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Eater

듀나 게시판에 서식하시는 분들도 책을 많이 읽으실줄 압니다.
저는 책을 많이 읽었었습니다.
네, 과거형이죠.

 

저는 특히 초등학교 입학전에 엄청난 양의책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속독이 가능하게 되어 수능볼때 시험시간이 모자라지는 않았죠.
그 이후에는 많이 읽었다고 내새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3n년을 살아 오면서 적게 읽지는 않았다고 생각 합니다.

 

올해 프레시안에서 100권 읽기 운동에 동참하며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트윗에 정리해서 올리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정리가 안되요.

어디가서 책 많이 읽었다고 하기 창피할정도예요.


가끔은 작가의 의도도 놓치고 책 뒤에 있는 다른 사람의 평을 읽고서
'아.. 그게 그 의미였구나' 라고 깨닫기도 해요.

 

책에 숨어 있는 내용을 파악하기보다
아.. 재미 있구나.
아.. 이건 별로 나랑 맞지 않구나.
이건 괜찮구나.
이정도외에는 감흥이 크게 떠오르지 않아요.

 

A작가는 인간의 심리를 파헤치고 묘사하는데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B소설은 컬트무비같은 소설로 사회비판적 의미를 블랙코메디로 표현하고 있구나
C소설에서 주인공이 그렇게 행동한것은 상대방을 통해서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구나..

 

이런 건 억지로 생각해야 조금 나오려나?
그래서 듀게의 회원리뷰를 작성하시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책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게 아니라
텍스트들을 꾸역꾸역 먹고만 있는것 같아요.
텍스트들을 먹었으면 토하던지 X을 싸던지 해야 하는데
그냥 소화 시키고 끝~ 이런 느낌이예요.

 

최근 드는 생각은
이런 내가 책을 읽어서 뭐하나 싶어요.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면서
책을 읽는게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재미로만 책을 읽는게 아니라
그 이상의 뭔가를 얻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이제는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이 드는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Reader가 아니라 Text Eater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네요 .

 

    • 100권 읽기 운동에서 벗어나시는 게 좋겠네요. 숫자에 얽매이지 마세요.
      그리고 속독을 경계하시구요.
    • 시러/ 숫자에는 얽매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되는만큼만 읽으려고 해요.
      속독 습관은 쉽게 버려지지 않네요. 그래서 책을 두세번 읽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 시러님 답변에 동감해요. 저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속독을 익혔는데(책 안보고 넘긴다고 혼난적도..)
      텍스트가 어려워지니 속독이 오히려 독이 되더군요. 요즘 일부러 책을 천천히 읽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 저도 같은 고민을 해요. 메모도 하면서 읽어봤는데 잘 안되고. 체계적인 독서 훈련을 받으면 더 나을까 모르겠네요.
      오래 전에 혼자 읽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인터넷을 통해 잘난(?) 사람들 감상을 자꾸 보게 되니까 진짜 나는 읽어도 읽는 게 아니구나 싶고요.
    • 예전에 장정일이 책읽는 방법에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그 책의 작가로 상정한다고 하더군요.
      자신이라면 이 다음은 이런 식으로 쓰겠어,,,라고 생각을 하고, 실제 작가는 어떻게 썼는지를 비교하는거죠.
      물론 이건 장정일이 작가인 경우이니 아무래도 좀 특별한 케이스겠지만,
      책을 한 권 읽는 건 책을 한 권 쓰는 행위다, 라던 그 사람의 독서관이 꽤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 저랑 정반대이시네요
      전 만화책조차도 남들보다 2-3배 느린 속도로 읽고 가볍게 읽는 소설도 한문장한문장 되씹느라 도무지 페이지가 안넘어가서 중도포기하기 일쑤인데ㅠ
    • 제 생각으로는 단순히 속독과 정독의 문제가 아닐 것 같아요. 소위 '있어보이는' 감상평들은 단순히 텍스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 경험, 사고 등의 종합적인 산출물 아닐까요. 최인훈의 '광장'이 생각나네요. 고등학교 입학하면서 읽었던 '광장'과 운동권, 진보단체에서 실제로 맞닥뜨려본 경험이 생긴 후에 느껴진 '광장'은 정말 엄청나게 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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