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티마 2권 감상인 척하는 개인 잡담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2권을 읽었습니다. 초판이 나왔을 때 읽고 어제 다시 구입했는데 어릴 적에 읽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읽히네요. 처음 읽었을 때는 아마 중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와, 이런 만화도 있네 재밌다. 정도의 감상. 그런데 이번에 생명의 레퀴엠 에피소드를 읽고 나서 울컥 했습니다. 정말 대충 넘기듯이 본 것인데도 가슴으로부터 강하게 슬픔이 느껴져요. 개인에 대한 역지사지 식의 슬픔이 아니라 온몸으로 몰아치듯이 다가오는 구조에 대한 슬픔이나 사람 전반에 대한 슬픔. 오노 나츠메의 낫 심플을 읽고 느꼈던 것과 흡사한 느낌이네요. 거대한 구조 속에서도 인간은 사람 간의 애정만을 믿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결국 남는 것도 그것 뿐이고.
그런데 아서 맥스웰이 등장하는 두번째 에피소드는 괴로웠어요. -_-; 저는 저런 사람과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가까웠던 떄가 있었고 아직도 거기서 완벽하게는, 벗어나지 못했거든요. 아서 맥스웰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이고 인간을 통해서 얻는 것과 사람 자체를 분리하는 사람이죠. 자신의 입으로 말했듯이.
저런 사람에게 애정을 품으면 고통스러워 지는 것이 뻔한데도, 본 순간부터 알아봤는데도 도망칠 수 없었던 제가 생각나서 조금 비참해졌어요. 바보같지만 정말 심각하게 반했었어요.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뻔히 알면서도, 얼마나 날 망가뜨릴지 그게 얼마나 위험부담이 큰지 모르는 게 아니었어도 그 사람이 보여주는 빛에-육체적이고 시각적이었던- 저항할 수가 없었어요. 아닌 걸 알면 방어막이나 도피처라도 만들어 놨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턴 도망칠 길 조차 헤매게 되어버리더군요. 어리석게도 좋아하는 마음과 애정을 원하는 저의 욕망이 방어막조차 스스로 없애버렸고요. 이런 관계에선 내가 원하는 것이 충족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자멸하는 지름길일텐데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을 정당화할 변명을 너무 많이 만들어놨었어요. 애정이 있으니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던 부분도 있었고요. 모르는 게 아닌데도요. 읽다 깜짝 놀랐지만 나머 준의 독백처럼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한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오기도 있었고..
어쨌거나 그 사람은 사람으로 그다지 좋은 종류의 사람은 아니었고 그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다 저의 정신이 엉망진창이 되어 반년 가까이 시체처럼 살았어요. 제 안의 저를 움직이고 있던 시스템이 모조리 파괴되었었어요. 저의 세계에는 그 사람이 있지만 그의 세계에는 제가 존재할 자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의미 늦었었죠. 그러니 그전까지 보이던 세계가 암흑처럼 캄캄하게 보이고, 제가 볼 수 있었던 미래가 멈추더군요. 지금도 그걸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떨려요. 얼마 전엔 맨정신인데 갑자기 구역질이 나와서 화장실로 뛰어간 적도 있었어요. 제가 가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차갑게 변하는 것을 저는 그렇게 시시각각 느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정신적으로 착취당했다고 느꼈죠. 자신의 존재가 절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호의에 의해서 지속된다는 걸 인식하지도, 인정하지 못하는, 디멘터 같은.
어떤 사람들은 20 %의 시스템을 보고 어떤 이들은 30%의, 40%의 시스템을 보고 그걸 시스템으로 분리할 수 있거나 분리하지 못하거나 하죠.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그 100%의 지도를 보고 있겠지만 저는 아마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거에요. 제 안에도 저 사람과 같은, 아주 가깝게 공유하는 부분이 있지만.. 저렇게까지는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단지 아주 가끔씩은 원하게 됩니다.
저는 시스템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지만 감각적으로 알게 된 건 아주 최근입니다. 넓게 끝없이 펼쳐지는 지도가 눈 앞에 보이고 점들이 이어지고 있고 그 수평선이 영원히 펼쳐지지요. 그건 지금도 제앞에 가끔씩 선명하게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