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심이 투철한 공무원들

전에 관공서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적이 있었습니다. 프로그램 화면중에 날짜를 입력하는 부분 있는데 키보드로 직접 입력할 수도 있고 달력 아이콘을 클릭하면 달력 모양의 팝업이 떠서 그것을 이용하여 입력할 수도 있게 되어 있었죠. 웹 화면에서도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런데 팝업 달력이 일반적인 달력모양과 달리 '일월화수목금토'가 아닌 '월화수목금토일'의 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것에 별달리 신경쓰지 않았지만 신경쓰는 공무원이 한 명 있더군요.

하루는 회사 게시판에 요구사항이 올라왔는데 그 내용이 세속국가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형태의 달력은 절대 사용할 수 없다. 그런 달력은 어디의 무슨 이교도들이 사용하는 이단적인 달력이다. 신성한 '주일'이 어떻게 가장 마지막에 올 수 있나. 당장 프로그램을 수정해 달라"

수정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세속국가에서, 종교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 특정 종교에 근거하여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기독교 입장에서나 이교도이고 이단이지, 타 종교나 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생각 같아서는 수정이고 뭐고 당장 반박하는 내용의 답변을 달고 싶었지만 저쪽은 고객이기도 하고, 저는 개인이 아닌 회사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차마 그러진 못하고 그냥 수정해주고 말았던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저는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요구냐며 툴툴대고 있는데 다른 동료가 그냥 수정해주더군요.


아래 포항시 관공서 봉투 사건을 보니 문득 생각이 나는군요. 하여간 대한민국이 국교가 없는 나라라는 것을 잊어버린 공무원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공무원시험에 헌법 있잖아요. 그냥 무식한 공무원인 것 같은데요. 'ㅇ';
    • 참으로 껄쩍지근한 일을 당하셨군요. 하하. 싫어도 표내지 않고, 자신이 종교적 철학을 드러내지 않는 것.
      특정 종교에 사명감을 가진 상사나 갑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수신의 덕목(?)중 하나이죠.
    • 피해의식이 투철한 사람이군요.
    • 고인돌/ 갑은 또 다른 문제죠. 사적인 계약관계라면 또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와구미님 에피소드랑 밑의 얘기는 뭐..
    • 저는 여태까지 달력에서 일요일이 앞에 오는 걸 이상하게 여겼는데 그게 그런 기독교적 이유 때문이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월요일에 한 주를 새로 시작하는 건데 왜 일요일이 앞에 오나 했어요. 저는 다이어리를 살 때도 달력 란이 월요일부터 시작하는 걸 찾아서 산단 말입니다. 위클리 스케쥴 기록란은 월요일부터 시작하는데 달력은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게 이해가 안 되요.
    • 그러고보니 윈도즈 OS에 있는 달력도 일,월,화,수,목,금,토 순서로 되어 있네요.
    • keira/ 기독교적으로 봐도 일요일은 한 주를 마감하고 쉬는 날(안식일) 아닙니까. 일요일이 마지막에 오는게 오히려 맞는거 같은데 참 이상한 노릇이네요.
    • 서구에서도 월요일을 일주일의 시작으로 치는 곳이 대부분이라던데 참 미스테리하긴 합니다.
    • 생각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누가 이단이라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겠죠.
    • 원래 안식일은 토요일이었고 역사적으로는 일요일이 한 주의 시작이 맞습니다. 예수 부활 이후에 기독교인들이 안식후 첫날을 기념하여 안식일을 옮겨 지내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안식일을 원래대로 토요일로 하는 제 7 일 안식일이라는 종교도 있지요 기독교인들은 이단이라고 하죠
      • 적고 보니 제 7 안식일 교도 기독교인데 댁글은 수정이 안되네요. 개신교에서 이단이라고 부르죠. 뭐 개신교 입장에서는 웬만한종교는 거의 이단이긴 합니다. 카톨릭마저도 이단이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저는 저 종교의 교리나 사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들은 얘기예요.
    • 전 그냥 태양이니까 달 앞에 오는구나 했는데.. 태양이랑 달이랑 떨어져 있으면 서로 막 섭섭하고 뭐 그런...
    • 유태교도 안식일은 토요일입니다. 실제로 weekend란 토요일을 의미하니까요. 그래서 일요일이 맨앞에 오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요일제 자체가 기독교적인 모습인 거죠.
    • 전 일요일이 맨처음에 있는게 과거 태양숭배에서 왔나?? 하고 생각했었는데...음;;;
      근데 그렇게 따지면 튜즈데이부터 사탄데이까지의 영어는 어떻게 수용하는걸까요. 그거 다 이교도의 신 이름이지 않나요?
    • 제가 갖고 있는 주한 프랑스 대사관 달력도 그렇고 인터넷으로 봐도 그렇고 불란서 달력은 월요일로 시작하는군요.

      (더 찾아보니 프랑스에서는 기독교쪽에서는 일요일이 한주일의 첫날이고 통상적으로는 월요일이 한주의 첫날이라네요.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도 월요일을 첫날로 할 것을 권유한다고 하고요. 기독교 전통은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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