
여기서 비교하면 잔인한 거겠죠...
4.
배우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야 연극 자체를 별로 못 본 사람인데
오이디푸스 역을 맡은 이상직(나중에 이름을 알아냈습니다)님이 너무 멋있더군요.
와, 이게 바로 존재감이라는 것이구나.
를 느꼈습니다.
그 때 새옹지마님 글에 있었던 렌즈맨님의 리플을 읽고 난 후라서 그런지
나중에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이
너무나 뭉크의 절규와 닮아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허허.
그리고 너무 마르셨던데, 나중에 인터뷰 좀 찾아보니
역시 좀 일부러 빼셨다고 하시더군요.
어쨌든
처음의 안정적이고 기품있는 (약간의 의심을 품은 상태긴 하지만) 왕의 모습을 연기할 때도 좋았지만,
나중에 몰락하고 추락하는 비극의 모습을 연기할 때가 너무나 뛰어났습니다.
어찌나 가엾던지, 운명을 이길 수 있다고 그렇게 큰소리치던 인물이
가혹한 운명 앞에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니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더군요.
예언가로 나온 박정자님도 짧지만 굵은 임팩트를 남겨주셨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준 지금의 모욕이 당신에게 돌아갈 것이오,라는 요지의 말을 할 때도 그랬고
태양신의 예언,
아침에는 아비를 죽이고 점심에는 어미를 먹고 저녁에는 (갑자기 까먹었네요; 뭐였지;)
음; 어쨌든 그 예언이 섬찟했어요.
요카스타 역(오이디푸스의 어머니이자 아내)을 맡으신 서이숙님의 연기도 전 아주 좋았습니다.
이 분의 연기도 이상직님의 연기와 비슷한 맥락으로
아름답고 기품있는 연기보다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해 고통 속에 발악하는 연기할 때
훨씬 더 큰 정서적 충격을 주셨습니다.
허공을 찌를 듯한 비명이 정말 절절했어요.
사실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새 역할하신 분이지만
(...)
5.
제가 가장 좋게 본 장면은,
뭐 이게 가장 베스트라고 하기엔 다른 부분도 좋은 게 있었습니다만은,
연출?도 같이 했다고 제가 알고 있는
이경은 씨가 높은 봉 위에서 매달려서 끔찍한 고통에 몸을 털어내며
점차 조금씩 조금씩 추락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안 코러스?일반시민?혹은 인간?들이
봉들이 달려 있는 무대장치에서 퇴장하고 (이게 순서가 맞나? 갑자기 좀 헷갈리네요)
혼자 높은 곳 위에 서있어 춤을 추기 시작할 때는
(춤보다는 경련에 가깝지만)
마치 그 비극이 우리내의 삶과 다를 바가 없는 것처럼
오이디푸스가 고통을 견디지 못해 발광하는 것처럼
몸을 떨며 마치 미친 사람인냥,
(간간히 숨을 헐떡일 땐 더 좋았죠)
내려올 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서릿했습니다.
오이디푸스랑 우리랑 사실 뭐가 다르지?
라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고나 할까요.
물론 오이디푸스의 상황은 참으로 극적이긴 합니다만..
또 갑자기 누가 나와 (분필 칠하던) 두 눈으로 상징되는 두 공을 벽으로 던져 터뜨리고
거기에서 피로 상징되는 액체가 터져나와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무대장치에 묻어져나왔을 때,
참 좋은 장면이다 라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코러스, 역병에 시달리던 보통 인간들이나 매달려 있었던 그 봉에
왕이란 빛나는 지위를 상실하고 애처롭게 매달려
한때 아내라고 불렀던 사람에게 어머니라고 외치는 장면 또한...
아 장면들이 계속 생각나는데,
요카스타가 오이디푸스에게서 도망가려고 할 때 둘이 무대 위를 말 그대로 뒹굴 때
저는 이것이 섹슈얼한 상징인걸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6.
오이디푸스 신화, 사실 꿰고 봤죠.
저야 어렸을 때 자주 즐겨보던 것이
그리스로마 신화였으니까.
그러나 오이디푸스의 신화를 보면서 한 번도 울거나 감흥을 받았거나 그런 적은 없었어요.
오이디푸스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가 전체적으로 참 재미있고 어찌보면 조금 많이 노골적이고 음란하긴 하지, 라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습니다만.
그런데 참 연극으로 보니까 이게 느낌이 다르더군요.
뒷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큰 줄기 자체는 완전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무너져가며 자신의 비극을 몸소 확인하며
스스로를 학대하게 되는 오이디푸스의 모습을 보며 너무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저하게 운명 앞에 조롱 당하는 그가, 그의 모습이야말로 완전한 비극이라는 느낌을 받았죠.
어떤 의지로도 도망칠 수 없는, 말 그대로 감옥 그 자체에 갇혔으니까...
눈뜬 장님처럼, 눈 먼 예언자를 비웃던 그가 어쩌면 미래의 굴레에서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나 자신의 모습인걸까 라는 감상적인 생각도 해보았고..
어쨌든 작품을 보며
정말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비극이로구나,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말의 순간에는 그 비극이 주는 슬픈 충만함마저 느꼈어요.
14500원으로 참 싸게 명작을 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7.
배우들이 인사할 때 정말 저도 그렇게 긴 박수를 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힘들어서 잠깐잠깐 쉴 정도 (...)
참 새옹지마님한테 감사드릴 뿐입니다.
덕분에 좋은 작품 놓치지 않고 보았으니 말이에요.
뭐 저번에 본 판소리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금전적, 시간적으로 여유가 난다면
공연예술은 열심히 챙겨보아야겠따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