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할배개

올해로 11살 되는 우리 할배개는 2년째 베란다에서 생활합니다. 11살 평생 제 침대에서 같이 주무셨던 분이라, 처음엔 자신이 베란다로 밀려나간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어했지만, 사정상 어쩔 수 없었어요.

정남향에 한강 마주하고 있어서 햇볕도 오래 들고, 푹신한 집도 내어 줬지만, 이렇게 추우니까 마음이 계속 쓰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은, 베란다문을 열어 할배개랑 고양이님을 안방으로 들이고(안방 베란다에 있어요) 제가 출근 준비할 동안은 방에서 놀 수 있게 두는 거에요.


오늘 새벽에 제가 잠을 설쳤는데 4시경인가, 안방 베란다 쪽에서 할배개 짖는 소리가 났어요. 보통 해 뜨기 전엔 안 짖는데 열번인가 멍멍하고 짖어서 아 왜 그러지?하다가 다시 잠에 들었는데, 오늘 아침에 베란다문을 열었더니 평소처럼 활기차게 뛰어나오기는 하는데 제가 화장하고 있으니까 방가운데에 조용히 누워서 졸고 있었어요.

아 이 녀석이 평소에는 기운이 막 넘치는데 그냥 조용히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서 한쪽눈만 게슴츠레하게 뜨고 졸음이랑 싸우면서 저를 보고 있는 걸 보니까 마음이 막...좀 그랬어요. 아 얘도 늙었구나, 그치 열살도 넘었지. 언제까지 나랑 같이 있어줄까...하구요.


스무살때즈음에, 그 때 사귀던 남자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녀석이에요.

그 남자친구는 가고(웃음) 또 새로운 연인이 나타나고, 나타나고, 해도 이 녀석은 언제나 제곁에 있었구요.

회사나, 연애나, 가족이나, 힘들어서 방에 혼자 앉아서 울고 있을 때에도, 엄마랑 크게 싸워서 짐싸서 1년쯤 원룸에 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같이 있었구요.

언제나 제가 귀가하는 '집'에는 이 녀석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지난 십여년간, 언제나.


이 녀석, 멀리 가버리면 어쩌죠? 미용실 맡겨서 몇시간만 집에 없어도 온 집이 허전한데.

제가 처음 제 손으로, 제 책임으로 키운 녀석이라 완전 오냐오냐하고, 간식 암때나 막 줘서 정말 버릇없고, 맨날 으르렁거리고, 막 주인 손 피날만큼 물고 진짜 건방지고 진짜 나를 화나게 하는데.

이 녀석 없음 어쩌죠?


평생 나만 기다리고 살았는데, 산책도 그렇게 좋아하는데 많이 못하고, 맨날 집에서 내가 돌아주기만을 기다리는 녀석인데.

어느 날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돌아갔을 때 이 녀석이 폴짝폴짝 뛰는 게 아니라 오늘 아침처럼 그냥 조용히 누워서 기운없이 눈만 깜빡하고 말면 어쩌죠?

어느 날 아침에, 할배개 밥을 주러 갔는데 몸이 차가워져있으면 어쩌죠? 나는 어떻게 할배개를 만지고, 어떻게 끌어안고, 어떻게 멀리 보내죠?


지레 걱정이 되고, 지레 마음이 무너집니다. 더 잘해줘야하는데, 아침에 나가서 해지면 들어오고, 요즘은 하루에 1시간도 놀아주기 힘든데...맨날 맨날 핑계만 대면서 놀아주지도 않는 나를,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미안해 죽겠어요...



    • 저 역시 저보다 곱절은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개들을 보며 마음이 심난한 요즘입니다.
      공감도 되고 위로도 되는 웹툰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http://comic.naver.com/bestChallenge/detail.nhn?titleId=227564&no=18
    • 이 글 읽고 야옹이 데려다가 좀 놀려고 했는데 너무 싫어해서 엉엉;ㅅ;
    • 전 그래서 저희 개님이 종종 토라지고 삐쳐서 저 집에 올 때 마중도 안 나오고 그러면 조금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 이렇게라도 이 무심한 주인에게 화풀이를 해야지..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래도 11살이면 아직 함께 살 날이 많이 남았을 거예요. 함께 사는 동안만이라도 무거운 고민하지 마시고 즐겁게 지내세요. :D
    • 물밤님이 소개해주신 웹툰 보고 울었어요. 중간에 햄스터 얘기가 있는데 딱 제 얘기네요ㅠㅠㅠ
      삼년간 정말 사랑해주면서 키웠는데 아프다가 어느날 제 손위에서 죽었어요. 생각하니 슬퍼요 엉엉ㅠㅠㅠ
    • .... 글이 너무 슬퍼요.
    • 저희 개도 열한 살이 되었어요.
      한참 나이였던 청년기엔 탱탱볼을 좋아해서 던져주면 종일 밥도 안먹고 갖고 놀고 매일매일 산에 데려가면 앞장서서 달려가곤 하던 팔팔하던 녀석이
      이젠 비오면 비온다고 눈오면 춥다고 안 나가려 합니다.
      한겨울이면 수북하게 속털이 보송보송하던 녀석이 이젠 한겨울이 되었는데도 분홍살이 비칠 정도로 탈모도 진행되고요.
      나잇살이 쪄서 디룩디룩 다이어트땜에라도 매일 산책을 시켜주려고 하는데 춥다고 30분만 지나면 집에 들어가려해요.
      전엔 몇 시간씩 밖에서 뛰어놀아도 지치지도 않고 집에 들어가길 아쉬워하던 녀석이었는데...

      가끔 녀석이 가고 없다면... 생각하는데 생각과 동시에 아득해져요.
      아무도 없는 적막한 귀갓길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고 견딜 수가 없어집니다.
      당장은 그냥 녀석과 행복한 나날을 함께 보냈으면 해요. 다른 생각 안하고 싶어요..

      근데 알러지라도 있으신가요?
      밖으로 내놓게된 사정이 있으시겠지만 입양 후 쭈욱 한 이불 쓰는, 나이들수록 추위를 심하게 타는 저희 집 녀석을 보니 그 부분이 마음이 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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