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불행을 느끼지 않는 것은 능력과 욕망과 균형이 이루어진 이 상태에서 뿐이다. 잠재능력이 활동하면 곧이어 모든 능력 중에서 가장 활발한 상상력이 눈을 떠 다른 능력들을 앞지르게 된다. 우리 힘으로 가능한 범위를 넓혀주며, 따라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 의해서 그 욕망들을 자극하고 조장시키는 것이 바로 이 상상력이다. 처음에는 손에 잡힐 것 같이 보이던 물건이 쫒아갈 수도 없게 빨리 도망친다. 우리는 이미 지나온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데, 반면에 가보아야 할 범위는 계속해서 커지고 넓어지기만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지쳐버려, 우리가 욕망을 이루면 이룰수록 행복은 우리에게서 점점 멀어져간다.
이와 반대로 사람이 자연적 상태에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능력과 욕망의 차이가 적어져서 그는 행복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현실세계와는 달리 상상의 세계는 무한하다. 따라서 현실세계를 더 넓힐 수가 없으므로 상상력을 좁혀야 한다. 우리를 참으로 불행하게 하는 모든 고통은 오로지 현실과 상상이라는 이 두 세계의 부조화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신체의 고통과 양심의 가책을 젖혀두고 보면 우리의 모든 불행은 상상에 달린 것이다. 그런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을 실제로 응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실천뿐인 것이다.
루소 말에 반대합니다. 상상력을 좁히면 그냥 답답한 사람밖에 안 됩니다. 상상력에도 좋은 상상력이 있고 나쁜 상상력( 쓸데없는 걱정, 편견, 욕망)이 있죠. 누추한 다락방에서 거지같은 옷을 입고 따뜻한 난로와 푹신한 슬리퍼를 상상했던 소공녀 세라의 상상력은 과연 나쁜 것이었을까요. 인간이 꿈이 없다면 좀비나 다름 없죠.
포엠투님 덧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루소의 저 소극적 행복론을 좀 더 편안하게 적용하고 싶어요. 글귀의 끝에 나타나듯 그것을 실제로 응용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실천 뿐이라고 하고 있거든요. 현실은 그냥 현실 그 자체이지만 이미 확장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마도 포엠투님이 구분하신 상상력의 구분에 아마도 핵심이 있을지도 몰라요.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즐기고 그 상상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상상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요. 그런데 항상 그런 상상만 존재할 수 없으니 그 외의 욕구나 욕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것이 정말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가진 욕구도와 능력을 스스로 객관화하기 어렵기도하고, 단지 운에 맡겨야 하는 위태로운 것들도 많고... 음, 역시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