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 도망자

생각해보면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은 정말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어릴 땐 명절 연휴때 특선 영화가 정말 기대됐었는데 지금은 그냥 하던지 말던지 하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환경면에서나 경제력면에서나 열악했던 어릴 땐 티비 영화에 환장을 했었습니다. 심지어 녹화해놓고 몇 번씩 보고, 친구들끼리 명절 연휴때 서로 영화를 담당해 녹화떠놓고 서로 빌려주며 보기도 했습니다. 쓰다보니 너무 없어보이네요. ㅡㅡ;

 

하여간, 그렇게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탓에, 오히려 그때 본 영화들이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보기도 했고, 새로운 영화가 쏟아지지 않으니 봤던 걸 또 보기로 했고요. 그런 영화 가운데 하나가 전 <도망자> 입니다. 해리슨 포드 주연. 잘 먹고 잘 살던 의사 해리슨 포드의 아내가 살해당하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해리슨 포드가 이리 저리 도망다니며 스스로 누명을 벗는다는 이야기. 저에겐 객관적인 평가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기억되고 있습니다.

 

문득 대부분의 영화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된 지금 환경이... 영화 자체에 대한 몰입도, 영화를 볼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오히려 줄여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른한 오후네요.

 

p.s. 나중에 <도망자>를 비디오로 다시 봤는데, 티비에서 짤린 장면이 있더군요. 도주중인 해리슨 포드가 병원에 잠입해 필요한 정보를 빼내는 장면이 있습니다. 위장 과정에서 간호사로 변장하고서 환자를 이송하는데, 엑스레이와 의사 처방을 보고 처방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되지요. 그래서 직접 처방을 맞게 고쳐놓고 자기 볼 일 보러 갑니다. 왜 짤렸는지 모르겠어요. 시간관계상 불필요한 장면을 짤랐을까요? 딱히 폭력적이지도 야하지도 않은데... 간호사가 의사의 처방에 손대는 장면이 반사회적이라서는 아니겠지요? ㅡㅡ;

    • 저도 TV에서 했던 <엘리게이터>를 녹화해서 스무번 이상 돌려본 것 같아요. 끝까지 다 본 횟수는 반도 안되지만요.
    • 없어보이는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죠.

      주말의 명화, 토요명화가 왜 그때는 흥했고 지금은 폐지됐는지도 알수 있는 대목이고요.

      심지어 노래도 라디오에서 기다렸다가 녹음해서 듣고 그랬던 시절이죠.(테이프,시디 살 돈 없을때...;;;)

      너무 가벼운 매체가 된건 분명해요.

      영화,음악 모두. 옛날엔 테이프 늘어질때까지 듣고 이런적도 많았는데...

      물론 한쪽에선 문화를 더 넓게 다양한 계층이 손쉽게 볼 수 있는 해방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무게감이 없죠. 1회용처럼.
    • 예전에 한번 댓글로 이야기 한적이 있었는데요.
      친구집이 비어서 거기서 야구 동영상을 봤습죠.
      보다가 비디오가 내부에서 씹히면서 우리는 줄행랑.

      친구는 뭐, 시원하게 사망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야구동영상도 참 구하기 쉬위졌습니다(응?!).
    • 전 해리슨포드가 아닌 토미리존스에 더 집중을 했어요. 그 어린나이에 봐도 토미리존스의 매력이...
    • 풍요때문이죠. 영화를 보기위한 희소성이 없이 널려있다보니 한편을 보더라도 몰입도가 떨어집니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볼수있다는 생각때문이죠. 그러나 예전에 TV영화는 그 시간이 아니면 재방영을 알수없는 절명의 시간. 그래서 몰입속에 재미가 무럭무럭 자라면서 계속 이야기하고 그랬죠. 그러나 바쁘게 살다보니 보지 못했다고 해서 안타까워 할필요없고 언제든지 볼수있으니... 어찌보면 너무 많은 영화를 봐서 뇌가 혹사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영화를 한편 보면 숙성기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의 책과 영화를 머리속으로 계속 되새기는거지요.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의 사상과 관념이 이입이 되어 보다 더 나은 책내용과 영화이야기가 펼쳐지는데 풍요하다보니 이런 숙성시간이 경과할 시간도 없이 새로운 책과 영화가 덮어버리면 머리가 혹사당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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